지난 13일 프로야구 문학 KT-SK전. KT가 3-0으로 앞선 2회 1사에서 KT 1루 주자 심우준(22)이 2루를 향해 뛰었다. 결과는 세이프. SK 포수 이성우가 힘껏 공을 뿌렸지만 몸을 앞으로 던져 팔을 뻗은 주자가 빨랐다. 하지만 심우준은 곧바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왼손으로 2루 베이스를 짚는 과정에서 새끼손가락이 꺾인 탓이다. 심우준은 손가락 골절로 6주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사실상의 '시즌 아웃'이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엔 단번에 승부를 바꾸는 묘미가 있다. 부상 위험이 따르지만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지고 손을 뻗는다. LG 안익훈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 플레이트에 쇄도하는 모습.

슬라이딩 한 번의 대가(代價)가 이렇게 가혹하다. 그래도 선수들은 유니폼에 흙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달 26일 잠실 경기(넥센-LG)에선 '역대급 슬라이딩'이 펼쳐졌다. 2-3으로 뒤지던 9회말 2사 후 LG의 황목치승은 동료 안타 때 홈으로 질주했지만, 넥센 우익수 이정후의 빨랫줄 송구가 포수 미트에 먼저 꽂혔다. 명백한 아웃 타이밍이었다. 심판 판정도 '아웃'이 선언됐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으로 결과가 뒤집혔다. 황목치승이 슬라이딩 때 몸을 비틀며 포수 태그를 피해 손으로 베이스를 먼저 터치하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극적인 동점을 만든 LG는 결국 4대3으로 이겼다.

사생결단(死生決斷)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엔 베이스(또는 홈플레이트) 쪽으로 다리를 먼저 들이미는 피트 퍼스트(Feet First)와 몸을 앞으로 던지는 헤드 퍼스트(Head First)가 있다. 헤드 퍼스트는 주자가 접전 상황에서 꺼내 드는 '필살기'다. 피트 퍼스트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의 속도 차이를 명쾌하게 규명한 연구는 없다. 다만 몸을 틀고 손으로 먼저 베이스를 짚을 수 있다는 점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반전 무기'로 통한다. 특히 홈 충돌 방지 규정이 생겨 포수들이 공을 잡기 전 홈 플레이트를 가로막는 게 금지되면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국내 선수 중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의 '일인자'로 꼽히는 인물은 KIA 이종범(은퇴)이다. 그가 2006년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2루로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슬라이딩하다가 수비수 태그를 피해 한쪽 팔을 뒤로 뺀 다음 다른 팔로 베이스를 터치한 장면은 '헤드 퍼스트의 완결편'으로 통한다.

결과는 달고, 대가는 쓰지만…

[이종범·이강철 등 국대 야구팀 코치로]

대신 헤드 퍼스트엔 부상이라는 '부작용'이 따른다. 미 뉴욕 타임스는 지난 5월 발표한 '스포츠 메디슨 아메리칸저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의 위험성을 전했다. 조사에 따르면 2011~2015년 다섯 시즌 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경기를 분석한 결과, 헤드 퍼스트로 인한 부상 빈도는 249회 시도당 1건, 피트 퍼스트의 경우 413회 시도당 1건꼴이었다. 헤드 퍼스트 부상 비율이 1.66배 높았던 것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인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와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 애스트로스),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등도 이번 시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선수들은 여전히 머리를 앞세워 베이스에 몸을 던진다. LG의 황목치승은 "송구가 포수 미트에 먼저 들어가는 걸 봤지만, 승부를 뒤집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트라우트도 부상 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다쳤지만 이내 잊었다. 앞으로도 똑같이 몸을 날리겠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선수들이 부상을 무릅쓰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내 몸 던져 팀이 산다면 무슨 행동이든 시도하는 게 프로다. 때가 되면 몸이 알아서 반응하게 돼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