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덕분일까? 아니면 일본인 아마추어 역사학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때문일까? 아우구스투스, 네로, 칼리굴라…. 2000년 전 이탈리아 반도를 다스렸던 로마 황제들의 이름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을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고 주장했듯, 서양의 법·정치·외교는 '로마제국에 대한 각주'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로마 황제가 있다.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다. 그가 황제 자리에 오른 기원후 284년. 로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망해가고 있었다. 끝없는 내전, 야만인들의 습격,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 무역과 산업이 몰락하고 제국이 파산 직전에 도달하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혁신적인 정치 실험을 시도한다. 우선 한 명이 다스리기엔 너무나도 큰 제국을 4등분으로 나눈다. 바로 4명의 황제가 함께 다스린다는 사두정치체제(tetrarchia)다. 두 번째로 고대 신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강력한 기독교 박해를 지시한다.
사두정치체제와 기독교 박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가능하겠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경제 정책만큼은 역사적으로 가장 실패한 정책 중 하나로 유명하다. 황실과 공무원 수를 네 배로 늘리기 위해 증세는 필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세금을 올려봐야, 물가가 이보다 더 빨리 오르자 황제는 301년 '가격통제칙령'을 내린다. 콩, 와인, 돼지고기… 그 어느 물건도 정부에서 정한 가격 이상으로 팔 수 없고 목수, 이발사, 변호사… 그 누구도 정부가 정한 액수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없다! 거역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지고 화폐가 완전히 몰락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누구보다 막강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국가를 재건하고 개인의 신앙까지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시장의 논리 앞에서 그도 무릎을 꿇어야 했다.
입력 2017.08.16. 03:11업데이트 2017.08.1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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