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자두야’ 1권에 담긴 만화.

서울 동작구 흑석동 사는 말괄량이 최자두(9)양은 20년 동안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자두는 나이 먹지 않으면서, 1980년대의 가난했고 따뜻했으며 조금 서럽기도 했던 기억을 소환해낸다. 한국판 '짱구는 못말려'를 연상케 하는 명랑 만화 '안녕 자두야'가 연재 20주년을 맞았다. "애초에 만화의 타깃 독자는 제 또래였는데 애니메이션 덕분에 지금은 꼬마들이 더 잘 알죠. 두 세대의 공감이 장기 연재의 이유 같아요." 만화가 이빈(본명 박지은·47)이 말했다.

자두는 1997년 순정 만화 잡지 '파티'의 창간과 함께 태어났다. "잡지 세 곳에 동시 연재를 하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어요. 친한 편집자 분이 '짧은 자투리 만화라도 하나 그려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때 자두는 주식이 아니라 간식 정도 되는 존재였다. "언젠가 과거 회상의 자전 만화를 그려보리라는 계획은 있었어요. 이미 '검정 고무신' 같은 성공 사례가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죠." 그 간식이 지금껏 이씨를 먹여 살리고 있다. 만화는 극장용과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게임·뮤지컬·동화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 중이다.

8일 서울 동작구의 한 만화 가게에서 만난 만화가 이빈은 “내가 환갑이 넘어도 자두는 영원히 초등학교 3학년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두는 결코 공부를 사랑하지 않으며, 친구들과 뛰노는 게 그저 즐거운 '도넛 머리'의 철부지 소녀다. 이씨의 고백에 따르면, 자두는 작가 본인. "제 국민학교 3학년 당시 스케치북을 보니 '안녕 자두야'라는 제목까지 붙여 그려놓은 만화가 있더군요. 머리 모양부터 성격까지 저예요." 남편인 만화가 전호진(44)씨가 소재를 주기도 하지만, 쥐잡기 소동이나 푸세식 화장실에 빠진 일 등 에피소드는 대개 이씨의 실화. 만화 속 가족 구성까지 똑같다. "다만 엄마의 성격은 정반대예요. 극 중엔 괄괄한 여장부로 나오지만, 실제론 내성적인 분이셨죠." 이씨와 만난 지난 8일은 모친의 기일(忌日)이었다.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호탕하게 화도 내면서 사셨다면 병도 없지 않았을까요." 가끔 흑석동 옛집을 떠올린다. "파란색 철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막내 둘러업은 엄마가 마당에서 빨래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만화방에서 빌려온 '꺼벙이'류의 명랑 만화를 보며 한글을 뗐다. 당연히 꿈은 만화가. "대학 입학 두 달 만에 그만두고 황미나 선생님 화실에 드나들었죠." '안녕 자두야' 때문에 간혹 오해받지만, 1991년 데뷔한 그는 어엿한 순정 만화 작가다. 발표작 'Girls'나 'One' 등이 증명하듯, 8등신 미남·미녀에 특화됐다는 얘기다. "자두 같은 3등신을 그리는 게 지금도 힘들다"고 한다. 육아를 병행하느라 마지막으로 낸 순정 만화가 '패리스와 결혼하기'(2012). "이제 아들도 중학생이 됐으니, 사내 연애를 주제로 첫 장편 웹툰을 연재할 계획이에요."

단행본이 26권까지 나오는 사이, 버스비 500원이 없어 출판사가 있던 서교동부터 집까지 걷던 청춘이 지나갔다. 그는 "과거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또 아름다운 것 같다"며 만화의 한 장면을 들려준다. "어릴 적 집 뒤편 달마산에서 큰 개복숭아나무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기억해놨다가 친구들이랑 다 같이 보러 갔더니 나무가 없는 거예요. 이상하기도 하죠. 어디 갔을까요? 그건 혹시 우리 유년 시절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