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 선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 해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관장하는 과기혁신본부장을 과거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태 당시 연구 윤리와 연구비 관리 부실 논란에 휘말렸던 인물에게 맡기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과학계에서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기초원천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물론 참여연대 등 친여 성향 시민단체와 학계, 노조까지 반대 입장을 밝혔다.

"황우석 논문 조작 키운 사람이 R&D 수장이라니…"

지난 2005년 5월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박기영(왼쪽) 당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황우석 교수와 함께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박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를 키웠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과학계를 중심으로 임명 철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본부장은 8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해 과기정통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청사 1층 기자실도 방문했다. 박 본부장은 그러나 황우석 사태 논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자 "잘 부탁드린다. 나중에 설명드리겠다"고만 말하고 5분 만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과학계가 반발하는 이유는 그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내면서 '황우석 사태'를 키운 인물로 지목받았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당시 황우석 연구팀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주도했다. 박 본부장은 2004년 황 교수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 저자(제13저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박 본부장은 이 논문에 기여할 만한 연구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연구비 지원에 대한 대가성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또 교수 시절 자신의 전공(식물생리학)과 관계가 없는 연구 과제 2건을 수행하며 황 교수로부터 연구비 2억5000만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나 논란이 됐다.

박 본부장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을 알고도 노 전 대통령에게는 제대로 알리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받았다. 박 본부장은 2005년 1월 황 교수로부터 배아줄기세포가 오염됐다고 전해들었지만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황 교수의 연구원 난자 기증 의혹이 드러났을 때도 노 전 대통령에게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해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도 박 본부장은 당시 법적 처벌이나 학교 차원의 징계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당시 조작 논문에 공동 저자로 참여한 서울대와 한양대 등의 다른 교수들은 모두 중징계나 권고사직 조치를 받았지만, 그는 2006년 1월 청와대에서 나온 뒤 곧바로 순천대에 복귀했다. 박 본부장은 최종 사법 처리 대상에서도 제외됐고, 청와대를 떠난 지 1년도 안 돼 같은 해 12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으로 다시 기용됐다.

조작이 드러나 철회된 황우석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당시 순천대 교수)의 이름(빨간 점선)이 논문 공동 저자로 올려져 있다.

['황우석 만든 박기영' 중용한 문대통령이 잃은 것]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8일 "인사 과정에서 그런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과거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일해본 경험을 중요시해서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야당·학회·시민단체도 "정부 신뢰 무너뜨리는 인사" 비판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이날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박 본부장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연구노조는 성명에서 "국가 R&D 체제를 개혁해야 할 자리에 개혁 대상이 돼야 할 사람이 임명됐다"며 "박 본부장 임명은 한국 과학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기술 체제 개혁 포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한국생명윤리학회·참여연대 등 9개 단체도 공동 성명을 내고 "역사에 남을 과학 사기 사건에 책임 있는 인물을 과학기술 정책 핵심 자리에 임명한 것은 정부의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이공계 전공 대학교수는 "논문 조작 사태를 국가적 망신으로 키운 사람이 향후 어떤 기준으로 과학연구 지원을 결정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야당들도 일제히 비판적 반응을 내놨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엄청난 예산을 가진 정부기구의 본부장으로 앉히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했고, 양순필 국민의당 부대변인은 "책임을 저버린 '황우석 고양이'에게 과학기술의 미래라는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은 "막대한 국가 예산이 배정되고 과학기술 분야 혁신을 이끌어가야 할 기관에 부정행위 전력이 있는 부적격 인사를 발탁한 것은 문제"라고 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도 "문재인 정부가 진정 촛불 민심에 따라 적폐 청산과 혁신을 하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본지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박 본부장 발탁에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탁현민 논란'이 또 일어나진 않을지 걱정된다"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