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 누구냐 넌

질소, 듣는 이에 따라 생소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는 물질이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기 중에는 78%의 질소, 20% 정도의 산소, 그리고 0.03%의 이산화탄소가 들어있다. 이렇게 꽤 많은 양의 질소를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질소가 불활성 기체이기 때문이다. 불활성 기체란 분자의 움직임이 너무 안정적이어서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기체를 가리킨다. 우리 몸이 흡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기다 어는점은 영하 210도, 끓는점은 영하 196도.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지구의 상온에서는 대개 무미무취한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생각보다 가까웠던 너란 기체
(좌) 시중에서 파는 과자들을 X-레이 촬영한 사진. 유통 과정에서 부서지기 쉬운 감자칩 종류는 특히 부피가 적어 보였다(아래 사진은 가나다순).

무미무취한 질소가 우리에게 큰 존재감으로 다가왔던 적이 이미 한번 있었다. 2011년 무렵, 인터넷과 TV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들은 제과 업계의 과대 포장 문제를 지적했다.  봉지 과자를 사면 내용물의 절반 이상이 공기이고 내용물은 극히 일부였던 점에 대해 사람들이 불만을 표한 것이다. 과자 봉지로 만든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보겠다는 사람이 등장했는가 하면 2010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물놀이를 하다 사람이 빠졌는데 구할 도구가 없다면 대용량 과자 봉지를 활용하라"며 "적은 용량의 과자 봉지 3개 정도를 안으면 물에 뜰 수 있다"고 과자봉지의 새로운 용도를 제시할 정도였다.

바로 이 과자 봉지에 들어있는 공기가 '질소'이다. 당시 네티즌 사이에서는 "질소를 샀더니 과자를 덤으로 줬다." "질소는 과자가 아닙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으니, '용가리 과자'와 더불어 질소는 여러모로 과자와 인연이 많은 기체이다.

과자 포장에 질소가 쓰이는 이유는 질소가 내용물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산화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식품의 산화를 막기 위해서는 주로 진공 포장이 쓰이는데, 봉지 과자에 이 방법을 쓰면 결국 우리가 사먹는 과자는 부스러기만 남게 된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질소 충전이다. 화학반응을 좀처럼 일으키지 않는 불활성 기체이면서 구하기도 쉬워 과자 포장에 많이 쓰인다. 과자를 보호하겠다는 좋은 의도지만, 보호도 과잉보호가 되면 눈살이 찌푸려지기 마련이다. 제과업계는 내용물의 중량을 늘리겠다고 얘기했지만, 과자 봉지 속 질소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시판 봉지 과자, X-레이로 보니 '뻥 과자'… 질소가 절반이다]

질소의 두 얼굴

공기 중의 질소는 위험하지 않지만 형태를 달리하거나 다른 화합물과 결합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분야에서 질소를 활용한 여러 물질이 쓰이고 있는데 잘만 사용하면 이롭고 유용한 물질이지만, 어떤 성질인지 모르고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이번 '용가리 과자'와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

용가리 과자 속 연기, '액체질소'
8일 오후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관광객들이 질소 과자를 먹은 후 연기를 내뿜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용가리 과자'의 질소는 정확하게 말하면 액체 상태의 질소이다. 놀이공원에서 파는 '용가리 과자'는 깨물면 코와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구슬 모양 뻥튀기 과자를 일회용 컵에 담은 뒤 에어호스로 액체질소를 뿌려 급랭시키는 방법으로 만든다. 액체질소가 상온에서 급속히 기체로 변하면서 뿜어내는 연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상온에서 빠르게 기체로 바뀐 후에는 안전하지만, 미처 기화되지 못한 채 액화 상태로 과자나 용기에 남아있는 질소는 조심해야 한다.

질소는 끓는 점이 영하 196도로 매우 낮기 때문에 상온에서는 액체질소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실험이나, 냉각, 치료를 위해 인공적으로 온도를 낮춰 액체질소를 만든다. 실험실이나 병원, 또는 공장에서 주로 쓰인다.

['질소 과자' 먹고 하얀 연기 내뿜는 재미]

[오싹한 '용가리 과자'… 질소 액체는 먹지마세요]

냉동인간 만들 때 쓴다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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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질소는 어떤 물체에 닿으면, 해당 물체의 열을 빼앗고 냉각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액체질소를 냉각, 냉동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이유이다. 70% 물로 이뤄진 우리 몸 역시 액체질소가 닿으면 동상에 걸린 상태가 된다. 수분은 얼면 부피가 늘어나는데, 이 때 세포 속 수분이 팽창하면서 세포 조직을 공격, 파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용가리 과자' 피해 아동 역시 기화되지 않은 액체 질소를 그대로 흡입하면서 위에 천공이 생기는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무시무시한 점을 병원에서는 피부 사마귀나 여드름 흉터를 치료할 때 역이용하기도 한다. 질환이 있는 피부 조직에 직접 액화질소를 뿌려 급랭시킨 뒤, 이상이 있는 부분을 파괴하고 일시적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현재 '냉동 인간'을 보관하는 탱크 안에 들어있는 것도 액체 질소이다. 미국의 알코어(Alcor) 생명연장재단은 냉동 인간 190여 명을 보존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사후 일정한 처리 절차를 거쳐 액체질소 탱크 안에서 불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미래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액체질소 속에서 그들의 세포는 안전한 걸까.

과학자들은 액체 질소 안에서 세포 조직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개발했다. 인체의 혈액을 모두 뺀 후 세포액이 얼지 않고 터지는 것을 막는 부동액을 섞어 만든 용액으로 인체에 넣어 순환시킨다. 그 후, 액체 질소 탱크 안에 넣어 냉동처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몇 백년 후 모든 기능을 회복한 인간의 완벽한 부활을 가져다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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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요리할 때도 쓴다고
▶ 한 요리사가 라즈베리를 액화질소에 담가 얼리고, 밀대로 빻아 작은 알갱이 형태로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액화질소를 이용하면 다양한 식재료를 가루로 변형시킬 수 있다. /Cooking Issues

최근, 분자요리가 주목받으면서 요리와 식품 분야에서도 액체질소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분자요리는 음식의 종류와 재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질감과 맛을 개발한 음식이다. 여기서 주목받는 방법 중 하나가 액체질소를 활용한 것들이다. 액체질소를 뿌리면 재료를 급속도로 냉각시켜 평범한 식재료에서 이색적인 맛과 질감을 뽑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올리브오일(액체)을 액화질소로 순간 냉각해 아이스크림(고체)으로 만들어 먹으면 전혀 새로운 맛과 질감이 탄생한다.

질소 아이스크림도 아이스크림 위에 액화 질소를 뿌려 만든 것이다. 영하 196도 이하의 저온이므로 매우 짧은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얼릴 수 있다. 냉동 속도가 빠르면 얼음 결정이 작아져 아이스크림 식감이 한층 부드럽고 깔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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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질소 커피는 괜찮나?

그렇다면 요즘 카페마다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일명 '질소커피', 니트로 커피도 액체 질소를 이용해 만든 커피인 것일까. 혹시 '용가리 과자'처럼 위험하지 않을까.

'질소 커피(일명 니트로 커피)'. 커피에 질소를 투입해 질소가 커피와 분리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풍성한 거품으로 고소한 맛을 배가한 커피다. 질소커피에 들어가는 질소는 문제의 액체질소는 아니다.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질소가스 혹은 아산화질소가 들어간다. 질소가스는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그 질소를 압축한 것이고 아산화질소는 질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된 질소산화물이다.

고농축의 질소가스는 산소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흡입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질소가스 누출로 인한 질식사고들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커피에 주입된 질소가스는 매우 소량이면 커피와 만날 때 공기 중 산소와 섞이므로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질소가스는 커피 입자의 산화 시간을 지연시켜 커피의 부드러운 맛이 더욱 극대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본래 커피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아산화질소를 활용하는 곳도 있다. 아산화질소는 커피 위 휘핑크림에 거품을 낼 때도 사용해왔는데, 차갑게 내린 콜드브루 커피에 직접 주입하면 커피에 부드러운 거품과 풍미를 만들 수 있다. 소량으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직접 대량으로 흡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래 사건처럼 말이다.

웃음가스?, 마약 지정된 아산화질소
해피벌룬이 마약류를 지정되기 전 한 공무원준비생이 해피벌룬 기체를 마시고 있다.

아산화질소는 마취·환각 효과가 있어 마시면 20~30초 정도 정신이 몽롱해지고 이유없이 웃음이 나 일명 '웃음가스', '소기(笑氣)'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한때 아산화질소가 담긴 풍선을 '마시면 행복해지는 풍선'이라는 뜻의 '해피 벌룬'이라 부르며 환각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흥가 술집은 물론, 대학 축제에서도 팔릴 정도로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다 올 4월에는 이 풍선을 들이 마신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환경부는 이 사망 사고로 아산화질소를 환각물질로 지정하고 아산화질소의 흡입과 흡입 목적 판매를 금지했다. 본래 병원에서는 보조마취제로 사용하는 물질이다. 아산화질소가 생명을 위협하는 이유는 흡입하면 체내 산소가 부족한 저산소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 흡입하면 방향감각 상실이나 질식,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했으나, 여태껏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논란이 됐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아산화질소를 의료 목적을 제외하고 흡입하는 것은 금지됐다. 해피 벌룬을 판매하거나 소지, 타인에게 제공하는 행위 역시 경찰 단속 대상이 되고 적발 시 처벌받는다.

[죽음 부른 '해피벌룬'… 호흡 저하돼 치명적]

질소를 활용한 먹을거리와 놀이거리, 기술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신선함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다가, 다시 큰 불안에 빠뜨렸다. 이 물질이 우리 일상에 더 깊숙이 들어오기 전, 면밀한 조사와 규정들이 마련되었다면 인명 피해는 물론 국민 불안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질소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