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91)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96)이 2일(현지 시각) 왕립 해병대 행사 참석을 마지막으로 공무(公務)에서 은퇴한다고 영국 BBC 등이 이날 보도했다. 은퇴 이유는 96세의 나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까지 총 2만2219번의 공식 행사에 참석했고, 5496번의 연설을 했다. 필립 공이 회장을 맡았거나 후원했던 단체는 785개에 이른다. 특히 환경 보호와 청소년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1961년 세계자연기금(WWF)의 초대 영국 회장을 맡았고, 1981년에는 WWF의 세계 회장이 됐다. 에든버러 공작 작위를 가진 필립 공이 1956년 만든 '에든버러 공작 상'은 지난 71년간 스스로 세운 목표를 달성한 청년 400만명에게 수여됐다.

2011년 왕실 주최 경마대회에 함께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왼쪽)과 필립 공. 올해 결혼 70주년을 맞은 필립 공은 2일(현지 시각) 왕립 해병대 퍼레이드를 마지막으로 왕실 업무에서 은퇴한다. 아래 사진은 1953년 여왕 대관식 직후 두 사람이 버킹엄궁에서 시민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필립 공은 1921년 그리스 왕족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1924년 그리스 왕정이 폐지되자 고국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됐다. 조국에서 쫓겨난 왕족으로서, 어린 시절엔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을 돌며 교육을 받았다. 필립 공은 유럽에 전운이 감돌던 1939년 다트머스의 왕립 해군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1940년 영국 해군 소위가 됐고 2차대전 내내 지중해와 인도양, 태평양을 누비며 해군으로 복무했다. 1945년 9월 도쿄만(灣)에 정박한 전함에서 2차대전 종전을 맞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한 이듬해인 1953년 영국 육·해·공군 원수(元帥)와 해병대 총사령관에 올랐다.

필립 공은 2011년 관상동맥경화로 수술했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방광염 증세 등으로 치료받았다. 고령이지만 나이에 비해선 건강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필립 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은 1939년 처음 만났다.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다트머스 해군대학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엘리자베스와 마거릿 두 공주를 안내한 것이 인연이 됐다. 13세였던 '릴리벳(엘리자베스의 애칭)'과 18세의 사관생도 필립은 첫눈에 서로 끌렸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다가 연인으로 발전했고 1947년 11월 마침내 결혼했다.

두 사람이 1952년 2월 케냐를 방문하던 도중 조지 6세가 서거했다. 에든버러 공작이던 필립은 여왕의 남편이 됐다. 이후 65년간 남편이자 신하로서 묵묵히 여왕을 도왔다. 1953년 여왕의 대관식 때 처음으로 충성을 맹세한 신하도 그였다.

여왕의 남편으로서의 삶은 쉽지만은 않았다. 여왕과 같이 길을 갈 때면 왕실 법도에 따라 몇 발짝 뒤에서 걸었다. 필립 공은 일찍이 "내가 할 일은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1997년 결혼 50주년을 맞아 열린 금혼식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 공은 지난 세월 동안 나와 가족, 국가에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지난 5월 필립 공이 은퇴 계획을 밝히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보수당)는 "그간 국가를 위해 봉사한 데 대해 가장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은퇴 이후에도 행운을 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