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1962년 8월5일, 36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먼로가 세상을 떠난 지 5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중의 사랑받고 또 회자된다.

'20세기 섹스 심벌' '만인의 연인' '금발머리와 매력점' 등  메릴린 먼로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미 알고 있거나, 몰랐던 먼로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 섹시한 걸음걸이의 비밀

먼로는 영화 '나이아가라 (Niagara, 1953)'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섹시한 걸음걸이를 선보인다. 섹시한 걸음걸이를 위해 그는 오른쪽 구두 굽의 끝을 잘라 그만의 '먼로워크(Monroe Walk)'을 만들어냈다.


◆ 세 번의 결혼과 이혼

먼로는 16세 때 첫 결혼을 했다. 상대는 다섯 살 연상인 '짐 도허티'로 군수공장의 생산직 노동자였다. 둘은 4년 뒤 이혼했다.

(사진 왼쪽) 먼로와 조 디마지오, 결혼식장에서의 키스 (사진 오른쪽) 세번째 남편 극작가인 아서 밀러

두번째 결혼은 미국 야구팀 뉴욕 양키스 선수였던 '조 디마지오'와 했다.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4년 1월에 결혼해 그해 10월에 이혼한다.

세번째 결혼 상대는 극작가 '아서 밀러'였다. 메릴린 먼로가 주연인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 1961)'의 각본도 '아서 밀러'가 썼다. 먼로의 마지막 결혼 생활도 5년 만에 끝이 났다.

◆ 주한미군 위해 한국 방문

(사진 왼쪽) 1954년 2월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하러 한국을 찾았을 때 배우 최은희가 대구공항에서 만나 웃는 모습. (사진 오른쪽)마릴린 먼로 무대에 공연하는 모습.

6.25 전쟁 끝난 1954년 2월, 메릴린 먼로는 한국을 방문했다.

그 당시 먼로는 남편 '조 디마지오'와 일본을 신혼여행 중이었다. 남편을 일본에 혼자 두고 주한미군을 위문하기 위해 대구 동촌비행장을 통해 내한한다.

그는 한국에 4일간 머물렀으며 10차례 미군 장병들 위한 위문 공연을 펼쳤다. 2월이라는 추운 날씨에도 그는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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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보이' 창간호 표지 모델

(사진 왼쪽) 메릴린 먼로가 모델인 잡지 '플레이보이' 1953년 12월 창간호 (사진 오른쪽) 잡지 '포토플레이'의 '1952년 새 스타'에 선정돼 1953년 3월 베벌리 힐스의 한 호텔에서 상패를 받을 때의 모습

1953년 12월 창간한 잡지 '플레이보이'의 표지 모델은 메릴린 먼로이다. 잡지 창업자인 휴 헤프너(Hugh Marston Hefner)는 창업 자금 600달러 중 500달러를 먼로에게 모델료로 지급했다. 창간호는 5만부 넘게 팔리며 큰 성공을 거뒀다.

◆ 향수 '샤넬 NO.5'

"나는 샤넬 넘버5 향수만 입고 자요. 그리고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 샴페인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 마릴린 먼로가 남긴 말이다.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향수만 뿌리고 잔다는 먼로의 말에 '샤넬 no5' 향수는 더 유명해졌다. 또한 먼로의 친구이자 작가인 조지 배리스(George Barris)는 "먼로는 샴페인을 마치 산소를 들이마시듯" 즐겼다고 말했다. ▶ 내용 더 보기

◆ 청바지 화보

마릴린 먼로가 입은 여성 최초의 청바지 '리바이스 701'은 그가 입어 더 인기를 끌었다. 먼로의 청바지 화보를 보면 상위에 비키만 입고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인생 사진'을 남기다

마릴린 먼로가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잡는 장면은 유명하다. 영화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 1955)'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뉴욕 렉싱턴 52번지에서 촬영했다.

먼로의 이 포즈는 많은 모델들이 TV CF나 잡지 등에서 패러디를 했다. 그리고 먼로가 촬영 때 입은 '흰색 홀터넥 원피스'는 미국 경매에 나와 460만 달러(약51억원)에 낙찰됐다.

◆ 대통령을 위한 생일 축하송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생일 파티에 참석한 메릴린 먼로

메릴린 먼로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45세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먼로는 무대에 올라 케네디를 위한 생일 축하송을 개사해 불렀다.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 해피 버스데이 투유♬".
먼로 그날 입었던 옷은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 드레스'로 불린다. 그 드레스가 1999년 처음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을 때 130만 달러(한화 약 14억원)에 낙찰됐다. 그리고 2016년에는 다시 경매에 나와 480만 달러(한화 약 53억원)에 낙찰됐다. ▶ 내용 더 보기

◆ 먼로 무덤의 장미꽃

먼로는 두번째 남편인 '조 디마지오'와 9개월이라는 짧은 결혼생활을 했다. 조 디마지오는 그녀와 재결합을 원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먼로가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조 디마지오는 먼로가 죽은 후 37년간 매주 두 번씩 그녀의 무덤에 장미꽃을 바쳤다. 디마지오가 숨을 거둘 때 "이제 마릴린을 볼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먼로를 향한 디마지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