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로 산다는 것, 과분하고 설렌다"
보호본능 일으키던 '애완 소년'에서 믿음직한 진짜 사나이가 된 송중기
"나와 심각하게 닮은 꼴이라 송혜교와 결혼 결심"
2년 전,'베테랑'에서 유아인 보고 부러웠지만… '군함도' 개봉 이틀만에 100만 돌파
여름 블록버스터 ‘군함도'가 천만을 목표 지점으로 항해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뉴스는 ‘송송 커플(송중기 송혜교 커플을 줄여 부르는 애칭)’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람들은 일본 강점기 지옥 같은 탄광촌에서 탈출하는 어두운 이야기보다, 그와 송혜교가 만들어낸 천국 같은 이야기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이야기다. ‘태양의 후예'의 리얼리티 시즌2라고나 할까. 1년 전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시작됐을 때, 전 국민은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이 기이한 군대 로맨스에 빠져들었다. 다행히도 그것은 흔해 빠진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었다. 낯선 땅, 분쟁 지역 우르크에서 용맹한 군인과 독립심 강한 여의사가 만났다. 총알이 날아들고, 지뢰가 터지고, 생과 사가 순간을 가르는 그 험지에서 그들은 꿋꿋하게 각자의 소임을 다하며, 운명처럼 빠져든다.
명령과 복종이라는 수직적 관계만 존재하리라던 드라이한 세계에, “사과할까요? 키스할까요?” 같은 잊지 못할 ‘밀당의 언어'를 밀어 넣은 채.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의연하던 남자가, 포화 속에 무릎을 꿇고 여자의 풀어진 구둣끈을 매줄 때, 그 행동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
가만있자, 저 눈빛을 최근에 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해 보니 송중기가 5년 전 출연한 영화 ‘늑대 소년(2012년)'이다. 늑대로 자란 숲속의 소년과 외로운 소녀의 이야기. 당시 여배우 박보영이 말했었지. “철수는 저를 지키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해요. 영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철수의 눈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셨어야 해요. 순식간에 무서운 야수로 돌변하죠.”
늑대일 때나 군인일 때나, 보통의 민간일 때나 송중기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그러한 충직함일 것이다. 그는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서 자기 불신의 미묘한 페이소스를 보여주는 배우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보호하겠다는 선명한 의지와 칠흑 같은 현실을 헤쳐나가려는 싹싹한 기지가 빛난다.
그와 곧 가족을 이룰 송혜교와 많이 닮았다. 송혜교는 2000년, ‘가을동화’로 찬란한 한류 시대를 열었다. 그 드라마는 신파적인 정조 속에서도 '순진한 사랑'의 원형을 보여주었다."얼마면 되는데?"라고 도발하는 남자 앞에서,"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난 돈 필요해요"라고 받아치던 조숙하고 당돌한 여자아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눈물의 여왕이나, 소라게처럼 자기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수줍은 성격이 아니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영화 ‘황진이'에서의 모습처럼,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담대하고 개척자 기질이 강했던 송혜교. 오랫동안 송혜교를 보아왔지만, 나는 그녀가 어떤 순간에도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놓지 않는 소녀 같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훈남’으로 명성을 떨치던 송중기는 2008년, 영화 ‘쌍화점’에서 당대 최고의 꽃미남 조인성의 부하로 발탁됐다. 무리 중 하나였지만, 얼굴만은 군계일학이었다. 그 뒤로 송중기는 다년생 식물처럼 쉬지도 않고 꽃을 피워낸다. 어릴 때 스케이트 선수로 빙판을 누빈 경험 덕에 그에겐 무엇이든 경험하고 싶다는 자신감과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 허세를 경계했고, 호불호가 분명했다. 어떤 일도 대충대충 넘기지 않았다.
마침내 충청도 양반 가문 출신의 ‘성균관 유생’ 송중기가 꿈꾸던 것 이상의 대박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1년)’이 터진다. 뽀얀 피부에 검정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유들유들한 조선 ‘꽃미남 날라리’의 탄생. 그곳에서 동갑내기 친구지만 성향이 전혀 다른 보헤미안 유아인과 모호한 애정 행각도 일으키며.
유아인이 반항아 ‘완득이(2011년)’로 산동네에서 이름을 떨칠 때, 송중기는 영화 ‘티끌 모아 로맨스(2011년)’의 옥탑방에서 구두쇠 한예슬의 시한부 애완동물로 살며 ‘88만 원 세대’의 궁상맞은 로맨스를 착실하게 그려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송중기는 송혜교와의 사랑의 프리퀄이 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거쳐 영화 ‘군함도'에 합류했다. ‘군함도'에서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탄광촌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을 탈출시키는 미군 OSS요원 역을 맡았다.
폭염에 기진맥진한 7월의 어느 오후, 늘 푸른 소나무 같은 송중기를 만났다. 헐렁한 흰색 리넨 셔츠에 올리브색 캡모자, 해리포터 소년 같은 동그란 은테 안경을 낀 채였다. 초승달처럼 길게 찢어진 눈, 총기 넘치는 검은 눈동자, 유난히 붉고 다부진 입술 아래로 목젖이 팽팽하고 두터웠다.
-스스로 성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던 말, 기억하죠?
“맞습니다. ‘늑대 소년'을 하고 나서 만나 뵀을 때, 그랬지요? 당시엔 통과의례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원빈이 ‘아저씨'로 강해진 것처럼, 저도 ‘성인식'을 치르고 싶었어요. 압박감이 심했달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아등바등했나 모르겠어요(웃음).”
-자신의 핵심을 다 보여주지 못한 채 군대에 가야 했으니까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군복을 입고 총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은 듯합니다(웃음).
“29살에서 31살까지, 군인으로 보냈어요. 10살 어린 친구들과 살을 부대끼면서요. 늦은 나이에 군 생활을 한 게 떳떳한 건 아니지만, 늦게 가서 좋은 면도 있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간절함과 절실함은 더해갔지만, 태도는 더없이 유연해졌달까요(웃음).”
그는 연예 병사가 아닌 일반병으로 입대해 강원도 고성의 보병사단 수색대에서 만기 전역했다
-육체적으로도 자신감이 생겼습니까?
“충분히 단련이 됐어요(웃음). 평범한 병사들과 함께 구르면서 지냈던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군인 역할을 연달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정말 가치 있는 시간이었어요.”
-‘태양의 후예' 직후에 영화 ‘군함도'를 선택해서 놀랐습니다. 원톱도 아니고, 멜로도 없는 데다 혼자서 탈출을 이끄는 역입니다. 더 강한 남자, 영웅이 되고 싶었나요?
“대본을 처음 받았던 건 ‘태양의 후예' 촬영 막바지 즈음이었어요. 길게 끌지 않고 바로 결정했어요. 많은 사람이 보고 싶을 만큼 상업 영화로 매력을 갖췄고, 내용으로도 부끄럽지 않겠다고 판단했어요. 게다가 감독이 완성도 높기로 유명한 류승완이잖아요.
여러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멀티 캐스팅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만드는 감독 입장에서는 여러 배우를 배려하느라 심리적 압박이 심하겠지만, 저는 책임이 분산되니 부담이 덜해지죠.”
송중기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군대에서 병장 말기에 들었다. 일병 때 휴가 나와 류 감독의 ‘베테랑'을 보았던 터라 가슴이 뛰었다. 2박 3일 휴가 중 이틀을 극장에서 보내며 감탄했던 영화 ‘베테랑'에서 동년배 친구인 유아인은 재벌 3세로 미쳐 날뛰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군대에서 그는 그가 참여할 수도 없는 수많은 시나리오를 읽었다. 매니저가 소포로 보내온 ‘곡성' ‘암살' ‘베테랑' 같은 대본들… 그라운드에서 함께 선수로 뛰다 강제로 벤치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송중기다), 그 끓는 피를 어찌 다스렸을까.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에서 유아인의 연기를 봤을 때... 부러웠나요?
“부러웠어요. 너무 훌륭한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게 부러웠어요. 그 역할을 또 너무 잘 해내니 부러웠지요. 아인 씨는 친한 친구지만, ‘베테랑'에서도 ‘사도'에서도 정말 잘했어요. 얼마 전 이광수, 박보검 두 친구가 제게 “‘군함도’ 같은 영화를 해서 부럽다"고 하더군요. 몇 년 전 제가 느꼈던 감정일 거예요(웃음). 부럽긴 해도, 초조하진 않은 거죠(웃음).”
-류 감독은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시작해서, 인물을 뜨겁고 리드미컬하게 쓰는 거로 유명해요. 그런데 송중기는 아주 차갑게, 관습적이리만큼 침착하게 사용했더군요.
“맞아요. 아주 차갑게 쓰셨지요. 어쩌면 ‘군함도'에서는 온도를 조절해서 적재적소에 쓰셨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큰 영화라도 모두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법이지요. 이 영화를 어떤 이야기라고 설정했나요?
“제가 연기한 박무영(광복을 돕는 미군 OSS 요원)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저는 특별히 상대역이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소희(아역 배우 김수안)만 바라봤어요. 특수 부대 요원으로 명령에 따라 오차 없이 임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마지막에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저 아이를 구하고 싶다… 그래서 결국은 그 지옥 섬에서 조선인 전체를 구하기로 한 거죠.”
-수백 명의 군중이 움직이는 현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군요.
“그래서 더욱 혼자 튈 수가 없었어요. 혼자 튀려고 하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웃음). 저는 많은 사람과 뒹굴며 조금씩 더 큰 그릇이 되어간다고 느꼈어요.”
-배우에겐 스크린에 어떻게 등장해서 어떻게 퇴장하는가가 중요한데, 너무 늦게 불쑥 들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나왔지요(웃음). 원래 시나리오에선 1시간 후 등장인데, 영화를 보니 35분 만에 나왔던데요(웃음). 등장 타이밍은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저로 인해 흐름이 끊기면 안 되고, 영화 전체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최우선이지요.”
-여전히 류승완 감독을 신뢰하나요?
“단 한 컷, 한 프레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세요. 그분이 젊은 세대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신뢰받는 감독이 되신 건 우연이 아니죠. 한 분야에서 정점에 이르려면 미쳐야 해요. 감독님을 보며 생각했어요. 나도 더 미쳐야겠구나.”
-흥분하는 법이 없군요(웃음). 충청도 양반 가문 기질인가요?
“류 감독님도 저도 충청도 출신이에요(웃음). 살아온 환경이 영향을 미치겠지요.”
-어릴 때 스케이트 선수였지요? 왜 그만뒀습니까?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대전시 대표로 출전하면 1등도 종종 했는데, 전국 대회에 나가보니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어요. 중2 때였어요. 서울에는 대단한 인물들이 많구나… 내가 이거 하면 먹고살기 힘들겠다… 그만둘 때 많이 울었어요.”
-‘군함도'는 대규모 세트와 군중 신, 폭파 신 등으로 힘든 촬영으로 알려졌어요. 실제 경험해 보니 어떻던가요?
“대탈출 장면은 35회차로 예상했고, 실제로 한 달 반 정도 매달렸어요. 나날이 전쟁이었지요. 그보다 더한 건 막장 장면이었어요. 해저 1,100m 아래 좁은 갱도에서 연기하려니, 고역이었어요(웃음). 석탄 가루를 묻혀서 서로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데… 황정민 선배 예언이 맞았어요. “내가 ‘국제 시장'에서 경험해보니, 탄광은 찍을수록 계속 더 힘들 것이다."”
-언제 행복했습니까?
“(해맑게 웃으며)촛불 장면 찍을 때요. 그때가 광화문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였고, 촬영 당일에도 촛불 인파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정의감에 사로잡혀 다들 들뜬 기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영화에서는 조선인들이 어둠 속에 촛불을 들고 모여 탈출을 할지 말지, 갑론을박하는 장면인데 대단히 연극적인 장면이었어요. 놀랍게도 슛이 들어가자, 그 많은 사람이 서로 호흡이 척척 맞았고, 한 번에 오케이가 났어요. 얼마나 짜릿했겠습니까(웃음).”
-‘태양의 후예' 촬영 때는 언제 행복했나요? “사과할까요? 키스할까요?”라는 대사를 할 때는 기분이 어땠습니까?
“(미소 지으며)그 장면은 그리스에서 찍었어요. 그런데 실제 대사를 하는 제 기분은 씁쓸했어요. 고백했는데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고, 그래도 좋아하는 감정은 거둘 수 없고… 자연인 남자 송중기라면 그런 말이 쉽게 입밖에 안 나왔을 거예요(웃음). 그 장면이 그렇게 사랑받을지 정말 몰랐습니다.”
-애완에서 애인으로, 송중기라는 남자가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그래서 깨달았어요. 자연스럽게 되는 거구나. 초조해할 필요가 없구나(웃음). 나라는 사람이 작품으로 흘러나오는 거구나.”
-이제까지 출연했던 여러 작품을 보면 말 안되는 상황을, 말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웃음). 왠지 믿음이 간달까요. 최민식, 송강호, 이병헌 류의 페이소스와는 다르지만, 상대에 대한 ‘충성심'과 본능적으로 상황을 감지하는 ‘총명함'이 느껴져요. 선천적으로 공감지수가 높은 편인가요?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웃음).”
-훨씬 앳돼 보이던 영화 ‘늑대 소년’ 때가 생각나네요. 저를 포함해서 전국의 중년 부인들이 몇십 년을 한 자리에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렸던 ‘소년 늑대'를 보고 눈물을 훔쳤습니다만.
"(미소 지으며)그 영화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대사 한마디 없이, 오직 마임으로만 늑대 연기를 했지요. 상업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나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때 처음 알았어요. 몸동작만으로 눈빛만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구나. 슛 들어가면 보영이(배우 박보영) 얼굴만 쳐다봤어요.
온몸으로 얘기를 들었어요."
-잘 듣는 게 대화의 본질이죠. 오롯이 듣고 반응하는 연기는 진실해질 수밖에요. 충성심에 대해선 어떤가요?
“그건 부모님께 물려받은 기질이에요. 상처받아도 후회 없을 때까지 깊게 믿어주는 거죠. 친구든, 연인이든, 회사 직원이든, 나아가 관객과의 관계도 길게 가야 한다고 믿어요.”
-그 부분이 송혜교 씨와 닮은 지점이지요?
“하하. 저희는 심각하게 비슷해요. 정말 심각하게 닮았어요. 떠올리는 말, 현장에서 일하는 태도, 아이유를 좋아하는 음악 취향까지. 더불어 그분은 여자로서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저는 남자로서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많이 닮았고 그래서 결혼을 결심한 거죠.”
-일과 사랑, 매사 승승장구에 자존감도 높은 편인데, 의기소침할 때는 없었습니까?
“일에서 성공한다고 자존감이 높아지진 않아요(웃음). 저는 성격이 좀 무딘 편이예요. 다만 좀 시무룩했던 시절은 있었죠. 하고 싶던 영화를 준비하던 중에 영장이 나와서 군대를 가야 했거든요. 그때 속이 상해서 군대 가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열 살이나 어린 부대원들 앞에서... 부끄러웠어요(웃음).”
-정말 전화위복이 따로 없군요!
“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더군요(웃음).”
-삶도 영화도, 연기 톤 마저 멜로드라마틱합니다. 그래서 배신을 일삼는 거친 누아르 영화보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로열티'를 지키려는 당신 작품이 사랑받는 거겠죠.
“그런가요? 반면 너무 포멀하지 않은 날 것의 저를 꺼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당신의 꽃 같은 외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외모는 엄청난 경쟁력이에요. 저도 그걸 알고 있어요(웃음). 반면 외모의 매력을 비틀려고 과욕을 부리고 싶지도 않아요. 다 때가 있겠지요. 류승완 감독이 그러더군요. 절 보면 제임스 코번이 생각난다고. 가만있으면 눈빛이 무섭다는 거죠. 하하.”
-당대의 영화인들과 스펙터클한 영화를 찍고, 커리어의 정점에서 아름다운 반려자를 맞고… 송중기로 산다는 건 당신에게도 축복이겠지요?
“과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명이 긴 사람에 비해 좋은 기회를 빨리 얻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그릇이 커졌어요.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연기도 인생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진정성 있게 행동하면서요. 과분하지만, 그만큼 설레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