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숭아나무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처음 맺히는 열매는 거친 풀밭에 묶인 소의 둥근 눈알을 닮아갔다
후일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
윗집에 살던 어름한 형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숫기 없는 나도 이 나무를 좋아했다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
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문태준(1970~ )('맨발', 창비, 2004)

이름부터 짠한 개복숭아나무에게서 시인은 아이를 앞세운 젊은 엄마의 흐느낌을 듣는다. '끝내'에는 그 흐느낌의 붉은 기운이 묻어난다. 개복숭아꽃이 복숭아꽃보다 더 붉은 이유다. 잘고 볼품없는 초여름 개복숭아 열매는 소의 먹먹한 눈을 닮았고, 제풀에 익어버린 늦여름 열매는 버림받은 여자의 기구한 눈을 닮았다. '폭삭'에는 제풀에 주저앉아버린 그 막막함이 배어난다. 시늉만 복숭아인 이유다.

처연과 기구가 엮어내는 한 여자의 일생, 이런 서사를 좋아하는 남자는 아마도 어름하거나 숫기 없는 사람일 게다. 참회가 많아지는 건 우연 같은 운명에 순명하며 살았기 때문일 게다. 실은 그런 '개'복숭아야말로 이 세상의 '킹' '왕' '짱'과 '꿀' '핵' '캐'를 아우르는 접두어로서의 '개'이자 필부필부로서의 '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