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이제야 지고 있다. 늘 오가는 벚나무 길, 살이 다 발려 나뒹굴던 버찌 씨가 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길바닥 벽돌 틈새에 몸을 옹그린 몇 놈 빼고. 데려가려는 장맛비한테 앙탈깨나 부렸겠지. 연분홍 곱디고운 꽃잎은 떠나보낸 지 오래. 열매 맺었다 땅에 스러져 검붉은 피를 흘리던 녀석들이다. 행여 발에 묻기라도 할세라 피해 다니기를 달포쯤. 벚꽃은 뒤끝이 지저분해…. 온 누리 달뜨게 해준 고마움 싹 잊고 타박이라니.
흠 많기로 치면 사람만 할까. 툭하면 한둘은 말에서 내리는 장관 인선(人選) 때마다 결함이 있느니 없느니 볼만한데, '흠(欠)'이란 말 제쳐두고 '흠결(欠缺)'만 쓰는 데에도 눈이 간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이 두 후보자에 대해 임명을 못 할 정도로 결정적 흠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사전마다 이 흠결을 '흠축(欠縮)'이랑 같다고만 해 놓았다. 그럼 흠축은? '일정한 수효에서 모자람이 생김'이다. 흔히 수량이 모자라거나 누가 야위어 보일 때 쓰는 '축나다'의 '축'이다. 사람 허물을 이르면서 엄연히 '물리적 부족'을 뜻하는 '흠결'을 쓰니 영 어색하다. 조선왕조실록에 281번 나오는 이 말이 '허물'이란 쓰임새로 도드라지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인 듯하다.
왜 들어맞지 않는 말을 쓰게 됐을까. 사전에서 다른 말로 풀이를 넘길 만큼 비중(比重)도 작은데. 혹시 비유적 표현? 어렵고 무리해 보인다. 그럼 '나뭇결, 물결, 바람결'처럼 '결'을 '흠'에 갖다 붙였나?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뜻하는 '결'이 '흠'과는 어울리질 않는다. 아무튼 '허물' '흉'처럼 쉽게 쓰면 그만이고, '흠'만 쓰기 마땅찮으면 하다못해 흠절(欠節) 흠점(欠點) 흠처(欠處)도 있다.
벚나무 길 건너 정류장 나뭇가지가 제법 늘어졌다. 매실처럼 아직 푸릇푸릇, 은행(銀杏)이 조랑조랑 달린 것이다. 이놈들이 가으내 또 아우성칠 텐데. 암수 못 가리고 심은 당신들 잘못이지, 왜 우리더러 냄새 고약하다느냐며…. 아무렴, 벚나무고 은행나무고 흉보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