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해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됐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의 탈퇴는 이 협약의 근간을 흔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구를 열 받게 만든 트럼프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국제환경회의에서 채택된 기후변화에 관한 대표적인 다자간 협약이며, 정식 명칭은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기본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는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가뭄, 홍수, 태풍 등의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등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났다. 이상기후는 생태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위협하는 상황을 몰고 오게 되었다. (▶수몰위기 몰디브, 리조트 건설해 이주자금 벌기로)이런 문제는 한 국가와 민족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세계가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을 모아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었다.
채택 당시, 회의 참가국 178개국 중 154개국이 서명했고, 2년 뒤 공식 발효되었다. 기후변화협약은 매년 협약 이행 방법 등 주요 사안들을 회의하고 결정하는 총회를 개최한다. 우리나라는 1993년에 가입했으며,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 방안으로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와 이행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어 협약이 실제로 추진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감축 목표의 효율적 이행을 위해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들이 서로의 배출량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거나(배출권거래제▶), 다른 나라에서 달성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도 해당국 실적으로 인정해 주는(청정개발체제▶, 공동이행제도▶) 등 다양한 방법을 인정했다. 의무 이행 대상국은 2012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하기로 약속했으나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으며 감축 의무가 있던 선진국에서조차 협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이탈하기도 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캐나다, 교토의정서 첫 공식 탈퇴
2020년 시효가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잇기 위한 기후변화 협정으로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195개국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매년 자국 입장에 따라 의견만 분분해 제대로 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냈던 총회와 달리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시 미국과 중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면서 세계적인 공감대가 늘어나면서 참가국들의 지지를 받았다.
협약의 핵심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2℃ 이내보다 낮은 수준, 실제로는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으로 '이행 강제성'까지 담고 있어 교토의정서보다 협정의 실효성을 높였다. 이 협약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더 큰 의무를 지고, 2020년 이후 개발도상국에 매년 재원을 지원해야 한다.
▶교토 땐 '의정서',파리는 '협정'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공동 노력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가입국이 공동의, 그리고 동시에 차별적인 책임을 담당한다는 것이 기후변화협약의 주요 원칙이다.
여기서 '공동의 차별적인 책임'이란 일찍이 산업화를 진행해 온실가스 배출 및 기후변화에 대해서 역사적인 책임을 가진 선진국들이 좀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선진국의 선도적인 역할과 함께 개발도상국의 현재 사정을 배려하되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과 능력에 입각한 의무 부담을 부여하도록 한 것이다.
아직 파리협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나라는 없지만 겉으로는 "협약을 지키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키지 않는 나라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협약의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이를 지키지 않는 나라와 기업을 압박하지 않으면 이 협약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의 협약 탈퇴로 이번 세기 안에 지구의 평균 기온이 0.3℃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오르면 생물종의 25%가 멸종한다고 한다.
중국과 인도 등 굴뚝산업이 주를 이루는 국가나 산업화 단계에 접어든 국가, 평소 협약 체결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냈던 국가들의 연쇄 탈퇴가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들 국가의 정부는 기업들로부터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재검토하라는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협 카이스트(KAIST) 초빙교수는 "미국이 실제로 파리협약을 탈퇴하는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국가들이 나타날 수 있다"며 "추가 탈퇴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일부 국가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낮추자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보기
오염 물질은 국경선에 구애받지 않는다. 한국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려면 중국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중국이 한국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확산성이 큰 기체다. 지구상 어느 한 곳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분자는 6개월 후면 전 지구의 모든 공간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모든 나라가 동참하지 않고선 이산화탄소 농도를 떨어뜨릴 수 없다.
국가 간 관계를 규율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만들어져 있지 않다. 행동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결국 각국의 자발적 양보가 필요하다. 그건 '내가 하면 상대도 할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누군가 자기 이익만 생각해 풀밭에 내놓는 가축 수를 늘려 가면 다른 농민도 덩달아 가축 사육 두수를 늘리게 된다. 그건 파국을 부른다. 지구 생태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으로 굴러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선 미국처럼 큰 나라가 솔선해야 한다. ▶더보기
GFC(Green Climate Fund, 녹색기후기금)는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청정에너지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창설된 기구로 각국 정부와 민간 부문의 기부금으로 조성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4년 GFC에 3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임기 동안 총 10억달러를 출연했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이 GFC에 기부금을 낼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서 UC 버클리 뮬러 교수는 "개발도상국에 돈만 주고 알아서 해보라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천연가스,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별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글라데시를 예로 들며 "방글라데시의 경제 성장률이 4%라고 가정했을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매년 4%씩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지구온난화 말고도 방글라데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으므로 방글라데시가 경제 성장을 멈출 이유가 없으며, 방글라데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다른 국가들이 통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개도국이 경제 발전을 희생하지 않고도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보기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하려고 한 석유, 가스, 석탄 기업들도 협약 탈퇴를 반기지 않는 모습이다. 왜일까?
미국의 투자 전문업체 모틀리 풀은 최근 "일부 유전 개발 서비스 회사들이 단기적인 수혜를 입는 것을 제외하고는 석유와 가스 기업들이 미국의 기후변화 협약 탈퇴의 가장 큰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화석 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가 풀려 당장은 이익을 볼 것 같지만 규제 완화로 인해 대대적인 생산 증대가 이뤄지면 감산 중인 중동 산유국들이 증산에 돌입, 원유와 가스 가격이 대폭락하는 악순환에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 엑손모빌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들도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에 반대했다. ▶더보기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곳은 중국이라는 분석이 크다. 세계 석탄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은 여전히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 국가다. 중국은 앞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개장하는 등 클린 에너지 산업에 397조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올 해 1월 100개의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폐기했다. 2020년까지 3610억달러(2조5000억 위안)를 들여 화석 연료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세계 환경 장관 회의에 참석했던 릭 페리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한 중국의 리더십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로부터 환경 오염 국가란 비난을 받고 있는데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로 국제적인 비난과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더보기
한국도 미국 탈퇴 영향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전세계적인 합의가 만들어진 상황인만큼 한국은 일관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추진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떠난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국내 기업들이 진출할 경우 미래 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더보기
▶한국 산업계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바뀌나" 혼돈
▶헛바퀴 도는 '배출권 거래제'
문제는 파리협약을 이행하고 기존 에너지 발전 체계를 신재생에너지 발전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기 공급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온실가스 감축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전력정책 제안' 보고서 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파리협약의 발전부문 온실가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천연가스 발전소로 대체할 경우 가구당 전기요금이 월 1600원씩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신재생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전력 등 에너지 가격 인상을 기업이나 일반 가정들이 당분간 감내해야만 한다. 가격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세계는 상호 의존적(interdependent) 관계를 형성한다. 각국은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생태 공동체, 경제 공동체를 공유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동반자 관계는 다음번에 상대방 양보를 받기 위해 이번엔 내가 양보하겠다는 각오가 있을 때 유지된다.
트럼프의 '뭐든지 자국 우선주의'는 세계적 환경·교역 협력 시스템 구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최강대국 미국이 자기 이익에 매몰돼 이웃의 고충을 무시하는 건 정의(正義)에도 맞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국제 협력 시스템이 손상되면 길게 볼 때 미국에도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