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5월 30일 오후 9시31분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500m 떨어진 한 오피스텔 1층 여자화장실. 경찰대를 졸업한 고시3관왕(입법·행정·사법고시) 출신의 ‘최강 스펙’ 국회입법조사관(사무관) 오모(남·35)씨가 화장실 첫째 칸으로 불쑥 들어갔다. 오씨는 천장 칸막이 틈으로 휴대폰을 밀어넣어 둘째 칸에서 소변을 보고 있던 피해 여성(19)을 동영상으로 찍다가 그만 딱 걸렸다.
10분 뒤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경찰관 두 명이 출동하자, 오씨는 휴대폰을 압수하려는 경장에게 “전화기를 돌려달라”고 소리치며 경찰관의 오른쪽 어깨를 깨물었다. 이어 옆에서 말리던 경위 팔을 할퀴고 종아리도 물었다. 경찰 최초 조사에서 허위 인적사항을 대고, 소란을 일으켰던 그는 ‘귀가 조치’된 후에도 ‘인터넷 원격 조종’으로 압수 전화기를 ‘초기화’하는 증거 인멸에 나섰다. 법원은 그런 오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오씨는 2015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자,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냈다.
그에게 적용된 몰카 처벌죄(구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3조1항·카메라이용촬영죄) 조항이 '막연한 개념'이라 명확성 원칙에 위배돼 '표현의 자유·예술의 자유·일반적 행동 자유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이 법 조항이 '우발적 촬영'과 '성폭력적 촬영'을 구분하고 있지 않아 헌법상 비례의 원칙·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
2년이 지난 올해 6월말, 심판 결과가 나왔다. 그 사이 오씨는 몰카를 또 찍다 걸려 철창 신세를 지고 있었다. 2015년 10월, 그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빌딩 1층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옆칸 여성(27)의 용변 보는 모습을 촬영하려다 걸렸고, 결국 징역형이 확정돼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헌법재판소는 9일 오씨가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대 2 의견으로 카메라이용촬영죄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이 뉴스를 본 일부는 이런 궁금증을 쏟아냈다. “6대 2 중에 위헌 의견 냈다는 ‘2명’이 대체 누구냐” “생각해보니 예술할 자유,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위헌 소송을 낸 거냐”…. 은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에게 이 내용에 대해 더 물어보기로 했다.
-카메라이용촬영죄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의견을 낸 2명, 대체 누굽니까.
"강일원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 입니다."
-앗…. 강 재판관은 지난 탄핵 심판 때 인기를 많이 끌었던 그 분. 두 사람 모두 합리적 성향을 가졌다고 알려졌는데, 대체 어떤 점에서 이 법률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건가요?
"한 마디로 법이 규정하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의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몰카 처벌조항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경우 처벌한다'고 돼 있습니다. '모든 신체'가 아니라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해야 처벌 대상인데, 그 신체가 대체 어디냐는 것이죠. 단순히 성적 호기심을 발동시키거나 부끄러움을 주는 정도인지, 아니면 명백한 '음란물'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경우인지 명확하지 않고 '신체 부위' 또한 성적 상징이 분명한 부위인지, 광범위한 다른 신체부위도 포함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렇게 처벌조항의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없고, 판사들도 가치관에 따라 '성적 수치심' 해석이 달라져 유무죄가 갈릴 수 있다는 거죠."
-제 아무리 성적 수치심이란게 주관적 감정이 들어가는 상대적 개념이라고 해도, 남의 몸을 함부로 찍는건 '빼박캔트' 불법 아닌가요?
"그렇죠. 입장을 바꿔 내 몸이 허락없이 찍혔다고 생각하면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죠. 여기에 성적 수치심까지 들게 하는 사진이라면 처벌해야 한다는 게 법 내용입니다. 단순히 부끄러움을 주는 데서 나아가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죄로 본 거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남의 신체를 허락없이 촬영하는 행위는 초상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초상권 침해' 죄는 따로 없기 때문에 형사책임은 물을 수 없고 민사상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신체 사진을 동의나 허락 없이 사용한 경우에 초상권 침해로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들쭉날쭉 판결이 예전부터 문제였다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릴 수가 있다는 뜻인가요?
"지난 2013년 지하철에서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전신을 찍은 사람이 무죄를 받았지요, 반면 같은 지하철이더라도 여성의 허벅지를 부각해 찍은 사진에는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법 자체에서 명확히 정하고 있지 않고 여러 형태로 판결이 나다 보니 '들쭉날쭉'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법원에 판단 기준이 없는 건 아닙니다. 2008년 대법원은 '촬영된 신체 부위와 옷차림, 촬영 경위, 장소,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이후 법원의 몰카 범죄 판단 기준이 돼 왔습니다.
'종합적 고려'는 법원이 가장 애용하는 표현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문제는 누가 고려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사진을 보고도 어떤 판사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는 반면 다른 판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모르는 여자를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 몰카를 찍었지만 노출이 없는 옷차림에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해 찍지 않다고 무죄, 짧은 바지 입은 여성을 바짝 붙어 찍었다고 벌금 150만원, 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는 '밀착'하고 찍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 정말 이렇게 유·무죄가 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까?
"판사별로 개인차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전혀 예측가능성 없이 유무죄가 갈린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언론보도를 단편적으로 보면 판결이 천차만별인 것 같지만, 실제 사건기록을 보면 무죄가 날 만한 사건은 무죄가, 유죄가 날 만한 사건은 유죄가 나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제가 과거에 변호를 맡았던 사건 중 하나는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이 지하철에서 32장의 몰카를 찍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중 상당수가 여러 명의 여성들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전신을 촬영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사진을 촬영한 의도(외국인으로서의 호기심), 거리, 신체부위와 옷차림(몸 전체, 노출이 심하지 않은 상태)등을 종합해 31장은 무죄로 결론났고 가슴부위를 부각한 사진 한 장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15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문제는 경계선상에 있는 '애매한' 사진들이지요. 한 사건에서 1심과 2심, 대법원이 시각차를 보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3년 11월부터 6개월간 지하철 안에서 49건의 몰카를 찍은 혐의로 기소된 유모씨의 경우 피해자 A씨의 가슴을 중심으로 상반신을 촬영한 한 장의 사진에서 판결이 엇갈렸습니다. A씨의 얼굴은 나오지 않고 회색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있어 노출된 부위는 없었습니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좋아하는여성이라 나도 모르게 엘리베이터에 타 촬영했다'는 경위에 주목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관적 경위보다 사진의 객관적 특성에 중심을 둬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법원 말대로 '여러 상황을 종합하더라도' 판사별로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거죠."
-종합하면 법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일견 타당한 것 같기도 한데요, 나머지 재판관 여섯 분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나요?
"헌재 다수의견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대법원이 2008년 제시한 기준에 따라 법관이 충분히 판단 가능한 영역이라는 거죠. 게다가 '성적 욕망' '수치심'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이어서 이를 테면 '다리는 된다' '허벅지는 안 된다'식으로 구체적으로 법에 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사실 사법부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최소한 초상권 침해는 될 수 있는 위법한 행위에 대해 자칫 '다리는 된다'고 면죄부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헌재가 이 조항을 합헌으로 본 데는 몰카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도 한 몫 했습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사진이 광범위하게 유포될 뿐 아니라, 성능 좋은 카메라는 멀리서 촬영한 사진도 특정부분을 확대할 수 있어 인격권 침해가 심각해졌죠. 법도 그에 맞춰 '촬영'뿐 아니라 '판매·임대·전시'행위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했고, 촬영 당시 동의를 받았더라도 나중에 허락없이 배포하는 경우 처벌하는 규정(14조의 2항)도 신설했습니다. 이렇게 날로 처벌의 영역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체 입법도 없이 근거 조문을 위헌으로 보기는 더욱 어려웠으리라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