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차와 부딪치자 운전대 거머쥐어 -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신양재나들목에서 발생한 졸음운전 사고 직전, 버스 운전기사 김모(51)씨가 선글라스를 끼고 오른쪽 손을 핸들에서 내려놓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위 사진). 김씨는 앞서 가던 K5 차량과 충돌한 직후엔 다시 핸들을 쥐었다.

2012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약 100㎞쯤 떨어진 간에쓰(關越) 고속도로에서 45인승 관광버스가 도로 옆 벽을 들이받았다. 탑승자 중 7명이 숨지고 3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 후 일본 정부는 '도로 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법을 뜯어고쳤다. 최대 4시간을 운전하면 30분씩 휴식을 하는 방안을 법제화했다. 이전에는 버스 회사마다 사규로 안전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 1월 15일 오전 2시쯤 일본 나가노(長野)현 18번 국도에서 45인승 관광버스가 도로 3m 아래로 추락했다. 운전기사를 포함해 15명이 사망했고, 26명도 크게 부상했다. 일본 당국은 졸음운전을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번에 일본 정부는 안전규정을 어긴 버스회사에 부과하는 벌금을 100만엔(약 1006만원) 이하에서 1억엔(약 10억600만원) 이하로 '100배' 높이는 강경책을 내놨다. 안전 위반 운행에 관여한 개인에 대한 처벌도 100만엔 이하 벌금에서 징역 1년 이하, 150만엔(약 1500만원)으로 강화했다.

일본·유럽은 하루 최대 9시간 운전

현재 일본 버스 기사의 1일 최대 운전 시간은 9시간이다. 1주일간 최대 40시간까지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주 5일 근무가 보장될 뿐 아니라,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본 도로운송법에 따르면 운행 시간이 4시간을 넘으면 30분, 6시간을 넘으면 적어도 45분, 8시간을 초과하면 1시간을 쉬도록 의무화한다. 각 사의 운행 규정상 2시간마다 15분을 쉬어가는 경우도 많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이 규정한 버스 기사 근무시간 규정에 따르면 하루에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9시간으로 제한된다. 또 휴식 없이 운행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4시간 30분이다. 미국의 버스 운전자는 8시간 휴식을 취한 경우에 한해서만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운전이 가능하다.

안전규정 어겨도 과징금 180만원

한국은 대중버스 기사의 안전규정이 선진국에 비해 느슨하고, 처벌은 미약하다.

지난해 7월 17일 강원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가 시속 약 100㎞로 승용차 5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20대 여성 4명이 사망했다. 사고를 낸 버스 기사는 지난 2월 항소심에서 금고 4년 6개월형을 받았다.

가해버스 블랙박스로 본 사고 순간 - 9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신양재나들목 부근에서 7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광역버스의 블랙박스에 담긴 영상이 사고 이튿날인 10일 공개됐다. 졸음운전을 하던 버스 기사는 앞서 가던 K5 승용차를 향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진했다(위 사진). 이후 버스는 승용차를 강하게 들이받으면서 밀고 올라가 짓뭉개 버렸다(아래 사진). 버스 앞 유리창에 튀어 오른 파편들은 충돌의 충격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고로 K5에 타고 있던 50대 부부가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이 사고 이후 우리나라도 버스 운전기사의 의무 휴식제가 도입돼 지난 2월 시행됐다. '운전자가 기점에서 종점까지 1회 운행할 경우 10~15분간 휴식' '4시간 연속 운전 시 30분 휴식' 등의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 이를 위반하는 사업자에 대해선 '사업 일부 정지'또는 '과징금 180만원 부과'를 하기로 했다.

기사들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2~3시간 운전하고 30분 정도 쉬지만, 실제 하루 근무시간이 16시간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경기 성남의 한 광역버스 기사는 "배차 간격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한 후 5분도 못 쉬고 운전대를 잡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광역버스를 3년째 운행하는 박모(52)씨는 "밤 11시에 퇴근해 다음 날 7시 출근인데 어떻게 8시간을 자느냐"며 "안전규정을 어겨도 처벌은 솜방망이"라고 했다.

광역버스 운전기사들은 보통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 제도(복격일제)로 근무한다. 운수 업체 입장에서는 기사 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기사들도 일할 땐 힘들어도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는 '복격일제'를 선호한다. 승객 안전보다는 회사와 버스 기사 자신들의 편의를 우선 생각한다는 것이다.

"초과 근무 없애야"

무제한 연장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59조'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 내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 연장 근무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운수업 등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 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 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는 예외 적용을 받는다. 전국공공운수노조가 지난 5월 전국 44개 버스 사업장을 상대로 장시간 근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민영 시외버스 업체 운전자의 하루 평균 운행 시간은 17시간 8분으로 나타났다. 가장 운행 시간이 짧은 준공영 시내버스도 하루 평균 10시간 26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