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유천(31)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가 오히려 박씨에 대한 무고·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여성 송모(24)씨가 지난 5일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가, 똑같이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여성 이모(25)씨가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2년' 유죄를 선고받은 것과는 정반대 결과다.
박씨는 앞서 검찰 단계에서 성폭행 혐의 없음 처분을 받으면서 누명을 벗었다. 박씨를 고소했던 유흥업소 종업원 송씨와 이씨는 업소 화장실에서 각각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이씨의 무고 혐의는 유죄, 송씨의 무고 혐의는 무죄가 나온 것이다.
비슷한 재판 결과가 최근에 또 있었다. 배우 이진욱(36)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던 여성 오모(33)씨. 이진욱씨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지고 오히려 이씨로부터 '무고' 혐의로 맞고소돼 재판까지 갔던 오씨는 지난달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성폭행도 무혐의, 무고도 무죄라면 박유천·이진욱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걸까. 은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에게 왜 이런 애매모호한 수사·재판 결과가 나오는 지 물어봤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 당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는 가수 박유천(왼쪽)씨와 배우 이진욱씨.

-박유천씨에 대한 무고 혐의로 재판을 받던 두 여성 중에 한 사람은 유죄, 나머지 한 사람은 무죄가 나왔어요. 똑같이 "성폭행 당했다"고 신고했는데 왜 결과가 다를까요.
"이번에 무죄가 나온 송씨의 경우 재판부가 명백하게 허위고소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송씨는 ▲성관계 이후 박씨에게 금전을 요구하지 않았고 ▲성관계 바로 다음날 고소를 했으며 ▲사건 발생 직후 친한 친구에게 피해사실을 털어 놓고 고민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유죄를 받은 이씨는 ▲두 명의 남성과 짜고 박씨에게 거액의 금전을 요구했고 ▲박씨와 협상이 결렬되자 고소를 했으며 ▲성관계 이후 박씨 일행 차량으로 귀가하고, 당시 주변에도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죄명에 단순히 무고 혐의만 있는 게 아니라 박씨를 협박해 남성들과 함께 5억원을 뜯어내려 한 '공갈미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금전 요구 정황이 있으면 무고죄가 유죄가 될 확률이 높아요."

-혹시 송씨가 1심에서 무고 혐의 유죄를 선고 받은 여성 이씨와는 박유천씨에 대한 고소를 '공모'한 정황은 없었나요?
"판결문에 그런 정황은 나오지 않아요. 두 사건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건입니다. 만일 두 사람이 공모했다면 송씨가 무죄를 받기 어려웠겠지요."

-송씨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거꾸로 박유천씨의 성폭행 혐의가 맞다는 건가요? 법원이 박씨가 송씨를 성폭행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는 건가요?
"아니요. 송씨 무고 혐의가 무죄라고 박씨가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박씨의 성폭행 혐의는 이미 수사기관이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강간 혐의가 인정되려면 성관계 당시 박씨가 폭행·협박으로 여성을 제압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하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거죠.
즉 박씨의 강간혐의와 송씨의 무고 혐의는 각자 별도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유죄가 된다고 저절로 다른 하나가 무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송씨의 무고 여부는 고소 당시 그의 '인식'이 어땠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러 정황상 송씨 입장에서는 당시 성관계가 강압적으로 느껴졌을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명백히 허위고소라고 볼 수 없다는 거죠. 반면 박씨에 대한 무혐의 판단은 박씨의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송씨가 '강간인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해서 박씨 행위를 강간으로 판단할 수는 없죠. 이처럼 법적으로 판단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과 같이 둘 다 무죄 혹은 무혐의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배우 이진욱씨 케이스도 같은 경우라고 해석하면 되는건가요?
"그렇습니다. 이씨를 고소한 오모씨는 지난해 7월 "이틀 전 저녁자리에서 지인과 동석한 이씨를 만나 저녁을 먹고 헤어졌는데 그날 밤 늦게 찾아온 이씨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받았다"며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이후 조사를 받으면서 "가구설치를 해 준다며 밤늦게 집으로 찾아 온 이씨가 강제로 옷을 벗겼고,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씨는 의혹을 부인하며 오씨를 무고로 맞고소했고 수사기관은 이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오씨는 무고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지요.
법원은 먼저 "오씨가 밤 12시에 찾아온 이씨에게 문을 열어 준 점 등을 보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고도 허위신고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씨 진술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일관되고, 사건 후 이씨를 집에서 내보냈으며 다음날 친구와 상의를 거쳐 고소를 한 점 등을 볼 때 '허위신고'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씨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가졌다고 여길 여지가 있다는 거죠."

-'고소 내용이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 그 정황을 다소 과장한 데 지나지 않은 경우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건데…. 원래 약간의 진실에 기초해 허위와 과장을 섞으면 그게 더 무서운 '거짓말'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더라도 '정황의 과장은 무고가 아니다'라는 게 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신고 사실에 일부 허위 사실이 있더라도 그 일부가 범죄 성립 여부를 좌우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무고죄가 아니라는 거죠. 이를테면 '맞아서 다쳤다'고 고소했는데 맞긴 했지만 다치지는 않은 경우, 여러 사람과 싸우다가 열굴을 긁히고 멍이 들었는데 몇 년 전 부러진 코뼈까지 포함시켜 고소한 경우, 강간은 당했지만 다치지는 않았는데 '강간당해 다쳤다'고 고소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사건에 대입하자면, 원치않는 성관계를 강압적으로 가졌다고 느낀 여성이 '강간당했다'고 신고한 것을 일종의 정황의 과장으로 보는 거죠.
그 이유는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고소(신고)할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고소내용에 일부라도 허위 사실이 있으면 무고죄로 처벌한다고 하면 범죄피해를 입고도 무고죄 처벌이 두려워 신고를 못하게 되고, 이는 자칫 범죄를 조장하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한 검찰 관계자는 “피해 사실을 과장하는 정도까지 무고죄로 엄히 다스리게 된다면, 억울한 범죄 피해자들에게 ‘함부로 고소 하지 마라. 무고로 당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국가에 범죄 피해를 구제해달라고 하는 권리를 빼앗고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 유흥업소 종업원인 송씨를 신문하는 검사의 태도가 일부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았어요. 검사가 법정에서 송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데) 피고인은 왜 화장실 문을 열고 도망치지 않았죠?" "피고인은 '얼떨결에 성교를 당했다'고 했는데, 성폭행이라면서 '얼떨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 부분 등이 '그릇된 성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왔어요.
"글쎄요…. 신문 과정 일부 내용을 두고 이를 '유흥업소 여종업원에 대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팩트만 놓고 보면 기본적으로 이번 재판은 무고 여부를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고소의 허위성', 그러니까 이 여성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강간이라고 고소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어요. 그러려면 강간이라고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지적해야 하고요.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면서도 문을 열고 도망치거나, 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물어야했겠죠. 실제로 또 다른 고소인 이씨 사건에서는 이런 점을 근거로 무고죄가 유죄로 인정됐고요. '얼떨결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부분도 검찰로서는 다시 물어볼 만한 내용입니다.
실제 성폭행 피해가 있었다면 당연히 피해자의 감정을 존중하고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성폭행이 무혐의로 결론났고, 반대로 성폭행 고소가 허위인지를 가리는 재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은 때로는 살인자보다도 많은 것을 잃게 하는 형벌입니다. 성폭행에 대한 처벌이 무거운 만큼 그 고소가 허위인지도 명확히 가려내고, 처벌도 엄정하게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