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사진>을 따라줄 때 잔을 손으로 들어야 하나, 테이블에 놓아야 하나? 한국인들이 테이블에서 가장 난감할 때 중 하나가 와인을 마실 때일 것이다. 정답은 '와인잔을 테이블에 놔둔다'이다. 그게 서양식 매너다. 서양에서는 식사를 내는 호스트 또는 와인을 사는 사람이 와인을 따라주는 '병권(甁勸)'을 갖는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와인병에 손을 대는 행위는 와인을 대접하는 이에 대한 결례다.
한국 상황에선 이게 쉽지 않다. 술을 마시기 시작할 무렵부터 상대방이 술을 따라주면 잔을 들어서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고 배운다. 또한 자리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잔이 비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잔을 채워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한다고 받아들여진다. 나이 많은 어른이 술을 따라주고 있는데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면 버릇없는 인간으로 비칠 가능성이 커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다. 잔을 들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하면 "여기가 서양인 줄 아느냐"고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어정쩡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식의 절충형 와인 매너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상대가 와인을 따라줄 때 잔을 테이블에 놓고, 들지 않는 대신 와인잔 받침에 왼손이나 오른손 손가락 2~3개를 살짝 얹는 방식이다. 연장자가 따라줄 땐 두 손을 모아 손끝을 와인잔 받침에 가져다 댄다면 더욱 공손하게 보인다. 한국식으로 잔이 완전히 빌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으면서도 서양식으로 잔이 거의 비었을 때쯤 와인을 따른다. 호스트 또는 연장자만이 따르지 않고, 가장 어린 이가 눈치껏 잔을 채운다면 함께한 이들에게 흐뭇한 동의와 인정의 눈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