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발생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모(17·구속 기소)양은 '심신 미약' 상태를 주장하며 감형(減刑)을 노리고 있다. '치밀한 계획범죄'가 아니라 정신병으로 인해 벌어진 '충동적·우발적 범행'이라는 것이다.
김양의 이 같은 변론 전략이 알려지면서 많은 시민이 분노하고 있다. 김양 재판이 열린 지난 4일 오후 인천지법에는 15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청 기회를 잡기 위해 무려 148명이 찾아왔다. 평범한 학생·자영업자·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라고 소개한 이들은 "재판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려고 왔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전문가 진단을 받아보니, 김양이 필요에 따라 (정신 질환을)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검찰이 진행한 심리 검사에서 김양에겐 조현병 특유의 반응이나 행동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고, 아스퍼거 징후도 없었다고 한다. 김양은 '환청'을 듣고 범행에 나섰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검 심리분석관은 김양이 환청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을 겪지 않고 있고, 오히려 '현실검증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평소 논리정연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미뤄볼 때 심신미약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김양을 한달에 걸쳐 감정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양은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인지 능력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김양 변호인은 이날 "정신병에 의한 충동적이고 우발적 범죄"라는 점을 거듭 주장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천재적으로 치밀한 계획에 따라 완전범죄를 꿈꾸며 계획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왜 피고인이 집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도구도 집에 있던 도구로 했겠습니까? 사체 유기도 왜 집 근처에 했겠습니까?"
일부 언론에는 김양 변호인이 재판에서 "저도 (피고인을) 사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변호인이 해줄 게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로펌 사무장 말은 달랐다. "변호인이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전혀 아닙니다. 세상에 자기 의뢰인을 사형시키라는 변호사가 어딨습니까. '미성년자인 김양에게 법정최고형 20년은 사실상 사형과도 같은 결과인데, 여론이 워낙 안좋아 심신미약이 인정 안돼 20년 형을 선고 받을 것 같다. 변호인으로서 제대로 된 변론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안 될까봐 자괴감이 든다'는 뜻으로 말한 겁니다."
은 살인범 김양이 매달리는 '심신미약'이 법적으로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번 사건의 변론 행태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없는지를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에게 물었다.
-김양은 원래 '사체 손괴·유기' 부분만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하다가, 4일 재판에서 '범행 전체 과정'에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무슨 큰 차이라도 있나요?
"심신미약 상태 그 자체는 감형(減刑) 사유가 되지 않고,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라는 게 인정돼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체손괴·유기 부분만 심신미약이라고 하는 당초 주장이 오히려 법적으로 더 어색하지요. 유괴→살인→사체손괴로 이어지는 범행과정에서 뒷부분만 심신미약이었다는 거니까요. 이를 '범행과정 전반에 걸쳐 심신미약이었다'로 바로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체손괴보다 약취유인, 살인 부분이 훨씬 중형이어서 그런 주장이 양형상 더 유리하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4일 공판에서 김양의 변호 전략은 납치사실을 비롯해 혐의는 모두 인정하고, 대신 심신미약을 주장해 감형을 노리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잔혹한 살인범죄자들이 종종 주장하는 '심신 미약' 조항의 근거가 정확히 뭔가요? 이게 '살인 면허'라도 됩니까?
"잔혹사건 피고인들이 형을 깎아달라며 '심신미약'을 많이 주장하다 보니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요. 법적인 근거는 형법 10조입니다. 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2항에서는 이런 능력이 '미약'한 경우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구요. 다시 말해 '심신 상실'은 무죄, 그 정도에 이르지 않는 '심신미약'은 형을 깎아주라는 내용입니다. 법률이 이렇게 정한 이유는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법 규범에 맞춰 행동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그의 잘못에 대해 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4일 법원에는 '김양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하면 안 된다'며 크게 분노한 시민 150명이 몰려왔습니다.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걸 증명하는게 이번 재판의 큰 쟁점으로 떠올랐죠. 하지만 김양이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인지능력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습니다. 재판부가 감정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신미약으로 보기 위해서는 이를 뒤집을 또 다른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겠죠. 어제 재판에서 김양은 '징역 20년'을 언급하는 변호인의 손을 잡으며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 18세 미만인 김양에게 선고할 수 있는 법정최고형이 20년인데, 변호인이 '지금 상황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하자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라고 느낀 김양이 제지한 거죠. 자신을 둘러싼 법적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모습으로, 심신미약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검찰도 '휴대폰이 꺼져 있어 피해 아동에게 빌려 달라고 했다'는 말과는 달리 폰이 켜져 있었고, 범행 후 시신 처리 방법 등을 검색했던 점을 들어 '심신미약이 아니었고 계획적 범행'이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김양 측은 "다중인격장애에 시달려 왔다. 범행 후 처리과정도 허술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양이 '공범'으로 지목한 '박양'은 12명의 변호사를 선임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는데요. 박양에겐 왜 이렇게 많은 변호사가 투입되었나요?
"살인사건에 한 법무법인에서 12명의 변호사가 투입된 게 이례적이기는 합니다. 해당 법무법인에선 '주말에 사건 의뢰가 왔었고 급하게 인원을 투입하다 보니 소속변호사를 포함해 12명이 투입됐었다'고 밝혔습니다. 로펌에서 지분을 갖고 사건 전반을 책임지는 변호사를 '파트너 변호사', 그를 도와 일하는 변호사를 소속변호사(어쏘변호사)라고 하는데 처음에 투입된 변호사 중 파트너가 4명, 소속변호사는 8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6월 말에 이중 9명이 '담당변호사 지정 일부철회서'를 제출했습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이들은 사실상 사건에서 손을 뗀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종합하면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일단 많은 인원을 투입했다가, 실제 사건을 수행할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뺐다는 겁니다. 법원에서도 '담당변호사로 여러 명을 지정했다 그중 일부를 철회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대규모 지정 및 철회는 이례적이긴 합니다. 아마도 대규모 변호인단에 대한 비난이 가열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달 초 "악귀가 씌었다"며 친딸을 살해한 여성 김모(54)씨가 2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 사건에 대해 구체적 진술을 했지만 사실 인식능력과 기억 능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범행경위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해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는데요.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되려면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에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물변별능력은 사물의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의사결정능력은 그에 따라 의지를 갖고 자기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구요. 쉽게 말해 남의 집 책상에 놓인 보석을 보고 '보석'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나아가, '남의 것이니까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 살 아이가 주머니에 보석을 집어 넣었다고 해서 벌할 수 없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사실의 인식능력이나 기억능력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게 아니다'라는 게 판례의 입장이지요.
김씨는 사건 직전에 가족들에게 '밖에 악귀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잡아먹히지 않게 도와 달라'며 기도를 했는데 도중에 애완견이 짖자 '악귀가 씌었다. 이 강아지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위험하다'며 며 식칼, 망치 등으로 잔혹하게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에 대해서도 '귀신이 얘한테서 나가지 않는다. 악귀를 내쫓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며 아들과 함께 딸을 살해하고 사체를 손괴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은 아니어서 범행 경위를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불가능한 수준이지요. 이처럼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수사기관은 국립법무병원(구 공주치료감호소) 등에 정신감정을 의뢰하는데, 김씨의 경우 '양극성 정동장애,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조증(燥症)상태'라며 '심한 정신병적 상태로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증상을 가장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나왔습니다."
-심신상실로 살인범이 무죄를 받은 사례가 또 있나요? 그렇게 되면 정말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건가요?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법원이 '심신상실'까지 인정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부산지방법원에서 두 살 배기 아기를 3층에서 던져 숨지게 한 19세 발달장애인 이모군에게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군은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이군이 인지와 정신 기능의 장애 및 자폐증적 경향으로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지난 1989년 부산에서 신도가 목사를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에서도 심신상실로 무죄가 나왔습니다. 당시 이 신도는 '목사가 사탄이어서 그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다'며 범행했다고 합니다. 1심과 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범행사실의 인식이나 기억능력이 있다고 심신상실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했고, 이러한 논리는 앞서 김씨 사례에서 보듯 심신상실과 관련된 여러 사건에서 인용됐습니다.
심신상실로 무죄가 선고되면 대개 '치료감호'처분이 내려집니다. 국립법무병원(공주치료감호소)에서 수용된 채로 일정 기간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는 '사람을 죽였는데 무죄'라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법 감정과도 많이 배치되지요. 형사법의 대원칙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심신미약' 인정 기준을 엄격하게 할 필요는 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20대 여성 묻지마 살인사건의 범죄자도 '조현병'을 주장해 무기징역에서 30년으로 감경받았는데요. 재판부가 '심신상실'은 아니지만 '심신미약'은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의 차이는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느냐 입니다. 아예 사리분별을 못할 정도라면 '상실'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다고 보이면 '미약'으로 판단됩니다. 강남역 사건은 범인 김모씨가 역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젊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죠. 김씨는 1999년부터 조현병 증상을 보였고 2009년부터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데 2016년 이후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범행 이후 옷에 묻은 피도 지우지 않고 식칼을 갖고 출근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근거로 '심신미약'을 인정한 것입니다. '악귀가 들렸다'던 김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물변별력에 문제가 있다고 본 거죠. 이 경우 형법 10조에 따라 형을 감경해야 하기 때문에 무기징역 형을 선택하고 감경해 30년의 유기징역을 선고한 것입니다."
-이런 식이면 사람 죽여놓고 '미친 척'해서 감형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정신질환으로 '위장'했다가 발각되면 따로 처벌하지는 않나요?
"생각보다 '미친 척'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재판부에서 심신장애 여부를 가릴 때, 국립법무병원 등에서 실시한 정신감정 결과를 많이 참조하는데, 1~2시간 검사로 결과를 내는 게 아니라 1~2개월에 걸쳐 관찰·추적조사를 합니다. 한두 시간은 속일 수 있지만 한 달 이상 '연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변호를 할 때도 '전생에 70개국의 왕을 지냈다. 지금도 109개국에 왕비가 있다'고 주장하며 정신감정을 신청한 피고인이 있었지만 감정 결과 '정상'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피고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감형의 구실을 만들려고 하고, 또 답답한 구치소에 있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신청을 남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신청 건수가 2015년 12월 기준으로 10년 전에 비해 약 두 배 가까운 630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징병을 피하기 위해 정신질환으로 위장해 신체검사를 받은 경우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됩니다. 하지만 재판에서 선처받기 위해 정신질환으로 위장한 데 대해 따로 처벌된 경우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검사 결과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모두 '정신질환을 위장했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징병검사에서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것과는 달리 이 경우는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권리를 행사하는 측면도 있어 무조건 처벌하기는 어려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