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시 몽타주 - 2002년 12월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에서 발생한 여주인 살해 사건 당시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경찰이 만든 용의자 몽타주와 수배 전단.

2002년 12월 14일 오후 9시쯤 서울 구로구 한 호프집. 출근한 직원은 가게 안쪽에 둔기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여주인(당시 50세)을 발견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직원은 "14일 오전 1시 30분쯤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퇴근할 때까지도 사장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여주인 지갑에 든 현금 15만원과 신용카드도 사라졌었다. 경찰은 이 손님을 용의자로 판단하고 수사에 나섰다.

사건 현장에는 증거가 거의 없었다. 범인은 지문이 남을 만한 곳을 닦아내고 현장을 정리했다. 남아 있는 증거라고는 깨진 맥주병에 찍힌 오른손 엄지손가락 일부 지문(쪽지문) 정도였다. 이 지문을 어렵사리 채취했지만 분석할 기술이 없었다. 쪽지문 증거는 특수 필름으로 채취해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 보관했다. 목격자 증언으로 몽타주를 만들고 공개수배를 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이 작년 1월 재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2012년 도입된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을 활용하기로 했다. 쪽지문의 특징을 찾아 컴퓨터에 입력하면, 새로 주민등록을 할 때 채취한 지문 데이터베이스(DB)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수사팀은 이 지문이 택시기사 장모(52)씨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짜 수사'는 그때부터였다. 지문은 장씨가 현장에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 증명할 뿐이다. 현장에서 수사를 지휘한 김성용 경위는 "과학수사요원들이 넘겨준 공으로 '골'을 넣는 건 형사들의 몫이었다"고 했다. 15년 전 호프집 직원과 도난 신용카드가 사용된 가게 주인 등 목격자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모두 장씨 사진을 보고 "범인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증거도 장씨를 지목했다. 족적을 바탕으로 범인은 160~165㎝ 정도로 추정됐다. 장씨의 키가 약 165㎝였다. 현장에서는 뒷굽이 둥근 키높이 구두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흔치 않은 스타일의 신발이었다. 수사를 위해 방문한 장씨 자택에는 비슷한 신발이 여럿 있었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장씨를 체포해 구속했다. 장씨는 검거 당시 "사람을 잘못 찾아왔다" "그 호프집에는 간 적도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수사팀은 증거를 내밀기도 하고 양심에 호소하기도 했다. 침묵을 지키던 장씨는 지난달 29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범행을 자백했다.

서울청은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일명 '태완이법' 시행을 계기로, 장기 미제 살인 사건만 다루는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수사팀의 첫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