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박유천(31·사진)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하고, 박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5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서울중앙지법 나상용 부장판사가 "무죄"라고 말하자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송모(24)씨가 오열하며 옆자리의 변호인을 끌어안았다. 송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2015년 말 손님으로 왔던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고소(무고)하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송씨는 지난해 6월 불거진 박씨를 둘러싼 추문의 '고소녀' 4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당시 이모(25)씨가 "내가 일하던 유흥업소 화장실에서 박씨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자 송씨도 '나도 화장실에서 당했다'고 박씨를 고소한 것이다.
그런데 수사는 두 사람의 주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맨 처음 박씨를 고소한 이씨가 동거남, 조직 폭력배 등 남성 2명과 짜고 박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고 무고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송씨도 박씨를 모함한 혐의를 받게 됐다.
먼저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박씨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①박씨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간 뒤 이씨가 따라 들어갔고 ②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씨가 박씨 매니저의 차를 타고 집에 갔으며 ③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해 돈을 뜯어내려다 실패하자 경찰에 신고한 점 등을 볼 때 이씨는 유죄라고 판단했다.
4일 오전 9시 30분 시작된 송씨 재판은 시민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송씨는 '2000만원을 주겠다'는 박씨의 말을 듣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고, 그로부터 6개월 지나 신고를 한 것은 거짓 신고라는 증거"라고 했다. 박씨는 증인으로 나와 "합의가 된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반대로 송씨 측은 "돈을 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꼭 볼 수는 없다. (송씨보다 먼저 고소한) 이씨가 신고를 한 걸 보고 용기를 내 고소했는데 무고했다고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박씨는 송씨에게 2000만원을 준 적이 없다. 송씨는 "저는 분명 성폭행 피해자"라며 울먹였다. 밤 12시 무렵 양측이 공방을 끝내고 배심원 7명이 회의를 열어 전원 일치로 '무죄'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
재판부도 "법리적으로 판단을 거친 결과 송씨가 박씨를 모함하려고 거짓 고소를 했다고 보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송씨의 경우 ①사건 직후 친한 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고 ②박씨에게 돈을 요구한 적도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무고 혐의가 인정된 이씨와는 다르다고 봤다.
그러나 송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고 해서 박씨가 송씨를 성폭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송씨가 무고를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14일 배우 이진욱(35)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기소된 오모(33)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술집에서 처음 만난 오씨의 집으로 밤 12시쯤 찾아가 성관계를 했다. 재판부는 "오씨가 밤 12시에 이씨를 집에 들어오게 한 점 등을 보면 성관계에 합의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오씨가 일관되고 생생하게 피해를 진술하고 있어 이씨를 의도적으로 모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