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수많은 그렇고 그런 싸구려 ‘캐릭터 피규어’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실제 배우나 만화 속 주인공을 쏙 빼닮은 수천 달러(수백만원) 대의 작품으로 바뀐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 역할을 한 엠마 왓슨의 싸구려 캐릭터 인형도, 노엘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애너하임에 사는 필리핀계 아티스트인 노엘 크루즈. 그는 캐릭터 피규어를 ‘리페인팅(repainting)’한다. 그는 인형 제조업체들이 어설프게 만들어낸 수많은 캐릭터 인형들에게 1주일간의 작업을 거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노엘 크루즈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나 자란 노엘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두살 때 이웃집 창문 너머로 본 TV 속 ‘미스 유니버스’ 출전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6세 때부터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 없이, 초상화를 의뢰받아 그리기 시작했다.

해리포터의 일반 캐릭터 인형과 그가 바꾼 인형

미국에 이민 온 뒤, 아내가 바비 인형을 수집하는 것을 보면서 노엘의 캔바스는 자연스럽게 3차원의 인형 얼굴로 바뀌었다. 작은 인형 얼굴에 리페인팅하는 작업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매우 달랐지만, 타고난 재능 덕분에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리페인팅 전문가가 됐다.

그가 하는 '리페인팅'은 단지 색칠만 다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인형의 머리를 다듬고 필요하면 인형 머리카락의 소재에 따라 파마를 하거나 덧붙이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장에서 칠한 것을 아세톤으로 말끔하게 닦아낸다. 그리고 작은 바늘 붓과 면봉 등을 이용해 스크래치와 잡티와 같은 현실감은 물론 깊이와 음영까지도 그려 넣는다.

원더우먼 역의 갤 가돗 캐릭터 인형의 변신

노엘이 가장 힘들게 생각하는 부분은 인형 얼굴의 골격. 골격이 실제 인물과 너무 다르면, 인물의 특징을 아무리 정밀하게 그려 넣어도 쏙 빼닮았다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기 때문.

그가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든 리페인팅 인형들은 부유한 수집가들을 위한 경매 시장에서 종종 3500~5000달러(400만~575만원)에 팔린다. 개인이 그에게 접촉해 특정 인형에 대한 리페인팅을 의뢰해도, 가격은 1250달러(약143만원)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노엘 크루즈는 인형 수집 커뮤니티에서 가장 실력 있는 리페인터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