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이 김환기를 위해 나무를 깎아 만든 파이프. 서귀포 시절 그렸던 그림이 조각돼 있다.

1951년 3월. 부산에서 공보처 차장으로 근무하던 이헌구 앞으로 제주도에서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은 화가 이중섭. 꾸러미 속에는 '동료 화가 김환기에게 꼭 전해달라'는 메모지와 파이프가 들어 있었다. 파이프는 당대 유명 평론가였던 이헌구와 우인(友人)들이 모인 통술집에서 김환기에게 전달됐지만 며칠 후 이씨에게 되돌아왔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김환기가 "이 파이프는 이 선생이 소장하는 게 맞으니 다시 전달하겠다"를 외쳤기 때문이다.

이중섭이 서귀포 시절 직접 만든 파이프가 66년 만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다. 28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제144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다. 평소 파이프 담배를 즐기던 김환기를 위해 이중섭이 제작한 것으로, 물고기를 잡고 밧줄을 끄는 듯한 인물의 형상과 이중섭 은지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가 조각돼 있다. 선친(이헌구)으로부터 물려받아 이를 소장해온 이재복(70)씨는 "이중섭 선생이 조각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경매 추정가는 2억~3억원.

권진규의 ‘명자’.

[이중섭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경매]

한국 조각의 선구자인 권진규의 청동 조각 '명자'도 나온다. 살짝 경직된 표정이지만 고운 옆면을 가진 처녀 조각상이다. 이 작품은 실제 모델이었던 남명자 전 아주대 교수가 경매에 들고 나와 눈길을 끈다. 당시 25세였던 남 교수는 "학생 시절 권 선생님을 사사(師事)하던 친구 덕에 작업실에 놀러가 밥도 먹으며 선생님과 친해졌는데, 그때 모델이 되어드린 것"이라고 전했다. 남 교수는 "조각의 무표정한 얼굴이 권 선생님의 외로웠던 '마음밭'을 보는 듯했다"며 "이 작품이 오래오래 소중히 간직할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