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자사고의 시작

특수목적고등학교, 줄여서 특목고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에 따라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정의한다. 특수 교과과정을 통해 과학, 예술, 외국어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키우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1974년 고교평준화가 전국적으로 실시되면서 엘리트 교육, 특수 영재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인식에 공감, 1983년 우리나라 최초로 경기도 과학과 부설의 과학고등학교를 설립했고 이듬해 최초의 외국어 고등학교인 대원외고와 대일외고가 개교했다. 특목고는 목적에 따라 과학고, 예술고, 외국어고, 체육고, 국제고 등으로 나누지만 보통 과학고와 외국어고를 가리킬 때가 많다.

자사고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의 준말이다. 2002년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6개 학교를 시범 운영한 결과를 반영해 25개를 지정한 것이 시작이다. 자사고는 교과과정의 체계를 학교 자율에 맡긴다. 학생의 교육 선택권을 넓힌다는 취지로 각 학교의 개성있고 다양한 학사 운영과 교육과정을 보장하는 학교이다. 

이 중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칼을 빼든 것은 외국어고와 자사고이다. 실제로 이 두 학교는 고교 입시 서열화를 조장해 사교육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고 '경기과학고등학교']

[특목고·자사고·자율고·일반고… 헷갈리는 '고교 유형' 파헤쳐보자]

오늘날 특목고가 이와 같이 입시 서열에 상위권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외고에서 해외명문대와 국내명문대를 많이 보내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과, 이명박 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의 하나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확대 전환하던 2000년대 중후반 무렵이다. 이때부터 전국의 많은 초·중학생 부모들이 일반고가 아닌 자사고와 특목고를 보내고 싶어했다. 평준화된 일반고와는 달리 특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좋은 면학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평준화 체제에서 문과학생이 진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엘리트 학교로 학생과 학부모의 입학 수요가 늘 넘쳤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 교수는 2009년 인터뷰에서 "평준화 정책 때문에 외고 등 일부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선택할 만한 특색 있는 학교가 없다 보니, 수재들이 그나마 제일 낫다는 외고로만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지 않은 채 가짜 평준화만 외쳐온 잘못된 교육정책이 '대원외고 신화'의 또 다른 원인이란 설명이다.

그 목적을 이루었나

(좌)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어고등학교인 대원외고 (우)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중 하나님 하나고
외국어고

1984년 3월 서울 중곡동 대원외국어학교(현 대원외고)에 신입생 720명이 입학했다. 당시 대원외국어학교는 지금처럼 특수목적고가 아닌 '각종학교'로 대안(代案)학교 성격을 띠었다. 영어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이 입학했으며, 교육과정이 일반계 고교보다 자유로웠다. 대원외고 1기 A씨는 "좋은 대학 가려는 목적보다 단순히 외국어에 미쳐서 입학한 친구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성적우수 학생들이 입학하는 지금에 비해 초기 외고는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된 측면이 있었다. 때문에 초창기 외국어고등학교 해외 명문대 합격 비율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대원외고 뿐 아니라 외고들은 매년 많은 아이비리그 합격생을 배출했다. 서울·경기지역 외고의 아이비리그 합격생 수는 2007년 49명, 2008년 52명, 2009년 74명으로 매년 증가했고, 당시 한국경제가 조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해외대학 합격한 학생은 2008년 한 해 424명으로 전년에 179명이었던 것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

중앙대 이성호 교수(교육학)는 "한국 고교생들이 외국 대학에 대거 진학한 것은 외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라며 "외고가 글로벌 인재들을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엔 해외대 인기는 떨어지고 국내 명문대 진학률이 더 상승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1호] 1984년 3월 대원외고·대일외고]

[외고의 빛과 그늘 : "미(美)아이비리그 한국 돌풍 주역"… "사교육 광풍 주범"]

자사고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는 고교 다양화 정책과 관련있다. 74년 고교 평준화가 실시된 이후 역대 정부는 고등학교 운영체제의 다양화를 통해 획일성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수한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 방안을 모색해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처음 만든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자율형 공립 고등학교, 자율학교, 마이스터 고등학교 등이 이런 정책의 결과물이다.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를 비롯 이 학교들이 당초 설립 목적이었던 수월성 교육과 교육 형태 다양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201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고교다양화 정책의 성과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학생의 학교선택권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형 사립고 20개교에서 각각 학생, 학부모, 교원 200명씩 추출 설문한 결과(응답률 67.17%)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선택권 확대에 미친 성과를 높게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자율형 사립고가 다른 일반고에 비해 차별화된 특성이 있는가에 여부에 대해서도 자율형사립고 재학생, 일반고 재학생 집단 모두 자율형 사립고가 다른 고등학교에 비해 차별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자율형사립고 재학생의 경우 응답자 중 84.7%가 본인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차별화된 학교라고 응답하였다. 자율형사립고만의 차별화된 특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양하고 특성화된 정규 교육과정 제공'을 답변으로 들었다.

["공부벌레들의 귀족학교? 도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들 모인 곳이죠"]

그러나…

이 같은 애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외고와 자사고 폐지론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당초의 설립 취지와 목적보다 이에 따른 사교육 조장과 입시 서열화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중등 사교육 과열화

보통 외국어 고등학교와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준비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 3학년 때부터 진학을 목표로 여러 학원들을 다니며 사교육을 받는다. 외고 다니는 데 드는 학비보다 외고 가려는 데 쓰는 학원비가 더 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 대치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외고 못 가면 2류 인생이란 얘기까지 나돌면서, 실력이 낮은 아이들도 일단 초등학교 때부터 외고에 도전하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학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영재교육으로 수학 수업을 받고 있다. /이진한 기자

특목고 사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커진 건 2000년대 중후반부터다. 서울 대치동의 모 학원장은 "특목고 출신들이 대거 명문대에 합격하면서 특목고 진학이 대입에 불리할 게 없다는 인식이 퍼졌고, 특목고 학원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전했다. 몇몇 특목고 종합학원들은 사교육 시장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2007년과 2008년 무렵에는 중3 특목고 지원자들이 사교육에 쏟아 붓는 돈만 한 해 7000억원이 넘었다. 당시 특목고 대비 학부모 모임 인터넷 사이트인 특목고넷 이명원 이사는 "동네 보습학원과 영어전문학원들이 일제히 '특목고 대비' 간판을 내걸고 있는데다, 고액과외와 특목고 대비 단기 영어연수까지 합치면 시장 규모는 최소 5조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 추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고교다양화 정책의 성과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도 자율형 사립고를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때 과외를 받은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전체 학생 응답자의 44.0%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자율형사립고에 진학한 학생의 중학교 때 과외경험은 54.0%로 가장 높았다.

[초등생까지 특목고 준비… 5조 넘는 시장 ]

입시 서열화

외고와 자사고 비판의 또 다른 축은 입시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교육 형태의 다양성을 위해 만들었던 이 두 학교가 수능 등에서 상위권으로 군림하면서 일반 공립고를 슬럼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설립 목적이 퇴색된 외고와 자사고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실시, 명문대에 많이 보내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입시 명문고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마다 발표되는 서울대 입학 출신고교에서 자사고와 외고가 상위권을 차지한다. 수능을 관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2015학년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 60만명의 점수와 고교별 성적 자료'를 보면 국어·수학·영어 3개 영역 평균 1·2등급을 받은 수험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는 서울 대원외고(재수생 제외)였다. 이어 한일고, 용인한국외대부고, 민족사관고 순으로 상위권 비율이 높았다. 상위 10개 고교 중 일반고로 2개교(한일고, 공주대부고)가 포함됐지만, 이 두 학교는 모두 전국 단위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비평준화 학교이며 자율학교에 속한다.

수능 상위권 고교 50개를 분석한 결과 자사고와 특목고가 42개로, 전년도 (39개교)보다 3개교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쉬운 수능 체제에서 전반적으로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의 성적이 더 향상된 것이다. ▶기사 더보기

[외고, 선발효과인가 교육효과인가]

["추첨해서 엘리트 교육 되겠나"… "일정 자격 갖추면 추첨해도 돼"]

'고교다양화 정책의 성과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자율형 사립고 학생들에게 지금의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장차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전체의 35%로 1위였다. 외국어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고를 나온 한 학생도 "외고를 지원하는 이유는 특정 외국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나 진로 때문이 아닌 명문대를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서울대 입학생(2013학년도) 3명 중 1명은 특목·자사高 출신]

외국어고의 당초 취지가 무너졌다는 것은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외고 졸업생 계열별 대학 진학현황’에 따르면 2016년 2월 기준 전국 31개 외고를 졸업한 6919명 가운데 대학 진학자는 72.7%(5032명), 이 중 어문계열 진학 졸업생은 31.9%인 1605명에 불과했다. 외고 졸업자 중 3분의 1만이 어문계열에 진학하는 셈이다.

여기저기서 폐지 논란, 그럼에도…

이 가운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 10곳을 오는 2020년까지 모두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외고·자사고 폐지를 전국 교육청 가운데 경기도가 제일 먼저 실행에 옮기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13일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학교를 계층화·서열화하는 외고·자사고 등을 폐지해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단계적으로 재지정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사 더보기

이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서울 29곳, 경기 10곳의 외고·자사고가 폐지되면 전국 77개 외고·자사고의 38%가 사라지게 된다.

다른 시도교육청들도 잇따라 폐지 대열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5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외고·자사고 폐지에 관한 입장을 물은 결과, 부산·광주·경남·전북·충남·제주 등 9개 교육청이 폐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 소재 외고·자사고는 모두 53곳으로 전국(77곳) 외고·자사고의 69%에 해당한다. ▶기사 더보기

외고 폐지와 자사고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특히 외국어 고등학교의 폐지 논란은 2009년에도 크게 있었다. 여러 논란을 딛고 이 제도를 존치하는 것은 평준화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수월성 교육 효과와 고교의 수평적 다양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교육학자들은 "외고나 자사고 폐지론은 엘리트 교육을 하지 말자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한 "외고 입시가 사교육을 불러 일으키는 문제점은 알지만 이는 '입시 보완론'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반대 입장도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