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다의 실록(實錄)'이라 불리는 문서가 1m 길이의 낡은 궤짝 안에 들어 있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의 작은 섬 죽도에 있는 '지동궤'다. 그 속엔 150년에 걸친 마을의 대소사와 굿을 벌인 진행 과정을 기록한 빛바랜 문서들이 빼곡하다. 이 궤짝은 마을의 별신굿이 열릴 때면 제청(祭廳) 한가운데 정성껏 모셔진다. 그냥 뒀더라면 바닷바람에 흩어질 이야기들을 모은 '기억 저장소' 앞에서 마을의 가장 큰 행사를 성대하게 여는 것이다.

경남 통영 죽도의‘남해안 별신굿’.

통영을 중심으로 세습무의 전통을 이어 왔던 남해안의 별신굿은 세월과 함께 하나둘씩 사라지고, 이제 통영 죽도와 거제 죽림마을 두 곳만 남았다. 풍어제(豐漁祭)라고도 부르는 별신굿을 마을에선 '바다를 먹인다'고 말한다. 바다를 모시며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 행사다.

죽도 별신굿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은 '한려수도의 마지막 세습무'라 불리는 정영만이다. 어릴 적 그의 어머니는 "무당밥은 이빨이 아파 못 씹는다"며 무업(巫業)을 이어주려 하지 않았다. 하도 천대를 받아 밥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괴롭다는 뜻이었다. 장성한 정영만은 공장에 들어가고 배를 타기도 했지만 밤이면 피리를 불었고, 어느새 운명처럼 굿판에 돌아와 있었다.

죽도 마을의 지동궤가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선다. 17일 오후 3시 대치동 한국문화의집에서 열리는 6시간 넘는 굿판 '남해안 별신굿'을 위해서다. 남해안 별신굿이 서울에서 완판을 벌이기는 처음이다.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은 "모두 올라가 함께 어울리는 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3011-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