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부동산 공약 중 하나인 '도시 재생 뉴딜'은 추진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들이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시 재생을 계획할 때 저소득층 주거지와 영세 상인 상업 공간을 별도로 확보하는 걸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왼)연남동 주택가에 위치한 '어쩌다가게' (오)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자그마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광명소 되면 행복할까요]

국내에 젠트리피케이션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2010년쯤입니다. 서울의 인기 상권(商圈)에서 영세한 상인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현상을 보여주는 말로 유행하기 시작했죠.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하게 영세 상인의 '쫓겨남(displacement)'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포함하는 '현상(phenomenon)'이며 '과정(process)'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주변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겪는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건물이나 도시 인프라가 개선되고, 기존 주민보다 부유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쇠퇴하던 지역이 안정화되고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세수(稅收)가 늘고, 다양한 계층이 어울려 사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세입자나 상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생존이 걸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임대료 상승으로 떠나야 하거나 쫓겨날 걸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값싼 주택이 사라져 '홈리스'가 늘고, 프랜차이즈와 같은 거대 자본이 밀려들어 지역 특유의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대도시에서는 기존 주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저항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서울 홍대 주변과 서촌(西村), 삼청동, 해방촌, 대학로 등의 지역에서 문화·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쫓겨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지역을 특색 있는 골목, 이색 상권으로 만든 주역들이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해 밀려났고, 이런 상황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과 함께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독특한 양상을 보입니다. 주민들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서구 대도시와 달리 주로 임차 상인들을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지역이 활성화하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부동산 자산가나 외부 투자자들이 이익을 가져가는 게 사회문제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작년 8월 서울시가 발표한 '젠트리피케이션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경우 2001년 44%에 불과했던 음식점 건물의 외지인 소유 비율이 2011년 62%로 늘어나더니 2015년 66%까지 올라갑니다.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대표 지역으로 꼽히는 마포구 연남동도 마찬가지입니다. 2001년 34%였던 외지인 소유 건물은 2015년 60%까지 올라갔습니다.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또 다른 특징은 신흥 상권이 형성되면서 주거지였던 곳이 빠르게 상업지로 변하는 주거지의 상업화 현상입니다. 흔히 언론에서 보듯 연예인들이 뜨는 동네에 건물을 사들이는 등 외부의 대자본이 유입되어 기존 임차인과의 갈등을 일으키곤 합니다.

상업화된 동네는 주민들이 거주하던 장소에서 관광을 위해 거쳐 가는 장소로 기능과 환경이 바뀝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지속하면서 그 지역 고유의 특성이 사라지고 매력도가 떨어져 오히려 상권이 쇠퇴하고 빈 점포가 증가하는 현상도 벌어집니다.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와 국회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영세 소상공인들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책 마련, 지방정부의 조례 제정, 특별 구역 지정 등을 통한 지역적 관리, 건물주와 임차 상인들 간의 상생 협약 체결 지원 등입니다.

(왼)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진 창신동 봉제거리 (오)땅값이 올라 40년 만에 문을 닫는 망원동 사진관.

특히 서울시는 2015년 12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하여 다양한 전략들을 제시했습니다. 서울 성동구 등 기초지자체들도 구청-건물주-상인들 간 상생 협약 체결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 완화를 위해서는 임대료 통제나 상생 협약 체결 같은 미시적인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과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해외에선 지역 주민들이 부동산투자협동조합이나 공동체투자신탁 등을 만들어 건물 등을 사들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배당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현대 도시의 생애 주기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사 더보기

우리보다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던 선진국에선 정부나 공공 기관이 대책을 마련하거나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이에 대처했습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 카페.
매물 사들여 소상인에 싼 가격에 임대한 프랑스 파리

서울연구원 '해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시(市)는 1970년대까지 도심에 대형 상업 시설이 입점하면서 소규모 음식점과 전통 식당 등이 급격히 줄고 골목 상권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파리시는 실태 조사를 벌여 구역별로 업종 분포와 현황을 파악한 뒤 2006년 도시계획에 '보호 상업 가로(街路)'를 지정했습니다.. 저층에 상권이 형성됐거나 소규모 상점이 문을 닫기 시작한 지역으로 파리 전체 도로의 16%, 3만여개 상업 시설이 해당됐습니다.

'보호 상업 가로'로 지정되면 건물 1층에 입점한 기존 소매 상업과 수공업 공간을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었습니다. 또 보호 상업 가로에 비어 있거나 매물로 나온 건물을 사들여 수리한 후 소형 서점이나 식료품점, 세탁소 등을 운영하는 지역 소상공인과 수공업자에게 싼 가격에 빌려 줬습니다.

과거 가난한 뒷골목의 상징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작가들이 모여들며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곳으로 변화한 런던의 쇼디치.
지역 특성 살려 예술가들 살리기 나선 영국 런던 쇼디치

영국 런던시 해크니구(區) 쇼디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도심 접근성이 좋은 데다 임대료가 쌌기 때문. 하지만 1990년대부터 이 일대에 도시 재생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비싸졌고, 예술가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날 처지에 놓였습니다.

영국 중앙정부는 2000년대 들어 쇼디치에 예술가를 위한 건물을 지었고, 미술관·스튜디오 영업시간을 연장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벌였다. 작가와 예술 전문가가 주도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했습니다. 쇼디치 개발신탁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지역 청년들을 친환경 요리사로 교육하고, 식당 수익금은 지역 사업에 재투자했습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