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10시 종로의 한 패스트푸드점. 60대 남성 한 명이 무인 주문기기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머리를 긁적였다. 뒤에 기다리던 젊은이들이 하나 둘 짜증을 내며 다른 기계로 옮겨갔고, 보다 못한 젊은 여성 한 명이 스크린을 눌러가며 주문을 도왔다. 기기에는 '기다리기 힘드시죠? 현금 결제는 카운터로 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지만, 카운터에는 직원이 없었다. '지금은 무인포스기 시간입니다'라고 쓰인 팻말만 놓여있었다.

#"주문하느라 조금 헤멘다 싶으면 뒤통수가 따갑다니까."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왔다가 인근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찾는다는 손용득(84)씨는 무인 주문기기를 사용해야 할 때면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눈도 침침하고 뭘 눌러야하는지 헷갈려서 주문하는 데 굼뜨는데 뒤에서 젊은 친구들이 수근대. 푹푹 한숨 쉬는 소리도 들려. 분명 나 들으라고 하는 거야." 손씨는 "빵 한 쪼가리나 커피 한 잔 시키는 데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패스트푸드점, 은행 등 각종 서비스 업체를 중심으로 무인 주문기기인 '키오스크'가 속속 도입되면서 청년층과 장년층 사이에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디지털 기술 숙련도에 따라 얻는 편익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본래 '신문, 음료 등을 파는 매점'이란 뜻의 키오스크(KIOSK)는 무인화·자동화를 통해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자동화 시스템·기기를 통칭한다. 업체들이 키오스크를 속속 도입하는 것은 인건비를 절감하고 일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이미 키오스크가 보편화했다. 롯데리아의 경우 3년 전부터 무인 주문 키오스크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해 현재 전국 매장 1142곳에 키오스크가 총 446대 설치돼 있다. 대면(對面) 창구 업무가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은행들도 키오스크 도입에 적극적이다. 신한·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 영업점은 2015년 말 3924곳에서 2017년 3월 3686곳으로 1년 반 새 238개가 줄었다. 사라진 영업점의 빈자리는 무인점포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최근에는 약국에도 키오스크가 등장했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약국에는 처방전 바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처방 정보가 조제실로 전달돼 약이 나오는 기계도 도입됐다. 손님은 키오스크로 결제를 한 뒤 영수증이나 복약안내서를 출력해 처방전과 함께 접수대에 제출하면 된다. 약국 측은 하루 일의 절반 이상을 두 대의 기계가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키오스크 이용 등을 포함, 실제 노인 세대 등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장애인ㆍ장노년층ㆍ저소득층ㆍ농어민 1만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ㆍ무선 정보통신환경에서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58.6%에 그쳤다. 특히 만 55세 이상 장노년층은 정보취약계층 중에서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가장 낮았다.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54.0% 였다.


문제는 무인 자동화 기계 사용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마주선 기계가 표출하는 화면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박칠성(69)씨는 "첫 단계부터 여러 정보가 한번에 떠서 내가 시키고 싶은 것을 바로 주문하기가 어렵다"며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주문할 때는 '00세트 하나' 이렇게만 말하면 됐는데 너무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김미희(여·64)씨는 "눈 침침한 노인들은 기기 화면에 잘게 써 있는 글자들을 읽기 어렵다"며 "주문 기기의 글씨라도 크게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키오스크를 배치한 약국도 "노인 환자가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당분간은 키오스크 이용을 안내하는 직원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키오스크로 서비스업무를 대체하는 기업들이 이용자·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비용 절감'에만 몰두해 사용 편의성 기술 개발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이용에 익숙지 않은 장·노년층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키오스크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웹·모바일 인터페이스 개발업체 관계자는 "각 계층의 특성을 고려한 소비자 친화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충분한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