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레피소드’의 드레스 퍼퓸‘히즈 낫 마인궩. 베르가못 같은 상큼한 향에서 시더우드의 중성적 이고 깔끔한 잔향이 특징. ②‘바이레도’의‘텍스타일 퍼퓸 뚜왈'. 요즘 인기 있는 향수 브랜드 중 하나. ③‘산타마리아노벨라’의 왁스형 타입. ④‘산타마리아노벨라’의‘카르티네 살바 라나'.

"사과꽃 향기가 얕게 퍼지며 그 안개의 미세한 알갱이를 채색한다. 향기가 입혀진 안개의 고운 입자가 허석의 뒷모습을 그대로 감싼다. 그는 향기로운 존재가 되어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 중)

향기는 기억이다. 좋았던 그 시절, 그 공간, 그 사람에게로 빠르게 추억 시계를 되감아 주는 태엽 장치다. 언뜻언뜻 웃음 짓게도 하고, 눈물이 날 때도 있다. 향에 이끌려 '혹시' 하며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뒤돌아보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향수다"라는 가브리엘 샤넬의 명언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향기는 흔적 없는 각인이다.

'나만의 향'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향수 분야도 세분화되고 있다. "잠옷 대신 입는다"던 '샤넬 넘버 5' 같은 패션 브랜드 향수는 기본. 복잡한 조향과 다양한 블렌딩(섞는 것)으로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니치(niche) 향수와 방안 공기를 바꾸는 디퓨저(diffuser), 향초가 최근 2~3년 사이 큰 인기를 얻더니 최근 들어선 옷에 향기를 입히는 '드레스 퍼퓸'까지 등장했다.

요즘 뜨는 뷰티 비밀 병기… 드레스 퍼퓸

드레스 퍼퓸은 섬유에 뿌린다는 의미로 '패브릭(fabric) 미스트'나 '텍스타일 퍼퓸'이라 불리기도 한다. 안 보이게 관리한다는 뜻에서 '뷰티 치트키(속이는 것)'로도 불린다. 여름이면 자주 빨아도 꿉꿉한 날씨 때문에 옷에서 역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눅눅해진 느낌 때문에 착용감이 좋지 않아진다. 이럴 때 섬유 향수를 뿌려두면 편리하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유명 문구를 연상시키듯, 갓 샤워하고 툭툭 털고 나온 느낌이나 건조기에서 바로 꺼낸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향을 내는 게 특징이다.

유명 향수 브랜드인 '메종 프란시스 커정' '몰튼 브라운' '조 말론' '바이레도' 등에서도 최근 드레스 퍼퓸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촉촉한 잔디향과 영국 장미향이 나는 버버리 홈 컬렉션의 '홈 앤 리넨 미스트'와 '딥티크'의 '오 도미노떼' 등도 좋은 반응이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늘고 '향기 인테리어'가 인기 끌면서 의류부터 카시트, 침구류까지 다양하게 드레스 퍼퓸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청바지 밑단에 뿌린다든지 포켓에 살짝 뿌려두면 마치 몸에서 나는 향처럼 신선한 느낌이 든다"고 조언했다. 한혜연씨 추천 제품은 '조 말론'이나 국내 브랜드 '레피소드'. "레피소드의 중성적인 느낌인 '히즈 낫 마인'이나 이름만으로도 은밀하고 여성스러운 '인 더 엘리베이터' 를 자주 쓴다"며 "안 보이는 섹시함을 갖추는 나만의 무기"라고 말했다.

뉴욕의 친환경 섬유 관리 전문 브랜드 '런드레스'의 경우 국내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자 '서울 패브릭 프레쉬'라는 제품을 선보였다. 런드레스에서 도시를 테마로 처음 만든 한정판 제품. 장미, 바질, 재스민 등 부드러운 향을 조합했다. 런드레스 관계자는 "창업자인 그웬 위팅이 3년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받은 멋진 인상을 염두에 둬 은은한 꽃향기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한국 여성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항균, 탈취 기능이 있고 천연 에센셜 오일을 혼합했다. 면화나 리넨 혼방, 합성 섬유 등 두루 쓸 수 있고 가구에도 사용 가능하다.

‘런드레스’의 ‘패브릭 프레쉬 클래식’.

옷장 속에 두는 섬유 향수도

이탈리아 뷰티 브랜드 '산타마리아 노벨라'는 섬유 전용 향수 '카르티네 살바 라나'와 고체 왁스인 '타블렛 타볼레타 디 체라 퍼퓨메이트'를 선보였다. 카르티나 살바 라나는 특수하게 제작된 카드에 향을 뿌려 옷장 속에 걸어두거나 옷 사이에 끼워두면 오랜 시간 은은한 향이 지속된다. 라벤더, 정향, 시더우드 등의 향으로 방충 효과도 있다. '타볼레타 디 체라 퍼퓨메이트'는 천연 식물을 왁스로 굳힌 수공예 홈 프래그런스(향기) 제품이다. 석류 열매, 장미 꽃봉오리 등 피렌체 언덕에서 채취한 잎을 왁스와 함께 굳힌 제품으로 장미향, 릴렉스향, 라벤더향, 포푸리향, 멜라그라노향 등 총 5가지 종류다.

'바이레도'의 '텍스타일 퍼퓸 뚜왈'은 일명 '티셔츠 퍼퓸'이라 불린다. 갓 세탁한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옷은 물론 소파, 커튼, 쿠션, 침구류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베르가못과 프레시 알데히드의 청량한 느낌으로 시작해 미들 노트에서는 은방울꽃과 바이올렛 실크 향으로 은은하게 남았다가, 마지막에는 자연스러운 코튼 머스크와 엠버 느낌이 난다. 의류에 30㎝ 간격을 두고 가볍게 분사한다.

일반 향수는 티슈에 뿌려 서랍 속에

가끔 향을 내기 위해 일반 향수 제품을 옷에 뿌리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추천하지 않는다. 옷에 얼룩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급 실크같이 천연 섬유 제품에 향수 얼룩이 남아 낭패를 본 이도 있을 것이다. 해외 매체 '버슬'의 칼럼니스트 미키 헤이에스는 "굳이 하고 싶다면 티슈나 솜뭉치에 향수를 뿌려두고 옷장이나 옷 서랍에 넣어두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몸에 뿌리기도 아까운 수십만원대의 고급 향수를 종이나 휴지류에 뿌려놓는 게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의 뷰티 칼럼니스트 조 페얼리는 "매일 매일 옷을 빨거나 드라이클리닝을 한다는 건 환경에도, 의류에도 좋지 않다"며 "대신 옷의 먼지를 툭툭 턴 뒤 수증기를 쬐거나 물을 분사한 다음 섬유 향수를 뿌려두면 일종의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