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2월 16일 밤 인천 남동구의 한 라이브카페. 50대 가정주부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강모(46·남)씨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강씨가 돌연 A씨에게 “한번 줘라”며 성관계를 요구했다. A씨는 거절했지만, 강씨는 A씨 입 안쪽으로 자신의 혀를 들이밀었다. 놀란 A씨는 강씨의 혀를 이빨로 꽉 깨물었다. A씨의 혀 앞부분이 6㎝ 정도 잘려나갔다. A씨는 중(重)상해죄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4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 측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강씨가 난치(難治)의 장애를 입게 돼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2. 2012년 6월 11일 새벽 20대 여성 B씨는 택시를 타고가던 중, 택시기사 이모(54)씨의 제안으로 의정부시에 있는 이씨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됐다. 이날 오전 6시쯤 이씨에게 성적 위협을 느낀 B씨는 이씨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방문을 잠갔다. 그러나 이씨는 문을 부수고 들어와 B씨의 몸을 만지며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했다. B씨는 이씨의 혀를 깨물었고, 혀 전체의 3분의 1 가량이 잘려나갔다. 경찰은 B씨를 중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B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강제로 키스 당했을 때 상대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행위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혀 절단 행위를 형법상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법원·검찰이 사례마다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구체적인 상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판단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잠재적 피해자들은 “강제로 입맞춤 당한 뒤 바로 성폭행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도 앞뒤를 살피고 하라는 거냐”고 항변하고 있다.

1955년 11월 30일자 조선일보 3면 보도.

◇1955년 첫 사례…24년 만에 판례 엇갈려

이른바 ‘강제 키스 혀 절단’ 사례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형법학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는 고전적 유형이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인 1955년 11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38세 버스운전기사가 18세 버스 안내양을 취직 알선을 핑계로 유인해 강제로 입맞추다 혀가 끊어진 것이 해방 후 보도된 최초 사례로 보인다.

10년 뒤인 1965년에는 최초 법원 판결이 나온다. 19세 여성이 집 근처에서 자신에게 구애하던 21세 남자에게 넘어뜨려져 강제 키스를 당하자 남자의 혀를 깨물어 1.5㎝ 절단한 사건에 대해 부산지법이 유죄로 본것이다. 당시 법원은 “반항이 불가능하지 않았으며, 피고인(여성) 집이 강제 키스 장소로부터 150m 거리에 있었는데 소리를 질러 구조 요청을 따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례가 24년간 유지되다 지난 1989년 대구고법이 이와 비슷한 강제 키스 사례에서 1심을 깨고 혀를 절단한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결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조와 신체의 안전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엉겁결에 추행자의 혀를 물어 뜯게 된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1990년엔 그 전 해 강제키스범과 피해 여성 사이에 이뤄진 법정 공방을 각색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여성은 강제추행을 당하고도 가해자로 지목돼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이웃에게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로 소문이 난다. 그녀는 극중 항소심 재판장 앞에서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발언해 울림을 줬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주요 매체의 뉴스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강제 키스 혀 절단’ 국내 사례로 검색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0건이다. 그 중 법원·검찰 등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것이 5건인데, 이 가운데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2건에 불과하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의 한 장면.

◇“야밤·폐쇄된 장소였다면 정당방위 가능성 높아”

보통 형법상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선 ‘현재의 부당한 침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 ‘상당(相當)한 이유’의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강제로 키스 당하는 상황에서 상대의 혀를 깨무는 행위가 앞의 두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데는 이론(異論)이 별로 없다. 문제는 상당성 요건인데, ‘혀 절단’을 정당방위라고 보지 않는 판례들은 대부분 이 요건이 부족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법원은 2013년 20대 남성이 만취 상태에서 또래 여성에게 강제로 키스 당하자 그 여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에서 “몸을 밀쳐내는 등의 방법으로 제지할 수 있었을 텐데도 혀를 깨물어 절단해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며 상당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많은 법조인들은 이 상당성 요건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며 “사실상 판·검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상당성에 대해 판결문들은 “법이 허용하는 상당한 방위의 정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목적 및 수단,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사정”,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 등 추상적으로 설명한다. 법률구조공단 소속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강제 키스 혀 절단’ 판례를 종합해 보면, ▲‘혀 절단’ 이외에 달리 가능한 저항 수단이 없었는지 ▲강제키스 장소가 폐쇄돼 있었는지 ▲추행범이 여럿이었는지 ▲추행이 야간에 이뤄졌는지 ▲추행범과 피해자의 친분 정도 등이 ‘정당방위’ 여부 판단의 고려 요소로 추정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직장인 조모(27·여)씨는 “힘으로 제압당한 상황에서 강제키스에 어설프게 대처할 경우, 가해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줘 강간까지 당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혀를 깨물기 전에 전후 사정을 요모조모 따져보라는 건 지나친‘가해자 중심주의’”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 출신 강민구(52) 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 못지 않게 신체의 완결성도 중요한 법익(法益)”이라며 “혀가 절단돼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아무리 추행 피해자라 하더라도 그 방어권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재경 지검 검사는 “강제키스 시 혀 절단이 무조건 정당방위라면, ‘과잉방위’를 규정한 형법 제21조 2항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고도 했다.

원로 형법학자 심재우 고려대 명예교수의 논문 '강제키스에 대한 혀 절단사건은 정당방위인가 과잉방위인가?'의 목차.

◇美선 남친 혀 깨물고 구속되기도

형법학자들 중에는 다른 가능한 방어 수단이 있었다면 정당방위 성립을 부정하는 법원의 논리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형법학계 원로인 심재우 고려대 명예교수는 1995년 학술논문 ‘강제키스에 대한 혀 절단사건은 정당방위인가 과잉방위인가?’에서 “(1965년 사례에서) 소리를 지른다든지, 발로 걷어찬다든지, 몸을 밀어 제친다든지 하는 반항행위는 공격을 즉각, 유효하게, 종국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며 “혀를 깨무는 것이 공격을 격퇴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라고 했다. 김태명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강제키스 상황에서 혀를 깨물기 위해선 ‘다른 모든 수단이 불가능한 상태’여야 한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키스를 당했다고 혀를 깨물면 상당한 대가가 따라온다. 2011년 중국에선 술집 여성 종업원이 만취 손님으로부터 키스를 당하자 그 혀를 깨물어 불구를 만든 뒤, 6500위안(약 107만원)을 치료비·합의금 조로 지불했다. 작년 말 미국 미시건 주에선 한 남성이 동거 중인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하던 중 ‘애정 확인 차’ 강제로 키스하다가 혀가 잘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경찰에 “여자친구가 혀를 자를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그녀는 구속됐고, 5000달러(약 561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지은법률사무소의 이지은(34)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것은 극히 드문 데다, 혀를 잘라내는 ‘중상해’의 경우 일반 ‘상해’보다 훨씬 판단이 엄격해진다”며 “강제 키스를 당했다고 해서 ‘이제부터 내가 하는 방어 행위는 다 정당하다’고 섣불리 판단하면 전세가 한번에 역전돼 피고인 처지에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신세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