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 열자마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냄새가 남. 후레이크는 없었음. 스프의 상태는 많이 안 좋은 듯.”

최근 유통기한 20년 지난 라면을 뜯은 한 네티즌이 남긴 감상평이다. 공개된 사진 속 라면은 1995년 10월 제조된 것으로 올해로 22살이다. 참고로 희망 소매 가격은 210원이었다.

한국에서 라면은 비상식량 이미지가 강하다. 마르고 꼬들꼬들해 어떤 환경에서도 힘세고 오래갈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쟁·태풍·지진 등 재해가 오면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지에서 라면이 동나는 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지만, 그런 라면이 이토록 처참하게 썩고 문드러진 이유는 뭘까.

#의외로 유통기한이 짧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통념과는 달리, 라면 유통기한은 고작 5~6개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집에 있는 라면을 아무거나 집어들고 옆구리를 살펴보자. 일본 닛신식품에서 내놓은 비축전용 컵라면은 유통기한이 3년인데, 이 라면처럼 양철 캔에 진공포장을 하면 뭘 집어넣어도 3년은 버틴다.

일본 닛신식품에서 만든 '치킨 라면 보존캔'.

라면 생명이 짧은 이유는 면을 튀길 때 쓰는 기름 때문이다. 유지(油脂) 성분은 공기 중의 산소, 빛, 열, 세균, 수분 등과 만나면 서서히 변질한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질소포장을 하는 거지만, 세상 일이 대개 그렇듯 완벽한 건 없다. 삼양라면 관계자는 “실제 라면 유통기한은 기름이 산패(酸敗)되는 한도 기준이며, 잘 보관해도 반년을 넘기면 품질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 비상사태 때 쓰려고 미리 라면을 잔뜩 쟁여둔 분들은, 당장 유통기한을 살피고 서둘러 먹거나 버리도록 하자.

#쓸만한 비상식량은 따로 있다
혹시나 진지하게 비상시를 대비해 라면을 비축해 둔 분들이라면, 품목을 통조림으로 갈아치우는 게 낫겠다. 통조림은 봉지라면이나 컵라면보다 훨씬 밀폐가 잘 돼 있기 때문에, 그늘지고 바람 잘 드는 곳에 두면 아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1973년에 임관한 미군 장교가 그때 당시 배급받은 파운드 케이크 통조림을 챙겨 뒀다가, 36년 뒤인 2009년 대령으로 전역하며 이를 까먹는 퍼포먼스를 보인 적도 있다.

혹은 전투식량도 괜찮다. 사실 전투식량이라는 게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만든 식품이다. 심지어 150년 전에 만들어진 전투식량이 21세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한 경우도 있다. 아래 동영상이 실제 미국 남북전쟁 중인 1863년에 만들어진 전투식량을 현대인이 먹는 모습이다.

물론 잘 만들어진 통조림이나 전투식량이라 한들 포장이 파손되면 버틸 도리가 없다.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한들 기껏해야 반년 버티는 라면보다야 훨씬 낫다. 그러니 재난을 대비해 약간의 식량을 비축해 둘 분들은, 가급적 라면보다는 통조림이나 전투식량을 구해 깨지지 않게 잘 쌓아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