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남 담양 죽녹원에 놀러 갔던 회사원 김주환(30)씨는 대나무에 도배되다시피한 낙서 때문에 기분 전환은커녕 불쾌감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

산책로 양옆으로 빽빽이 난 대나무 표면은 온통 관광객들의 낙서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심지어 '낙서금지'라는 팻말을 걸어둔 대나무와 나무로 만든 가로등 기둥까지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전남 담양 죽녹원 대나무 표면에 낙서가 된 모습.

김씨는 "손이 닿지 않을 만큼 깊숙한 곳에 자란 대나무에도 낙서가 돼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낙서를 하고 싶은지 의문이 들 지경"이라며 "죽녹원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다.

본격 행락철이 시작된 가운데 국내외 유명 관광지가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상엔 전국 곳곳 여행지에서 촬영한 ‘낙서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제주 한림공원을 다녀온 관광객들은 건물 외벽, 동굴 안, 선인장 잎까지 낙서가 된 모습에 불쾌함을 토로했다.

춘천 남이섬, 단양 이끼터널, 해운대 미포철길 등 유명 관광지를 다녀온 관광객들도 낙서로 지저분해진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친구들과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에 놀러 갔다가 졸업생 명판에까지 낙서가 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시민도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명판에 관광객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좌측). 서울 종로구 한양도성에 락카로 낙서가 돼 있다(우측).

담양군청 관계자는 "관광지가 너무 넓고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 언제 어디서 낙서를 하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관광객들이 특히 공영관광지에서 낙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낙서를 지우는 작업에도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는 것까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관광객들의 못 말리는 ‘낙서벽’은 해외에서까지 ‘위상’을 떨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에 “엄마의 바람대로 이렇게 세상 반대편에 홀로 당당히 설 줄 아는 여성으로 성장했어”, “○○ 다녀감. 10년 뒤에 다시 올거임” 등의 한글 낙서가 발견돼 논란이 됐다. 태국의 한 국립공원에선 수심 20m 바닷속 산호 표면에 '박영숙'이라고 쓴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백두산 관광 코스로 자주 방문하는 중국 용정의 한 관광지에 한글 낙서가 돼 있다(좌측). 스위스 루체른 카펠교에도 한글 낙서가 발견됐다(우측). 카펠교는 1333년 로이스강에 놓인 다리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다리로 길이가 200m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선 경범죄처벌법이나 환경법에 따라 관광지 낙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 공원이나 명승지, 유원지 등에서 바위나 나무에 글씨를 새겨 자연을 훼손하면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5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환경법은 국립공원 등에서 이런 행위를 했을 때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관광객에게 범칙금을 물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칫 장난삼아 한 낙서에 범칙금 물리는 관광지라는 소문이라도 나면 손님 모으기에 심각한 타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낙서는 일종의 ‘동물적 행위’인 영역표시에 해당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낙서를 할 만한 곳엔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든지 겉면을 포장해버린다든지 여러 방법을 고안하고 있지만 자연경관물에는 이런 조치를 할 수가 없다”며 “관광객이 많은 곳엔 제복을 입은 감독 인력을 배치해 필요시 범칙금 등을 물려야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방법과 동시에 관광지에 들어가기 전 사전교육을 하고 공익광고를 통해 평소에도 관광지에 낙서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