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47)씨로부터 받은 4600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입국한 30대 유흥업소 직원이 관세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세관과 검찰, 유흥업계에 따르면 재만씨에게서 시계를 받은 유흥업소 종사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빌딩 지하에 있는 G업소에서 마담으로 일하는 김모(38)씨다. G업소는 종업원들 미모가 뛰어나고 술값이 비싸 속칭 '텐카페'로 불리는 곳이다. 2명이 가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면 기본 200만원 나오는 고급 유흥주점으로 하룻밤 수천만원짜리 술자리가 자주 벌어진다고 한다. G업소엔 일반 직장인 손님은 거의 없고 기업인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이 주로 찾는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재만씨는 귀국했을 때 G업소를 가끔 들렀고, 이곳 마담 김씨와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G업소는 이번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기 직전인 지난달 영업을 중단했다. 주변의 다른 업소 관계자는 "새벽까지 고급 수입 승용차가 즐비하게 대기하던 집이었는데, 한 달 전부터 영업하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건은 전씨가 김씨를 미국으로 초청했던 재작년 8월 시작된다. 전씨는 2015년 8월 18일 미국 베벌리힐스의 한 매장에서 김씨에게 4600여만원 상당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사줬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 만들어진 브랜드로 명품시계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으며 나폴레옹 1세와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이 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닷새 뒤인 8월 23일 김씨는 미국에서 서울 자택으로 제품 보증서와 케이스를 국제선 특송화물로 부친 뒤 귀국길에 올랐다. 세관 관계자는 "입국할 때 외국에서 산 시계나 보석을 몸에 지니고 케이스나 보증서는 특송화물로 따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고전적 수법으로 케이스와 보증서가 물품과 함께 발견되면 출국해서 구입한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인천공항에 들어오면서 평소 차고 다니던 시계인 것처럼 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미화 600달러를 초과하는 물건을 국내로 반입할 때는 세관신고서에 자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김씨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고급시계는 세율이 높아 김씨가 정식 신고를 했다면 제품가의 절반에 가까운 2200여만원을 관세와 내국세로 내야 한다. 김씨의 밀수 작전은 성공하는 듯했으나 문제는 특송화물이었다. 인천세관은 김씨가 집으로 보낸 특송화물을 검색하다 명품 시계 케이스와 보증서가 담긴 사실을 포착했다. 김씨가 세관에 시계를 신고하지 않은 점도 확인하고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세관은 작년 5월 관세법 위반 혐의로 김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아 김씨 자택을 뒤졌고 시계를 찾아냈다. 김씨는 세관 조사에서 시계 자금 출처를 추궁하자 "재만씨가 미국에서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세관은 김씨의 혐의가 고의성이 짙은 밀수에 해당한다고 보고 시계를 몰수하고 사건을 인천지검으로 보냈다. 우발적으로 세관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세금에 가산세만 물리고 주인에게 물건은 돌려주지만 고의성이 뚜렷하면 세관은 물건을 압수할 수 있다. 검찰은 작년 10월 관세법 위반 혐의로 김씨를 약식 기소했고 법원은 벌금 1000만원을 확정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특송화물 검사를 하다 보면 시계뿐 아니라 보석, 에르메스·샤넬 등 명품 케이스와 보증서가 자주 발견된다"면서 "세금 포탈 목적도 있지만 물건을 국내에 되팔려면 케이스와 보증서가 반드시 필요해 위험을 무릅쓰고 국제우편을 이용하지만 대부분 적발된다"고 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반란·내란수괴·뇌물죄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02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밝혔다가 국민적 비난을 받았었다. 재만씨는 1995년 동아원그룹 이희상 전 회장의 장녀와 결혼해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장인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와인 양조장을 운영하고 대형 포도 농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재만씨는 미국 재산이 장인 소유라는 입장이지만,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재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계 선물 자금뿐 아니라 재만씨가 갖고 있는 재산이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드러나면 환수가 가능하지만, 그 입증 과정은 쉽지 않다. 검찰은 2013년 재산 추징 수사에 전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1013억원을 추징했다. 아직 절반가량의 미납 추징금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당시 수사에서 재만씨 친형인 재용(53)씨가 탈세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와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이 금액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서 '봉투접기' 등의 노역(勞役)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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