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는 저와 5년간 사귀면서 다른 여자들을 동시에 만났습니다. 여자분들 조심하세요. 김정수는 인간도 아닙니다."

회사원 김정수(가명)씨는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며칠 전 헤어진 여자친구 A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황급히 글을 삭제했지만 이미 글을 본 지인들은 "무슨 일이냐"며 연락해왔다. 김씨는 A가 또 글을 남길까 봐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고 그에게 "소셜미디어에 한 번만 더 이런 글을 올리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바람 응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5년 2월 간통죄 위헌 결정으로 배우자의 불륜에 대해 합법적으로 '복수'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자, 소셜미디어에 불륜을 공개해 사회적 망신을 주려는 것이다.

폭로에 나섰다가 모욕·명예훼손죄 처벌을 받게 된 이들이 많아야 100만원 정도의 손해배상금 판결을 받으면서, "이 정도면 가격 대비 괜찮은 복수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8월 한 여성은 남편과 내연녀가 벌인 부정행위를 소셜미디어에 폭로하며 비난했다가 법원으로부터 배상금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또 지난해 5월 남편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피해자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불륜 사실을 공개한 여성에 대해 법원은 "우발적·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벌금 50만원의 선고유예를 하기도 했다. 선고유예는 선고 후 2년이 지나면 형 선고의 효력이 없어지는 가장 가벼운 처분이다. 지난해 6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상대방 여성의 직장 동료 4명에게 알린 박모(33)씨에겐 벌금 30만원이 선고됐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명예훼손 발생건수는 2005년 7458건에서 2015년 31114건으로, 10년 사이 약 4.1배 늘었다. 특히 2015년 '정보통신망의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발생건수 총 9788건 중에 명예훼손이 4337건(44%)으로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배우자가 아닌 애인 사이에도 '바람을 피웠다'며 소셜미디어에 공개해 응징하는 일이 빈번하게 생기고 있다.

한 네티즌은 페이스북에 자신 주변에서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는 여성의 사진과 신상, 이들이 어떤 식으로 바람피우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써 올렸다. 소셜미디어에 남자친구의 바람을 폭로한 적이 있다는 한 30대 여성은 "충격과 배신감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했다"며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 법적 처벌도 주지 못하고 명예훼손으로 걸릴 위험이 있었지만, 공개 망신을 주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애인 관계가 아니어도 관심 있는 이성과 잘 돼 가는 단계인 속칭 '썸타는' 관계에서 배신을 당해도 이를 소셜미디어에 폭로하기도 한다. 또 제3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바람 현장'을 공개하기도 한다.

태연법률사무소 김태연 변호사는 "배우자나 애인의 바람을 소셜미디어상에 유포하면 어떤 처벌을 받느냐는 상담이 간통죄 폐지 이전보다 20~30% 증가했다"며 "애인이 바람을 피워서 이런저런 내용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릴 건데 벌금이 얼마 나올 것 같으냐는 문의가 대부분"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벌금을 내더라도 공개 망신을 주는 게 내 속이 더 편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어 이 중 10% 정도가 실제 명예훼손에 따른 처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징역 6개월이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제3자가 이런 글을 올렸다면 형법상 '정범(正犯)'이 돼 중한 처벌을 받고 부추기거나 도운 사람이 있다면 교사범으로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