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휴양지의 상징 '부곡 하와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곡 하와이의 폐장 소식을 들으면서 많은 이들이 그 때 그 시절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떠났던 유원지와 테마파크를 추억했을 것이다. 70년대 용인 자연농원으로 시작한 국내 테마파크 사업은 해외여행이 많지 않았던 8·90년대 절정을 이루며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명소였으나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기적적으로 회생한 추억 속의 유원지, 테마파크들을 정리했다.
추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곳
경상남도 창녕군에 1979년 개관한 테마파크. 산업화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할 무렵인 80년대, 서민들에게 휴식과 판타지를 제공한 대표 테마파크다. 그 시절 아이들이라면 여름방학 때 꼭 한번 가보길 소원했고 신혼부부들은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여겼다. "나 이번 여름에 하와이 갔다왔잖아, 부곡하와이"라는 말이 비웃음이 아닌 부러움을 자아내는 시절이었을 정도로 서민들이 일상에 없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흔해진 워터파크지만 80년대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레저 시설과 온천, 테마파크 등을 한데 즐길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부곡하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대 야자수와 이국적인 정취로 꾸며놓은 시설로 국내에서도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한창 잘나갔을 무렵에는 연간 방문객 300만 명 달했으나 최근에는 그의 10분의 1수준으로 방문객 수가 떨어져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폐장을 결정했다. 현재 인수 사업자를 찾고 있다.
['국내 워터파크 시초' 부곡하와이, 38년 만에 문 닫는다]
[38년만에 문닫은 부곡하와이, 경영비리 검찰 수사 받아]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와 함께 문을 연 놀이공원 시설. 엑스포가 끝난 1994년, 남아있는 엑스포 시설과 부지를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바꾸면서 재개장했다. 처음에는 '꿈돌이동산'이었으나 후에 꿈돌이랜드로 명칭을 바꿨다.
꿈돌이는 대전엑스포의 공식 마스코트. 9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말 그대로 '꿈과 미래'의 상징이었다. 당시 관련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들이 쏟아질 정도로 과거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현재 뽀로로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꿈돌이를 모티브로 만든 이 놀이동산은 대전엑스포 개최 이후 중부권 최고의 놀이공원으로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엑스포의 명성이 퇴색되고 시설이 점점 노후화되면서 찾는 사람이 줄었다. 결국 2013년 폐장 결정을 내렸는데 이후 2015년까지 3년간 아무런 조치없이 시설이 방치됐다. 이 당시를 찍은 사진이 '꿈돌이랜드의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소셜네트워크에서 돌아다녀 어린시절 꿈돌이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한 네티즌은 이를 보고 "추억의 한조각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꿈돌이랜드의 시설들은 단독 또는 서너개 묶음으로 국내업자와 수출업자들에게 매각된 상태이다.
1939년 일본 강점기 때 일본군 휴양지인 송도해수욕장으로 출발해 1963년 썰매장, 수영장 등 시설을 갖춰 종합 휴양지로 재개장한 곳이다. 당시 수문(水門)을 통해 바닷물을 들이고 내보내는 국내 유일의 인공 해수욕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 20여 년 동안 이곳은 유원지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가득했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나 학교의 소풍 장소로도 빠지지 않는 곳이었다. 인천을 와보지 않은 외지인들도 '인천의 관광지'하면 월미도와 송도해수욕장을 떠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곳은 점차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도에 새로운 시설로 무장한 관광시설들이 하나 둘씩 새로 문을 열기 시작한 데 반해 이곳에서는 시설에 대한 투자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운영난에 빠지게 됐고,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폐장 당시 송도유원지가 안고 있는 운영 적자는 170여억원에 이르렀다. 폐장 직전의 놀이공원 모습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잠깐 등장한다. ▶기사 더보기
현재 송도유원지 일대는 인천시가 진행하는 송도 테마파크으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1987년 조성사업을 시작해 1988년 부산 태종대에 만들어진 놀이공원. 2008년 시설 노후화와 적자를 극복하지 못하고 폐장했다.
폐장 당시 부산시에서 의뢰한 정밀안전진단용역을 실시한 결과 놀이공원의 시설 대부분이 해풍의 영향으로 심하게 부식되고 청룡열차, 관람차 등 6종이 위험시설로 판정됐다. 특히 정문·승강장구조물 등 주변시설은 붕괴, 추락 등과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작은 놀이공원이다. 용마랜드라는 명칭은 용마산 근처에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등 대형 놀이공원의 인기에도 90년대까지 인근 주민들이 꾸준히 찾으면서 그럭저럭 돌아가던 용마랜드의 놀이기구가 멈춘 것은 1999년. 경영진이 대규모 승마장과 스포츠시설 건설 사업을 무리하게 시도했다가 부도가 나면서 놀이공원 역시 허가가 취소됐다. 용마랜드는 허가가 취소된 뒤 조명을 켜는 것 외에는 놀이기구를 가동할 수 없게 됐고 기구나 부지도 딱히 팔리지 않아 그 상태로 15년 넘게 방치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이 용마랜드에 다시 2·30대들과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이 본격 관광 명소가 된 것은 '한류 열풍' 때문이다. 2015년 아이돌 그룹 엑소(EXO)가 이곳에서 앨범 재킷 사진을 촬영한 뒤 동남아 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가 일본에 방영된 이후 일본 관광객도 늘었다. 아이유나 여자친구 같은 유명 가수들도 이곳에서 앨범 사진을 찍었다. 그대로 유지된 놀이기구들이 고풍스러움과 기괴함을 풍겨 빈티지 분위기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놀이기구를 운영하지 않지만, 사진촬영을 위한 입장료(1인당 5000원)를 받고 있다. 오히려 문을 닫은 후 훨씬 유명해진 곳이다.
'재개장'으로 다시 살아난 곳
90년대 김해 지역 일대 최고의 유원지이자 유일한 공원. 가야개발이 1984년 골프장 설립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일부 부지를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할 것을 약속하면서 만든 놀이공원이다. 김해시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관심을 받으며 문을 열었으나 차츰 인근 지역에 비슷한 시설들이 들어오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영업부진을 겪던 가야랜드는 결국 2008년 폐쇄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운영주체인 가야개발과 김해시, 주주, 다른 사업자들이 갈등을 벌이면서 방치되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은 김해시. 시설을 보수해 재개장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김해시는 가야랜드가 공공성을 갖춘 유원지가 될 수 있도록 다시 계획을 세웠다. 김해시와 가야개발은 '가족힐링테마파크'라는 컨셉으로 야외캠핑장 개설, 체험프로그램이 골자인 '에코빌리지' 등을 신설하고 2016년 가야랜드의 문을 다시 열었다. 재개장 날, 김해시민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을 찾아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1995년 개장한 대구 최초의 테마파크. 주식회사 우방이 대구타워(現 83타워)를 지으면서 그 주변에 놀이기구시설과 위락시설을 조성한 것이 시작이다. 원래 이름은 우방타워랜드. 이랜드가 인수하면서 '이월드'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추억 속의 이름 '우방랜드'라고 부르고 있다. 20여년 동안 대구 시민들의 휴식 놀이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이랜드가 인수하기 전까지 운영 주체 우방의 경영상태가 악화되면서 점점 시설이 노후화되고 재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쇠락의 길을 걸을 뻔했다.
하지만 2011년 테마파크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던 이랜드가 우방랜드를 인수해 새로운 놀이기구를 들이는 등 시설 재정비를 하고 운영 방식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최근에는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1992년 마이랜드라는 이름으로 개장했지만 사람들에게 '월미도 놀이동산' '월미도 바이킹'으로 더 자주 불리는 곳이다. 8·90년대 관광지로 유명했던 월미도이기 때문에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사람은 '월미도 놀이공원 아직도 있느냐?'며 놀라겠지만 이곳은 2009년 공간을 확충하고 새로운 놀이시설을 들인 월미테마파크와 함께 새롭게 재개장해 지금까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월미 마이랜드가 대형 놀이공원에도 밀리지 않고 꾸준히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인천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수도권과 가까워 많은 사람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고 바닷가에 인접했기 때문에 독특한 자연풍광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바이킹'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제일 무서운 바이킹을 '월미도 바이킹'으로 칠 정도로 바이킹이 운행될 때 올라가는 각도가 꽤 직각에 가까우며 운행시간도 길다. 여러 방송에 등장해 월미도의 명물로 등극한 '디스코 팡팡' 역시 월미도에 가면 꼭 '타야 할 것'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 테마파크를 북적이게 했다.
8·9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국내 테마파크 사업은 점점 사양산업으로 기울어가는 추세다.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고, 놀고 즐길 거리가 곳곳에 넘쳐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특색없는 놀이공원에 열광하지 않는다. 부곡하와이 역시 개장했을 때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와 시설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지만, 비슷한 곳이 많아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노후화 이미지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광전문가들은 테마파크의 기획과 운영에서 흡입력을 가진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대표적인 테마파크인 미국의 디즈니랜드와 일본의 하우스텐보스는 '꼭 그곳에 가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상품'으로 꾸준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추억 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닌 자녀의 손을 잡고도 세대를 넘어서 찾을 수 있는 '놀이공간'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