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K팝이 일본 대중음악인 'J팝'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불과 20년 전은 사정이 딴판이었다. 한국 정부가 1998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를 점진적으로 풀어주는 문호 개방 조치를 단행할 무렵 일본에 대한 문화 예속 우려가 가장 컸던 분야 가운데 하나가 대중음악이다. 1990년대 한국 가요계에서는 'J팝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주기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 때문에 문호를 개방하면 J팝이 한국 가요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질 않았다.

일본의 록 그룹 ‘엑스 재팬’에서 드럼과 키보드를 맡은 요시키. 재결성 10주년인 올해 엑스 재팬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25일 개봉하는 '위 아 엑스'(We Are X·감독 스테판 키작)는 전 세계에서 30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액을 올린 일본의 대표 록 그룹 '엑스 재팬(X Japan)'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제목인 '위 아 엑스'는 이 그룹이 공연 때마다 팬들과 함께 외쳤던 구호다. 1982년 결성된 엑스 재팬은 빠르고 공격적인 헤비메탈에 동양의 서정적 선율과 고음으로 한껏 치솟는 속 시원한 후렴구를 가미해서 한국 록과 발라드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한국 가요계에서 J팝 표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표절 대상으로 거론됐던 일본 그룹이기도 했다. 1997년 해산했지만 2007년 재결성해서 지금도 활동 중이다.

다큐멘터리는 2011년 미국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나흘 앞둔 시점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멤버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데뷔 무렵부터 그룹의 역사를 연대기식으로 훑어나가면서 입체감을 살린다. 유치원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토시(보컬)와 요시키(드럼·키보드·작곡)가 주축이 된 엑스 재팬은 1980년대 인디 그룹으로 명성을 쌓다가 1988년 소니뮤직과 계약한 뒤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멤버들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타이지(베이스)가 사실상 해고되고 토시는 신흥 종교에 빠지는 등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온다. 1997년 그룹 해산 이후 히데(기타)와 타이지가 각각 1998년과 2011년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겹친다. 리더인 요시키는 "세월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 있다"며 눈물을 흘린다.

올해는 그룹 해산 20주년이자 재결성 10년을 맞는 해다. 엑스 재팬의 기타리스트였던 히데의 삶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히데, 정크 스토리'도 최근 인터넷 TV를 통해 국내 개봉했다. 3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타리스트이자 솔로 가수, 후배 그룹을 발굴한 음악 기획자로 활동했던 히데의 다채로운 면모를 재조명한다. 지난 30여년간 한·일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엑스 재팬의 연대기를 통해서 거꾸로 'K팝은 J팝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맞섰던 응전의 역사'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들의 빼어난 음악 덕분에 우리 역시 세계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