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같이 처음으로 자위기구를 만져봤어요. 그날 이후로 신세계가 열렸죠(웃음)."
대학원생 황윤혜(31)씨는 지난달 남자친구 손을 잡고 서울 홍대 근처 한 성인용품점에서 열린 '섹스토이의 기쁨'이라는 주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각종 여성용 자위기구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건강하고 즐거운 성관계를 갖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였다. 20~30명 정도 되는 참석자들은 무척 적극적이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수시로 물었고, 자위기구를 돌려가며 함께 만져봤다. 황씨는 "몇 년 전 뉴욕에 놀러 갔을 때 그곳 성인용품점에서 섹스 세미나를 여는 것을 우연히 보고 무척 재밌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며 "강연도 듣고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도 나눈 덕분에 권태기도 쉽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도심 곳곳 성인용품점이 최근 성(性)을 새롭게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부산 등지에 새롭게 들어선 성인용품점에서 요즘 20~30대 청춘들은 성 세미나도 하고 DJ를 불러 파티도 하고 함께 영화도 본다. 한때 도시 뒷골목 그늘에 숨어 있던 성인용품점에서 이젠 도서관이나 북 카페 같은 곳에서나 진행됐던 소모임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 상수동 카페 '걸스타운' 한편에는 '은하선 토이즈'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용 섹스 토이를 전시해놓고 파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20~30대들이 종종 모여 '섹스 토크'를 갖거나 '토이 파티'를 연다. 동성 친구들과 함께 토이 파티에 두 번 정도 참석해봤다는 김선(26)씨는 "다 같이 모여 맥주도 마시고 섹스 토이를 만져보고 섹스를 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는 모임이었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모였지만 그 과정에서 내 몸을 어떻게 즐겁게 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제법 의미 있었다"고 했다. 세미나 주제나 일정은 보통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게릴라 공지'가 된다. 남근 중심적 섹스에서 벗어나 여성과 남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법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여성단체나 페미니즘 학회에서 이런 세미나나 토이 파티에 다 같이 참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페미니즘 커뮤니티 '젠더리스'의 한 회원은 "섹스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쉽고 즐겁게 나눌 수 있어서 종종 온다"고 했다.
강연은 보통 성인용품점 주인과 직원이 직접 열지만, 간혹 성의학·성심리 전문가를 초빙할 때도 있다. 서울 합정동과 신사동에 있는 부티크 형태의 성인용품점 '플레져랩'의 곽유라(30) 대표는 "그동안 섹스 토이를 이용하는 법에 대해서는 나와 직원들이 직접 강의했는데, 앞으로는 전문가 강연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 뉴욕의 '베베랜드(Babeland)'나 오리건의 '쉬밥(Shebop)' 같은 성인용품점에서 '체위의 과학'이나 '우리 몸의 은밀한 비밀' 같은 내용으로 강연도 열고 고객들과 모여 섹스 토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곽 대표는 "다 같이 섹스 토이를 움직여보고 활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은 도구를 이용할 줄 알고 그를 통해 발전하는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며 웃었다.
젊은 부부와 노인들의 참여도가 점차 늘어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결혼한 지 8년 된 문서영(40)씨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뒤져 성인용품점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 일정을 확인하고 남편과 한두 번 갔다. 처음엔 남편이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나보다 더 즐거워했다. 덕분에 부부관계도 좀 더 알록달록해진 느낌"이라고 했다. 한 성인용품숍 온라인 커뮤니티 후기 게시판엔 스스로를 '78세 노인'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지난달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꽤 오래 울적했는데, 우연히 도구를 선물 받고 세미나도 듣게 됐다. 민망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려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