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있으니 소중한 걸 잊고 산다. '가족'을 떠올리면, 누구나 미안함이 앞설 것이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은 영화 두 편이 찾아왔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거나 남편·아내 한번 안아주고 싶어지는 착한 영화다.
◇韓 영화 '길': 깊은 추억, 아픈 현실
'길'(감독 정인봉)은 혼자 사는 '순애'(김혜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냉장고며 TV를 고장 낸 뒤 아들뻘 수리기사를 불러다 밥 해먹이는 게 유일한 낙. 바쁘다며 퉁명스레 전화를 끊는 자식과 달리, AS 기사들은 늘 상냥하다. 전을 부치고 김치를 썰어 밥을 차려줄 때면 경쾌한 왈츠 음악이 흐르고, 식탁과 냉장고 사이를 오가는 순애의 발걸음이 봄처녀처럼 발랄해진다. "늙으면요, 쓸 데 없어지는 게 죽는 거보다 더 두렵거든요." 어머니 같은 그녀의 말에 가슴이 아리다.
영화는 어릴 적 인연으로 연결된 세 노인의 삽화다. 어린 손녀를 혼자 기르는 '상범'(송재호)은 월남 참전 뒤 난청이 생겨 보청기를 낀다. 작은 카페를 처음 열고 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진 동안, 잊었던 첫사랑의 기억이 그를 찾아온다. 엄마를 끔찍이 위하던 아들을 사고로 잃은 '수미'(허진)는 기로에 서 있다. 모든 걸 정리하려 떠난 길 위에서 뜻밖의 젊은 동행을 만난다. 김혜자·송재호·허진, 군더더기 없는 호연(好演)이 이야기의 투박함을 덮고도 남는다. 상영 시간 86분, 12세 관람가.
◇日 영화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18일 개봉한 '내 아내…'(감독 미야케 요시시게)는 일본 독립영화 특유의 일상 유머, 한없이 착한 인물과 낙관적 분위기가 강점이다. 일과 가족밖에 모르고 살아온 20년 차 방송작가 '슈지'(오다 유지)가 갑작스럽게 말기암 선고를 받는다. '재미없는 일을 재미있게 꾸미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온' 그가 암 따위에 주눅 들 리 없다. 갈고 닦은 예능 기획 실력과 인맥으로 자기 대신 가족을 지켜줄 아내의 새신랑을 찾아 나선다. 가족 위한 남편의 좌충우돌이 웃기면서 눈물겹다. 막판엔 그 남편보다 더 사려 깊었던 아내가 꾸민 작은 반전이 숨어 있다. 최근작 '행복 목욕탕'을 포함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아내가 남은 가족을 위해 뭔가 꾸미는 이야기는 일본 영화의 단골 소재. 딱 기대만큼 잔잔하고 따뜻하다. 어쩌면 영화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가족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114분,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