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 선임기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로마제국의 전략가였던 베게티우스의 금언(金言)은 오랫동안 서양의 정치사상가들과 군사 지도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오늘날에도 국제관계를 현실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널리 회자된다.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친 만큼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는 대체 금언이 대표적이다.

평화를 준비해서 평화를 확보하려는 실천도 나타났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여성 작가 베르타 폰 주트너는 '무기를 내려놓으시오'라는 반전(反戰) 소설을 출간하고 평화운동을 벌였다. 그는 노벨과 톨스토이의 후원을 받았고 190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1914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 뒤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1938년 9월 뮌헨협정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히틀러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뒤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하자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는 또 다른 세계대전의 발발을 피해보려고 처칠 등의 반대에도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점령한 데 이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평화에 대한 갈구만으로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를 방문해 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에서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그가 북한에 물어보자고 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을 때 소셜 미디어에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일본의 침략에 결사 항전을 선택한 이순신보다 일본에 항복해 나라를 넘겨준 이완용이 더 낫다는 말이 될 수 있다"며 "물론 전쟁은 피해야겠지만 불가피하게 나쁜 평화를 수용하지 않고 좋은 정의의 전쟁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지난 4월 '한반도 위기설'이 퍼졌을 때는 "북한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한반도에서 또다시 참화가 벌어진다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걸고 저부터 총을 들고 나설 것"이라고 했다. '가장 나쁜 평화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충돌할 때 대통령이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한다. 새 정부 출범 나흘 만에 일어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문 대통령이 앞으로 직면할 도전이 엄중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평화근본주의자들은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너무나 온당한 주장에 대해 '전쟁하자는 호전광(狂)'으로 몰아붙이며 호도한다. 그러나 '전쟁에 대비하는 것'과 '평화를 준비하는 것'이 양자택일 관계는 아니다. 양자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 정상 국가이고 전쟁 대비가 철저할 때 평화를 위한 노력도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장 나쁜 평화'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문제다. 자유와 번영을 포기하고 얻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북한 핵의 위협이 드리운 대한민국의 생존과 발전을 원한다면 '가장 나쁜 평화'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