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의 넷플릭스, AI와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함께 스타일링해주는 쇼핑몰
옷 사진 하나 없이 연 매출 8000억원 달성… 쇼핑 피로 없앤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 적중

AI와 전문 스타일리스트의 추천 서비스로 인기를 얻은 쇼핑 서비스 스티치픽스는 론칭 5년만에 8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번 주 토요일 태희 결혼식에 전 남친이 온대. 나를 최고 멋진 여자로 만들어줘.”

옷장 속 AI에게 스타일링을 주문하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상황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 인공지능과 패션의 결합이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소비자들이 입력한 데이터만으로 의상을 추천하고 배송해주는 의류 쇼핑몰이다. 옷을 파는 쇼핑몰이지만 흔한 옷 사진 하나 없다. 비결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옷을 뽑아내고,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이 중 5가지를 골라 고객에게 배송한다. 고객들은 옷을 입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면 된다.

놀랍게도 고객 중 80%가 추천한 옷 중 한 벌을 구매하고, 80%의 고객은 첫 구매 후 90일 내 재구매를 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스티치픽스는 2016년(회계연도 기준) 7억3000만 달러(약 8166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3년 연속 수익을 올렸다.

◆ 넷플릭스의 인공지능 ‘머신러닝’ 도입,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 적중

스티치픽스는 20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온라인 쇼핑 기업으로 AI와 데이터 과학자가 만들어내는 쇼핑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고객과 스타일리스트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서비스는 기존에도 있었다. 그러나 스티치픽스가 다른 점은 고객과 스타일리스트를 직접 연결하는 대신, 그 사이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스타일리스트가 아이템을 고르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절감한 것이다. 이를 통해 스티치픽스는 회당 스타일링 비용 20달러, 아이템당 평균 가격 55달러 정도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티치픽스에서는 사이즈와 취향, 예산 등을 작성하면 이를 토대로 AI와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함께 고른 5가지 패션 아이템이 배송된다.

애초 사이즈나 색상 등 기본적인 분류를 통한 필터링 알고리즘(컴퓨터상의 절차나 방법)을 활용했던 이 회사는 2012년 넷플릭스(Netflix)의 데이터 과학 부회장 에릭 콜슨(Eric Colson)을 영입하고 70여 명의 데이터 분석가로 구성된 팀을 꾸려 추천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 학습)을 도입해 더 세밀하고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스티치픽스는 현재 수백 개의 알고리즘을 운영하고 있다. 선호 스타일을 파악하는 알고리즘부터 패션 트렌드 분석, 최적의 스타일리스트 배정, 고객 만족도, 기업이 구매해야 하는 상품 목록의 리스트와 양을 결정하는 알고리즘까지 다양하다. 이미지를 스스로 학습하는 알고리즘도 있어, 고객의 핀터레스트(Pinterest) 이미지를 확인해 고객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취향까지 잡아낸다.

AI의 추천이 끝나면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투입돼 인간의 감성을 담는다. 스티치픽스에서 일하는 스타일리스트는 3천 명이 넘는다. 이에 대해 에릭 콜슨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고, 조화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스티치픽스의 핵심 경쟁력”이라 밝힌 바 있다.

◆ 바빠서, 귀찮아서… 쇼핑 힘든 귀차니스트들 열광, 창업 5년 만에 매출 8000억 원

스티치픽스의 창업자 카트리타 레이크

스티치픽스의 창업자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는 직장 생활과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던 어느 날 검은색 드레스가 필요해 쇼핑몰을 전전하다 수백 장의 사진에 지치고 말았다. 한 벌의 옷을 구매하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던 끔찍한 경험은 곧 스티치픽스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마존과 이베이에 수백, 수천 벌의 옷이 널려있지만 검은색 드레스 한 벌을 사자고 가격대를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가 멋지게 보일 단 한벌의 옷이고, 그걸 누가 좀 잘 골라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아마존을 필두로 한 이커머스 업체들은 빠르고 저렴하게 판매하는데 집중하지만, 스티치픽스는 쇼핑할 시간이 없거나 쇼핑이 귀찮은 고객들의 ‘쇼핑’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련되게 입고 싶지만 옷을 고르는데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공략했고, 이는 적중했다.

스티치픽스가 보낸 스타일 박스 안에는 5가지 패션 아이템을 비롯해 이 아이템을 다른 아이템과 함께 스타일링하는 법을 알려주는 스타일 카드가 함께 배송된다.

스티치픽스는 지난해 9월 남성복 서비스를 오픈했다. 또 개인화된 스타일링 서비스를 넘어 독자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역시 고객 데이터와 정보를 기반으로 한 AI의 활약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스티치픽스 외에도 최근 패션업계엔 인공지능을 결합한 비즈니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옷을 골라주는 AI 스피커 에코 룩(Echo Look)을 내놓았다. 사용자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해 올리면 어떤 코디가 더 잘 어울리는지 추천해 준다. 추천은 아마존의 머신 러닝 알고리즘과 패션 전문가들의 조언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유럽의 온라인 의류 업체 자란도는 구글과 함께 AI 의류 맞춤 서비스 ‘프로젝트 뮤제’를 선보였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간단한 스케치를 하면 3D로 디자인이 된다. 빅데이터를 토대로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국내 기업으로는 네이버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타일 추천’ 베타 서비스를 선보였다. 스타트업 기업 옴니어스는 AI에 기반을 둔 패션 이미지 식별 기술을 개발했다. 거리에서 본 패션을 촬영하거나 SNS 이미지를 올리면 비슷한 스타일의 상품을 추천해주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