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여러 겹 색칠해 깊은 색감을 낸다. 황소나 곰의 털가죽처럼 세밀한 묘사가 필요한 그림은 펜촉에 잉크를 찍어 그려넣는다. 미술 시간이 아니라 남자 구두 이야기다. 비슷비슷한 구두에 회화(繪畵)처럼 개성을 불어넣는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신던 구두의 색깔을 바꾸는 것은 물론 정교한 그림을 넣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구두의 색을 바꾸는 기법은 파티나(pat ina)라고 한다. 전용 약품을 써서 구두의 원래 색을 빼고, 원하는 색을 붓으로 다시 칠해 새 구두로 변신시킨다. 보라색, 녹색, 회색처럼 기성화에서 구하기 어려운 색깔을 낼 수 있다. 한 켤레의 구두에 여러 가지 색상을 쓰거나 색의 농담(濃淡)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등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다. 갈색 구두를 예로 들면, 코끝에만 검은색을 넣어 그러데이션 처리하거나 바느질 선을 따라 더 짙은 갈색을 칠할 수 있다. 갈색에 붉은색을 겹쳐 칠해 입체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펜으로 거미(왼쪽)와 개미 떼를 그려넣은 맥나니의 구두. 펜화 장인 파울리노 루아노씨의 작품이다.

파티나로 유명한 구두 브랜드는 프랑스 고급 수제화 회사 '벨루티'다. 구두를 사면 파티나 한 번은 무료로 해준다. 최근에는 '블랙샤인'처럼 국내에도 파티나가 가능한 구두 관리 전문점이 등장하면서 파티나를 시도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구두의 소재나 원래 색깔 등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색깔에 제한이 있다. 블랙샤인 김태준 대표는 "검은 구두를 검붉은 색으로 바꿀 수는 있어도 아예 흰색으로 바꾸기는 불가능하다"며 "에나멜가죽은 파티나가 안 되지만 일반적인 카프(송아지 가죽) 소재는 대부분 가능하다"고 했다.

구두를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스페인 구두 브랜드 '맥나니'는 작년부터 맞춤 구두를 주문하면 펜화 전문 장인이 구두에 그림을 그려주는 행사를 전 세계를 돌며 열고 있다. 세상에 한 켤레뿐인 구두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다.

펜글씨 쓰는 일반 잉크로 그림을 그린 뒤 번지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투명 도료를 입혀 완성한다. 구두 모양은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겉에 재봉 선이 없는 홀컷(밑창을 제외한 부분을 가죽 한 장으로 만드는 구두)이 다양한 표현을 하기 좋다. 최근 서울 한남동 남성복 편집숍 란스미어 매장에서 열린 국내 행사를 위해 방한한 펜화 장인 파울리노 루아노씨는 "멕시코에선 고객이 들고 온 가족사진을 구두에 그려준 적도 있다"며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고 했다. 맥나니는 국내 고객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내년에도 이 행사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