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서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그는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시장 투어를 할 때 참깨를 볶아서 참기름을 짜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광장시장의 빈대떡 등 한국의 맛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한약재 냄새가 진동하는 서울 약령시장 골목 안, 작은 한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운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어 둘러보니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대부분이 서양인이다. 외국인에게 한국 요리를 가르치는 ‘오미요리연구소’의 수업이었다. 오미요리연구소의 김민선 대표는 음식 재료의 특징과 만드는 과정을 영어로 설명하면서 참가자들도 요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은 이날 점심으로 순두부찌개와 두릅김밥, 해물파전, 떡볶이, 봄동겉절이 등을 함께 만들어 먹었다. 두릅, 봄동 등 봄 냄새가 물씬 나는 재료들을 활용한 메뉴였다. 수업 참가자들은 제기동역에서 만난다. 오는 길에 경동시장과 약령시장에 들러 함께 장을 보기 위해서다.

“전통시장 투어도 겸하는 수업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오랫동안 장사해온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아합니다. 한국의 제철 식재료도 확인할 수 있지요.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시장 분들도 이제 외국인을 만나는 데 익숙해졌어요. ‘뭐 해 먹어? 오늘은 갈치가 물이 좋으니 갈치조림을 해봐’라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시죠. 그분들 이야기를 듣고 메뉴를 바꾸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으로의 요리 여행을 꿈꾸다가

김민선 대표가 오미요리연구소의 문을 연 것은 2015년 봄이다. 2005년 동국대 국제통상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요리와 관련이 없는 학생이었다.

“대학 4학년 때인 2009년, 부뚜막이나 가마솥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주방기구를 소꿉놀이로 만드는 아이디어로 창업공모전에 참가했습니다. 인기상을 받고 샘플까지 만들었지만 사업성을 확신하기 어려워 포기했지요. 그리고 2011년 CJ푸드빌에 입사해 한식사업팀에서 일했습니다. 식당에서 주방 매니저로 일하며 현장 감각을 익히기도 했어요.”

일은 재미있었지만 몸이 너무 고되어서 2년 만에 회사를 나와야 했다.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빴습니다. 병 때문에 우울했는데 같은 병실에서 지내던 나이 든 암환자분들이 도리어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그분들의 격려에 ‘몸이 회복되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지’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세계 곳곳으로 요리 여행을 다니는 게 꿈이었거든요. 병실 침대에 누운 채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시고, 프랑스에서 빵을 굽는 상상을 했습니다.”

퇴원 후 그는 여러 나라로 요리 여행을 떠났다. 중국에서 쓰촨 요리, 말레이시아에서 페낭 요리를 배우고, 라오스에서는 커피 로스팅과 테이스팅을 익혔다.

“그러다 우리나라 음식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찰요리 수업을 듣고, 궁중음식연구원 폐백과정을 마치고, 궁중병과연구원 한과전문과정을 수료해 한과숙수2급 자격을 얻었습니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전통식생활문화를 전공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요리 여행 경험을 떠올리며 전통시장 투어와 요리 수업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강생들과 함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 후 그 재료로 한국 요리를 함께 만든다’는 아이디어로 2014년 한국관광공사의 ‘창조관광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일본 등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김밥을 만들고 있다.

2015년 봄, 그는 약령시장 골목에 있는 작은 생활형 한옥을 빌려 오미요리연구소를 열었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의자에 한복 천을 씌우고, 고추장 만들 때 쓰던 커다란 주걱을 벽에 걸고, 복주머니와 댕기 등 한국적인 물건들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했다. 외국인들은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늑하며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면서 좋아한다.

“처음에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문을 열자마자 바로 메르스 사태가 터졌거든요. 사정이 좀 나아지자 동대문과 대학로, 홍대 앞 게스트하우스를 다니면서 외국인들에게 요리교실을 홍보했습니다. 쉽게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국인도 많이 찾아왔죠.”

대학 시절 중국에서 9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한 덕분에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사용하면서 요리를 가르친다. 통역이 필요 없는 요리 수업이라 더욱 인기다. 오미요리연구소의 벽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감사카드가 붙어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동남아, 남미, 중동 등 정말 온갖 나라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세계 최대 여행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의 후기를 보고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보통 가족 단위나 친구끼리 신청하고, 요리사 등 음식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한국 음식에 대해 알려고 찾아옵니다.”

월요일은 삼계탕과 전, 화요일과 토요일은 불고기와 해물파전·김치찌개 등 가정식, 수요일은 떡볶이와 김밥·순두부찌개 등 거리음식, 목요일은 배추김치·물김치·토마토김치 등 김치와 수육, 금요일은 비빔밥과 불고기·콩나물국, 일요일은 떡과 약과·전통차 등 요일별로 기본 메뉴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예약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메뉴를 조정하고, 채식주의자나 할랄 식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이슬람교도 등 개별적인 요구에 맞추기도 한다. “육개장 컵라면이 너무 맛있었다”면서 육개장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외국인도 있었다.

“김치를 만들 때 멸치액젓을 구하기 어려우면 태국의 피시소스를 넣어보세요. 저도 뉴욕에 갔을 때 피시소스로 김치를 만들었는데, 괜찮더라고요. 사과와 배, 감, 오렌지 등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과일을 넣어도 맛있어요. 방울토마토 안에 김칫소를 넣는 토마토김치는 금방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고춧가루와 갓 짜낸 참기름은 한국에서 사서 가져가세요.”

영어와 중국어로 한국 요리 그림책 펴내
한국 음식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엽서와 영어와 중국어로 펴낸 한국 음식 그림책.

각자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서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그는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시장 투어를 할 때 참깨를 볶아서 참기름을 짜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광장시장의 빈대떡 등 한국의 맛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는 한식재단의 지원을 받아 요리 그림책인 《오미의 한국 가정식 요리교실》을 영어와 중국어로 펴내고, 중국, 대만, 영국,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관광박람회에 참가해 한국 음식을 시연하기도 했다.

한국 음식을 귀여운 일러스트로 표현한 엽서도 만들었다. 일본 NHK 방송과 아랍에미리트에서 발행하는 신문 등 외국 언론들도 그의 요리교실을 보도하고 있다. 요리 경력이 길지 않은 그가 어떻게 이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는 “그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요즘은 각 나라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본 한국 음식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귀국한 다음에도 계속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는 요리교실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요리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일본의 70대 할아버지, 홍콩의 푸드스타일리스트, 인도네시아의 주부, 이탈리아와 영국의 커플 등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책을 준비하고 있지요. 일본 할아버지는 저희 요리교실에 참가하려고 1년에도 몇 번씩 한국을 찾을 정도로 열성적이세요.”

그는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일뿐 아니라 전통시장을 살리는 일에도 참여해왔다. 광장시장에서 다도체험, 약령시장에서 약선요리체험 행사를 열고, 중국인 관광객을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나의 두 번째 서울여행’을 기획했다. 구로시장, 고분다리시장, 원당시장, 목사랑시장 등 재래시장들의 메뉴 개발을 맡기도 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요리체험을 할 수 있도록 요리교실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우선 강원도의 작은 어촌에서 현지 재료를 활용해 한국 음식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지요.”

그가 기획하는 요리체험을 통해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문화를 훨씬 더 깊고 풍성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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