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선 작가는 청각장애인이다. 시각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는 이런 장애들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제 삶은 드라마틱했어요. 청각장애라는 벽에 부딪혀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고 많은 실패를 맞이하게 됐죠. 그러나 제 곁에는 엄마와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구 작가’와 ‘베니’가 탄생할 수 있었죠.”

일러스트 작가 구경선. 그의 말대로 그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장애가 주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이 사회에 당당하게 섰다. 그의 삶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준 어머니와 그가 창조한 캐릭터 ‘베니’와 함께.

서울 잠실과 청량리에서 〈엄마, 베니가 열 살이 되었어요!〉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고 있는 구경선을 만났다. 그는 ‘구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학창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학교가 너무 답답했어요.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았죠. 들을 수 없으니 친구들과 여러 오해들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이때 외로움이란 감정을 처음 알게 되었죠. 결국 저는 학교라는 공간이 싫어졌어요. 무단으로 결석하는 날도 잦아졌습니다.”

〈일출〉, 375x530cm

구경선 작가는 어머니의 의견을 따라 일반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잘 지낼 수 있었다. 문제는 중학생 이후부터였다. 구경선 작가의 방황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를 결석하는 대신에 사람 구경을 하러 돌아다녔다. 법원에 가서 재판을 구경하기도 했고 대학병원에 가서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만 읽었다.

하루는 멀리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교복을 입고 전라남도까지 내려가봤다. 구 작가가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만큼 걱정이 더 커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다. 이제 중학생밖에 안 된 딸이, 그것도 청각장애가 있는 딸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연락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니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한숨은 깊어져 갔고 모녀의 갈등은 커져 갔다.

“엄마는 항상 걱정했어요. 그때는 휴대폰이 없었거든요. 엄마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저를 찾아다녔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한테 미안하고 고마워요.”

방황하던 소녀, 만화를 만나다
〈별을 따줄게〉, 530x409cm

그랬던 그에게 삶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친구와의 만남이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그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구경선 작가에게 먼저 다가와 마음을 열고, 말을 걸어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 그녀와 구경선 작가는 절친한 사이가 됐고, 모든 걸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구경선 작가에게 만화 한 권을 보여줬다.

그 친구가 보여준 만화는 천계영 작가의 《언플러그드》였다. 그 후로 그 친구와 함께 만화를 보기 위해 안 나가던 학교도 꼬박꼬박 나가게 됐고 특별활동 시간엔 만화부에 들어가 만화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구경선 작가는 만화를 만난 후부터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교내 백일장을 비롯해 그림과 관련된 모든 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구경선 작가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는 그녀에게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권했다. 어머니는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 딸이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구경선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향기〉, 1189x841cm

중학교 교장선생님에게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 한 달 동안 학교를 나올 수 없다는 편지까지 썼다. 결국 구경선 작가는 입학에 성공하게 된다.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 정말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던 만화를 마음껏,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기숙사 생활부터 시작해 만화마저 정형화된 구성으로 그려야 했어요. 학교 분위기가 엄격 그 자체였어요.”

이상과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학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수업도 생각해왔던 자유로운 시스템이 아니었다. 결국 구경선 작가는 무단 외출을 반복하게 됐고 곧 중퇴를 결심하게 된다. 이때부터 구경선 작가의 방황은 다시 시작됐다.

“중퇴를 하고 나니 속은 시원했어요.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도 차가웠어요. 저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았죠.”

중퇴를 한 여고생, 더구나 청각장애까지 지닌 그녀에게 사회는 보통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냉혹했다. 그녀는 낙담에 빠진 채 집에서 온라인 게임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다.

〈축하해〉, 227x158cm

방황의 삶을 살던 그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게 된 구경선 작가. 장녀인 그녀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고등학교 검정고시였다. 5번의 도전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그녀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림이었다.

“검정고시 합격 후 저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어요. 학원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펜을 잡았죠. 어떤 장르를 선택할까 고민하던 중 동화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동화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타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와 어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동화 일러스트 작가가 되기로 한 그는 ‘베니’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학원 수업 중 ‘나만의 캐릭터 만들기’라는 수업이 있었어요. 캐릭터를 선정하기 위해 동물백과사전을 펼쳤죠. 그때 제 눈을 사로잡은 동물 하나가 있었어요. 토끼였습니다. 토끼는 청력이 가장 발달한 동물 중 하나래요. 저는 청력을 잃었잖아요. 저 대신 세상의 소리를 많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토끼를 저만의 캐릭터로 선정했어요. ‘베니’라는 이름은 마음에 드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하며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채택했죠.”

베니로 맺어진 싸이월드와의 인연
〈나는 너의 선물이야〉, 530x409cm

“베니를 만든 이후부터 블로그에 베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러스트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이웃들도 늘어나고 예전에 할 수 없었던 진정한 소통을 즐겼죠. 그러다 제 블로그 이웃 중 한 명이 제안을 했어요. 당시 유행하던 미니홈피 사이트인 싸이월드에 베니 일러스트를 이용한 스킨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저는 흔쾌히 승낙했죠. 우선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통해서요. 그리고 제 청각장애가 문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좋았죠. 그냥 제 그림을 운영자와 스킨작가들만이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올리기만 하면 됐거든요.”

구경선 작가는 싸이월드 스킨작가로 데뷔를 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처음에는 기대를 많이 했지만 근 1년 동안 기대했던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스킨작가의 평균 월급은 8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였다. 반면 구경선 작가가 받은 월급은 20만원에 불과했다.

1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반복하자 그녀에게도 권태가 찾아왔다. ‘내가 이러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마감이 한 시간 남았을 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 귀찮아〉라는 일러스트 하나를 그려 제출했다. 〈다 귀찮아〉는 모든 게 귀찮았던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베니가 대(大)자로 누워 있는 작품이었다.

“돈도 안 되고 제 스킨이 팔리지도 않아서 그림에 대한 의욕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보니 마감이 한 시간 앞으로 다가왔죠. 어쩌겠어요. 그래도 마감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당시 제 심경을 그대로 담은 〈다 귀찮아〉라는 일러스트를 그렸죠. 정말 귀찮아서 대충 그린 거였어요.”

〈산토리니〉, 375x530cm

이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작품이 대박이 난 것이다. 사람들은 힘든 삶에 지쳐 있는 베니의 모습에 큰 공감을 했다. 〈다 귀찮아〉 이후로 베니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고 구경선 작가의 월급도 10배 가까이 뛰었다.

“〈다 귀찮아〉가 대박을 치면서 제 삶에 안정감이 찾아왔어요. 이제야 빛을 보나 싶었는데 또 다른 사건이 터졌죠. 2011년에 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 여파로 싸이월드 자체가 휘청거리게 됐고 저 또한 휘청거리게 됐어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방황의 늪으로 빠졌죠. SNS 등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푼돈을 받는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허투루 보냈어요. 설상가상으로 4년 전 제 시야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죠.”

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구경선 작가의 희망을 꺾어버렸다. 더 가슴 아팠던 건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 병으로 인해 구경선 작가는 청각은 물론 시각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터키벌룬투어〉, 375x5301cm

그러나 구경선 작가는 더 이상 물러서기 싫었다. 물러설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엄마는 방패였다〉에 잘 표현되어 있다.

“엄마는 청각장애로 인해 내가 맞았을 화살을 대신 맞아주셨어요. 어릴 때는 이 진실을 알지 못했어요.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게 됐죠. 엄마는 나를 위한 방패였구나….”

구경선 작가의 캐릭터, 베니도 구경선 작가에게 힘을 줬다.

“사람들이 저를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베니는 찾을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래도 괜찮은 하루》와 《엄마, 오늘도 사랑해》라는 책을 쓰며 다시 일어섰죠.”

구경선 작가는 틈틈이 남아공, 필리핀, 우간다 등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과 베니를 통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려는 것이다. 이런 그녀가 베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베니야, 지극히 평범한 말일수도 있어. 그런데 꼭 하고 싶은 말이야. 앞으로도 지금처럼 쭉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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