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 고귀한 지위 버리고 대중과 소통하다
1000원 짜리 분리수거용 가방에서 빌렌시아가 빅백으로 재탄생
'신선한 발상의 전환 VS 황당하다, 비싸다' 논란 이어져
이케아는 '진짜 이케아 백 식별법' 광고로 명품 비틀어
지난주 장바구니를 닮은 명품 가방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가 2017년 봄∙여름 남성 컬렉션으로 출시한 ‘캐리 쇼퍼백(Carry Shopper Bag)’이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장바구니 ’프락타(FRAKTA)’를 닮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두 가방은 색상부터 형태, 크기까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발렌시아가 가방은 양가죽(몸체)과 송아지 가죽(손잡이)으로 제작됐고, 이케아 가방은 폴리 프로필렌으로 제작됐다는 점, 그리고 가방의 손잡이에 IKEA 로고가 있느냐 없느냐 정도다.
닮은꼴 디자인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두 제품의 가격이었다. 이케아의 장바구니는 99센트(국내 판매가 1000원)인데 반해 발렌시아가의 가방은 2150달러, 국내에서는 285만5000원에 판매됐다(현재 이 제품은 품절됐다). 1000원짜리 물건이 2000배 이상의 사치품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언론과 네티즌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케아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패러디 광고까지 냈다.
◆ 일상에서 영감 찾는 명품, 고귀한 지위 내려놓고 대중과 소통하다
액세서리는 의류보다 이윤이 높고 종종 브랜드의 성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모터사이클 백으로 잇백(it bag)의 역사를 썼던 발렌시아가는 올봄 초대형 쇼퍼 백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논란이 된 ‘이케아 가방’을 비롯해 큼직한 가방들이 발렌시아가의 남성과 여성 패션쇼를 장식했다.
발렌시아가는 지난 2016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태국 야시장에서 볼 법한 비닐 가방을 닮은 바자 백(Bazar bag)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장바구니었지만, 뱀피, 양가죽 등 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바자 백은 2~300만 원대에 팔려나갔다.
하찮은 장바구니를 값비싼 명품으로 만드는 것. 이는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바잘리아(Demma Gvasalia)가 꾸준히 시도해온 창작 방식이다. 발렌시아가와 베트멍(Vetments)을 이끄는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줄곧 현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존의 제품을 해체하고 비튼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택배 업체 DHL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를 38만 원에 팔았고, 구제 리바이스 청바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한 청바지를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내놨다. 이 제품들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를 끌었다. 혹자는 앤디 워홀의 수프 캔과 비누 상자처럼, 바잘리아 역시 옷을 통해 소비주의의 본성을 논평하고 있다며 그의 작품을 추켜세웠다.
과거 럭셔리 브랜드들은 장인정신과 호사스런 장식을 앞세워 성장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주변의 것에서 영감을 얻어 대중과 소통한다. ‘명품’이라는 고귀한 지위를 스스로 벗어내고,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러한 방식은 다수 소비자의 높은 호응으로 이어진다.
루이비통은 200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세탁 가방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 가방을 내놓았고, 셀린도 2013년 비슷한 패턴을 응용한 판초형 코트를 선보였다. 모스키노는 2016년 세제와 유리 세정제를 활용한 가방과 휴대폰 케이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샤넬은 2013 S/S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색색의 레고 백을 선보여 완판시켰다.
◆ 명품으로 탈바꿈한 일상품 ‘신선한 발상 VS 가격 거품’ 논란
이런 속성에도 불구하고 이케아 장바구니를 닮은 발렌시아가 가방이 논란이 된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가격의 정당성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대부분은 비판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패션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발렌시아가의 이케아 가방에 대한 분노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지만,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건 많은 디자이너가 해왔던 방식”이라며 “발렌시아가의 이케아 백은 1000원보다 비싸지만, 경쟁 브랜드인 샤넬의 보이백보다는 싸다”고 말했다.
엉뚱하고 ‘B급’스러운 디자인이 주는 아이러니함과 재미가 사람들을 열광케 한다는 해석도 있다. 몇십만 원짜리 DHL 티셔츠, 몇백만 원짜리 이케아 장바구니 가방, 어이없지만 자꾸 생각나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케아는 들뜬 반응을 보였다. 발렌시아가가 어떤 공식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케아 관계자는 “발렌시아가의 최신 디자인에 영감을 준 것에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프락타 쇼핑백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이케아의 상징적인 제품이다. 이제 사람들은 적은 노력으로 디자이너 백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케아는 ‘진품 이케아 프락타 백을 식별하는 법’을 알려주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제작한 광고기획사는 패션 브랜드 아크네(Acne)가 운영하는 광고 에이전시다. 럭셔리 브랜드의 황당한 코드를 같은 방식으로 받아친 이 유쾌한 광고는 네티즌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줬다.
어쨋거나 그동안 가구를 나르거나 분리수거 가방으로 이용되던 이케아의 프락타 가방은 이제 1000원짜리 장바구니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됐다. 이 가방엔 앞으로 발렌시아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또한, 발렌시아가 역시 (욕을 좀 먹기는 했지만) 뎀나 바잘리아의 천재성에 이케아라는 대중적 이미지가 얹어져 친근함이 더해질 것이다. 이케아의 프락타와 발렌시가아의 캐리 백,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