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주윤

새벽 두 시만 되면 남자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 오며가며 알게 된 남자, 술김에 전화번호 줬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 심지어는 장성한 아들과 살뜰한 마누라가 있는 남자에게서까지. 면면이 가지각색이지만 "자니?" 하면서 말 붙이는 것만큼은 그들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겠다. 나를 그리워하며 궁싯거리다가 애끓는 마음을 도저히 참지 못해 용기 내어 연락해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슥슥 넘겨 보다가 '심심한데 그냥 한번 찔러나 볼까?' 하는 거겠지, 뭐. 누운 자리에서 손가락만 움직여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나 아닌 다른 여자들에게도 같은 짓거리를 했을 가능성이 짙다고 본다. 그래도 답장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이유는 나 역시 심심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니" 하고 답장을 보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잘 지내? 그냥 너 생각나서…ㅋ…안 잘 꺼면 나올래? 드라이브하로 가자. 너무 늦어서 않돼려나? ㅠㅠ." 남자들은 아무래도 바보가 아닐까 싶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맞춤법을 죄다 틀리는 것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도, 대놓고 싫은 티를 내도 눈치채지 못하고 끈덕지게 추근거리는 것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하긴, 내가 누구를 흉볼 처지는 아니지. 해가 떠 있을 때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가 달이 뜨고 나서야 나를 찾는 남자에게, 나는 도대체 무얼 기대한 것일까. 나야말로 천하제일 바보, 등신, 머저리다.

이제 어지간해서는 "자니?" 하는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무응답으로 일관하니 연락도 점점 잦아든다. 세상 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가오는 남자들을 하나하나 거절하다가 내 곁에 누구도 남아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모두 제 짝을 찾아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낼 때 나는 홀로 외로움을 견디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다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할머니가 되어 차디찬 골방에서 전기장판 하나 덜렁 틀어놓고 골골 앓다가 고독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만나본 적도 없는 미래의 나를 가엾이 여길 게 뭐람. 나는 현재의 내 안위가 더욱 중요하다. 에라, 모르겠다. 귀찮은 놈들은 깡그리 차단, 차단, 차단이다!

새벽이면 '발기탱천'하여 치근거리는 남자들 덕에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가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내가 퍽 청춘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하룻밤을 새우면 이틀을 앓아눕는 삼십대가 되었기에 잠을 깨우는 그들의 연락이 이만저만 성가신 것이 아니다.

바라옵건대 남성 여러분, 심히 적적하여 그러시는 것은 알겠지만 적어도 자정부터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는 연락을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신네도 건강을 위해 숙면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닌데! 나는 그런 음흉한 남자 아닌데! 진짜 좋아해서 연락하는 건데!" 당신이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로맨티시스트라 자부한다면 이런 행동은 더욱 삼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당신의 진심이 흑심으로 비치지 않을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참았다가 낮에 연락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