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반가운 한류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스낵·즉석식품·빙과류와 같은 한국의 식품들에 대한 인기도 뜨겁다. 초코파이·도시락·메로나 등 출시된 지 30년도 더 된 한국의 대표 장수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한국보다 더 잘 팔리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자국 제품보다 더 사랑받는 '국민 과자', '국민 라면'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 귀화에 성공한 한국 식품들을 나라 별로 살펴봤다.
중국 : 오리온 초코파이
세계 60여개 국에서 매년 21억개 이상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매출이 다소 주춤한 듯 하지만 2년 연속 중국 내 브랜드 파워 지수 1위를 차지하며 중국인들의 국민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1997년 중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초코파이는 2년만에 파이·케이크류 매출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20여년간 중국인들의 대표 간식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결혼답례품 등으로 선호될 만큼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 ▶기사 더보기
초코파이가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각 나라의 기후와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 북부 허베이성 제1공장에선 현지의 밀가루를 혼합해 제품 생산에 적합한 반죽을 만들고, 남부 상하이 제2공장에서는 높은 온도에 견디면서도 입에서는 잘 녹도록 초콜릿을 배합하는 노하우를 오랜 연구 끝에 발견해 적용하고 있다.
또한 오리온 초코파이가 한국에서 '정(情)'을 내세우며 감성 마케팅을 벌인 것처럼, 중국에서는 중국인들의 정서를 파고드는 전략을 폈다. 중국 초코파이의 이름은 ''좋은 친구 파이'라는 뜻의 '하오리여우 파이(好麗友派)'. 그리고 당시 한국 시장에서 파란색이었던 포장지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2008년부터는 '어질 인(仁)' 자를 새겨넣었다. 인간관계와 도덕규범에서 '어질 인(仁)'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중국인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다. ▶기사 더보기
[사드 보복에도 입맛은 못 바꾼다…1분기 라면·인삼 中 수출 100% 증가]
러시아 : 팔도 도시락
러시아에서 '도시락'은 '국민 라면'으로 통한다. 1991년 부산을 찾은 러시아 선원들이 '도시락'을 맛보면서 소문을 탄 것이 시작. 1997년 팔도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무소를 개설하며 대(對)러시아 수출을 본격화했다. 2013년 기준 도시락의 러시아 매출은 1천900억원으로 국내 판매액의 38배이다. 현재 러시아 용기 라면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팔도 '도시락'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자들의 필수품이다. 러시아 극동에 위치해 세상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 알려진 '야쿠츠크'에서도 만날 수 있다. 팔도 관계자가 "역으로 몰려드는 상인들의 바구니에는 언제나 '도시락'이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팔도는 러시아인의 입맛에 맞춰 '도시락' 현지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러시아 소비자들은 '도시락'에 마요네즈를 넣어 먹는 식습관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마요네즈 소스가 함께 들어 있는 '도시락 플러스'를 출시했다. 국내에는 없는 치킨·버섯·새우맛 제품도 선보였다. 또 모든 '도시락'에 포크를 넣어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 : 롯데 밀키스·레쓰비
세계 최대 커피 업체인 네슬레가 사업을 철수하고 최대의 음료업체인 코카콜라도 공장 수를 축소했던 러시아에서 승승장구하는 국산 제품이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탄산음료 '밀키스'와 캔 커피 '레쓰비'다. 이들 제품은 각각 러시아 탄산음료와 캔커피시장에서 90%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밀키스는 러시아에서 2014년 한해동안 1320만달러(약 147억원) 어치가 팔렸다. 레쓰비도 2010년 이후 러시아의 ‘국민 캔 커피’로 자리잡았다.
밀키스와 레쓰비는 다양한 맛으로 러시아 시장을 선도한다. 밀키스는 러시아 시장에서 총 11가지 맛이 팔린다. 파인애플·복숭아·오렌지·망고 등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맛이 수두룩하다. 레쓰비 역시 모카·초코라떼·에스프레소·아라비카·아메리카노 등 9종류가 유통된다.
성기승 롯데칠성음료 팀장은 "초기에는 제품군이 7개를 넘어서자 생산성이 떨어지고 판매 관리가 어렵다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며 "하지만 러시아 바이어들이 '지역별로 선호하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이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성공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브라질 : 빙그레 메로나
빙그레의 '메로나'는 브라질에서 인기가 높다. 이는 JTBC '비정상회담'에서 브라질 대표 패널인 카를로스가 "한국 아이스크림이 엄청 인기다. 멜론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인 메로나가 국민 아이스크림"이라는 말로도 입증됐다. 브라질에서 '메로나'는 한끼 식사비(한화 약 2500원)일 정도로 고가이지만 2008년부터 브라질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래 2012년만 50억원어치 팔렸다. 브라질에서 메로나를 팔지 않는 가게는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곳,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매장으로 인식되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로 나올 정도이다. 브라질 국영TV EBC에서는 "일본 스시에 이어 메로나가 브라질의 디저트 및 기호식품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고 다룬 적 있다.
남미에서는 맛보지 못한 부드러운 과일 맛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빙그레 관계자는 "남미 아이스크림 시장은 초콜릿 제품 위주여서 과일맛 나는 부드러운 느낌의 메로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브라질에서는 과일맛 아이스크림 대부분이 과일 주스를 얼린 형태여서 우유와 과일향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메로나가 이색적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상파울루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마케팅을 강화해온 빙그레는 2014년 월드컵 기간과 2016년 올림픽 기간 적극적인 홍보와 프로모션으로 브라질 내 메로나 인기를 끌어올리는 마케팅을 벌였다. 또한 메론맛 외에 복숭아맛, 망고맛, 딸기맛, 바나나맛 등을 선보여 브라질인들이 부드러운 과일맛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맛을 세분화했다. 맛이 달라지더라도 상품명은 메로나로 통일했다. ▶기사 더보기
중동 : 롯데 스파우트껌
씹는 순간 과일 시럽이 터져나오는 껌을 기억하는가. 90년대까지 한국에서 시판되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스파우트껌'이 중동에서는 '국민 껌'이다. 77년 첫 진출한 블록 모양의 시럽이 든 롯데 스파우트껌은 껌이 낯설었던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3개국에 껌 문화를 알려주며 40여년 가까이 중동 껌시장 1위를 차지하는 스테디셀러 제품이다. 이곳 스파우트껌 점유율은 70% 이상이다.
사막 기후로 입이 건조한 중동 사람들의 취향을 겨냥해 달콤한 껌 문화를 전파했다는 것이 롯데제과 관계자의 설명이다. 77년 출시 당시만 해도 중동인들이 좋아하는 민트향 3종(시나몬, 스피아민트, 페퍼민트)만을 선보였으나 90년대 중반 과일맛 3종이 추가했다. 시나몬 향은 한국 출시 때는 없던 맛이었으나 중동인들이 좋아하는 향이라는 점을 반영했다. 6가지 맛 중 가장 인기가 많다.
미국 : 비비고 만두
CJ 제일제당은 지난해 미국 만두시장에서 '비비고 만두'로 시장점유율 11.3%,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물만두 형태의 비비고 만두는 특히 서부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스, 홀푸드마켓 등 프리미엄 유통채널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으며 이런 실적을 발판 삼아 CJ는 시장점유율을 차츰 높이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비비고 만두'가 미국 시장 1위를 차지하며 성장세를 보이는데는 면밀한 현지화 전략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중국식 만두가 아닌 교자 만두를 소개하기 위해 만두피가 얇고 채소가 많은 만두소를 강조하며 비비고 만주를 '웰빙' '건강식'으로 마케팅했다. 또한 한입 크기의 편의성을 높여 여러 요리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돼지고기 대신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닭고기를 넣었으며 미국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고수와 같은 향이 강한 채소를 적극 활용했다.
중앙 아시아 : 프리마
한국에서 프림의 인기는 시들하지만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동서식품의 프리마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식품이다. 이 지역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빵·차·일반 요리에까지 골고루 쓰이며 '국민푸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프림 시장의 71%, 타지키스탄 77%, 우즈베키스탄 56%, 키르기스스탄 54% 등 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동서식품 프리마의 매출도 이 지역에 처음 진출한 1995년 110만달러에서 2014년 5천300만달러에 이르며 19년 만에 48배 성장했다.
전통적으로 유목민이면서 추운 지방에 살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은 차 문화와 가축의 젖을 짜마시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에 프리마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다. 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던 이 지역에서는 현재 우유의 자리를 프림이 대신하고 있다. 또한 타지키스탄은 빵을 만들거나 홍차를 마실 때 프림을 넣는다.
동서식품은 커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 프리마를 적용하는 현지 식습관에 착안, 이를 마케팅과 제품개발에 적극 활용했다. 타지키스탄에서 방송된 광고에는 프리마를 넣어 반죽한 빵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도 나온다. 제빵과 여러 음식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제품의 구성과 형태를 새로 개발해 내놓았다. 우유 대신 빵에 넣어 먹는 프리마인 '하이 밀키(대용 분유)' 제품은 일반 소비자 대상을 타기도 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