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맛을 찾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제주. 제주도의 맛 하면 흑돼지와 갈치, 재첩, 전복, 옥돔 등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봄을 대표하는 식재료는 따로 있다. 유채, 더덕, 멜(꽃멸치), 청보리, 금귤이 바로 그것이다.
멸치가 제주의 특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서귀포 해안에 물이 빠지면 미처 나가지 못한 멜 무리가 현무암 사이 웅덩이에 떼를 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멜은 타우린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고 철분 등 무기질이 많아 성인병 예방 및 항암에 효과가 있다. 또 칼슘이 풍부해 성장기 아이의 두뇌 발달과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고 한다.
멜은 크기에 따라 대멸, 중멸, 소멸, 자멸의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서귀포의 멜은 일반적으로 크기가 커서 국이나 조림에 많이 사용된다.
멜국은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어 물을 부어 끓이다 배추를 뜯어 넣고 다시 살짝 끓인다. 한소끔 끓은 멜국에 고추와 마늘, 대파, 국간장을 넣고 취향에 따라 소금 간을 해서 먹으면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멜조림은 간장, 물, 식용유, 참기름, 물엿,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에 풋고추와 마늘, 양파, 파 등을 넣어 자글자글 조린 뒤 먹는데 입맛을 돋우기에 더없이 좋다. 바로 잡은 싱싱한 멜이라면 통째로 튀겨 먹어도 별미다.
제주도에 가면 흔하디흔한 과일이 금귤이었지만 가격 폭락으로 재배가 줄어 요즘은 귀한 과일이 되었다. 3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인데, 껍질째 먹는 것 외에도 설탕에 절여 청으로 만들어 먹거나 설탕을 넣고 끓여 정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금귤과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섞어 만드는 청은 따듯한 물에 타서 먹어도 좋지만, 탄산음료나 찬물에 타 먹으면 새콤하고 향긋해 맛이 그만이다. 이렇게 청으로 담근 금귤은 1년 이상 숙성시켜 효소로 즐기기도 한다. 금귤청에 비해 향이 깊고 단맛은 덜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제주토박이이자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제주 다이닝 레스토랑 하노루의 하진옥 책임 셰프는 간 금귤로 소를 만들어 향긋하고 아삭한 백김치를 담그면 별미라고 얘기한다.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저염으로 담그면 샐러드처럼 즐기기에도 좋다.
4월이 되면 제주 가파도에선 청보리 축제가 열린다. 특히 가파도 청보리 품종인 ‘향맥’은 다른 지역 보리보다 2배 이상 자라는 제주의 향토 품종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높고 푸르게 자라나 해마다 봄이 되면 18만여 평의 청보리밭 위로 푸른 물결이 굽이치는 장관을 이룬다. 논농사가 잘 안되는 제주도에서 청보리는 서민들에게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었다. 식이섬유소가 쌀에 비해 약 다섯 배나 높아 지금은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 식재료로 인기가 높다.
백미에 비해 수분 흡수가 더딘 청보리는 이탈리아 요리인 ‘리소토’를 만들기에도 적합하다. 또한 톡톡 씹히는 식감이 뛰어나 각종 봄나물과 채소를 넣어 비빔밥으로 즐겨도 별미다. 이 밖에도 청보리에 찹쌀 약간과 톳을 넣어 지은 톳밥에 양념간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봄철 잃었던 입맛을 되살리기에 좋다.
3월엔 아직 찬바람이 불지만 유채는 새순을 돋우기 시작한다. 유채의 잎은 봄동과 함께 입맛을 살려주는 대표적인 봄나물로, 추운 노지에서도 잘 자라며 생명력이 강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친환경으로 재배된다. 제주도에서는 1960년대부터 유채를 경제작물로 키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나물로 먹기보단 주로 기름을 내기 위해 재배됐는데, 이후 값싼 콩기름과 옥수수유가 나오면서 주로 나물로 먹게 되었다.
유채에는 칼슘, 인, 비타민 등의 무기질이 많고 특히 꽃대에 영양소가 많아 염증을 치료하거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약간 억세고 향이 강한 잎과 꽃줄기는 살짝 데쳐서 참기름이나 된장에 무쳐 먹는다. 제주에서는 배추와 무가 귀할 때 유채를 겉절이나 물김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약간 매우면서 시원한 맛이 나는 유채꽃은 항암효과가 뛰어나고 비타민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으며, 생식으로 즐기거나 튀겨 먹어도 맛있다.
주로 해안가에 모여 살았던 제주인들이 더덕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강원도와 함께 주요 더덕 산지로 제주도를 꼽고 있다. 더덕은 제주도 내에서도 주로 서귀포 지역 한라산 중산간지대와 표선과 성산, 구좌 등지의 감귤 폐원지에서 재배된다. 서귀포는 겨울철에도 날씨가 따듯해 더덕의 육질이 연하고 맛이 달다. 또한 씨앗을 뿌린 뒤 2년만 지나면 캘 수 있어 다른 지역보다 1년가량 수확 시기가 빠르다.
서귀포의 적절한 기후와 토양에서 자라난 더덕은 더덕정과, 더덕김치, 더덕물김치, 더덕주 등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더덕은 돼지고기와 맛은 물론 영양상으로도 궁합이 잘 맞는다. 고추장 양념에 제주의 흑돼지와 더덕을 버무려 숯불에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혹은 된장에 더덕을 박아 장아찌로 먹어도 별미다.
제주의 맛을 그리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제주의 식재료로 맛을 그려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하진옥 셰프가 제안하는 다섯 가지 제주의 봄 맛을 소개한다.
제주의 토속 음식은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요. 양념 역시 과하지 않고요.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싱싱한 생선이 지천일뿐더러 들이 넓고 기온은 따뜻해 사시사철 채소를 풍부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료 자체가 싱싱하고 맛이 좋기에 양념을 과하지 않게 하고 재료의 맛과 향을 극대화한 음식이 많습니다. 양념도 고춧가루나 고추장보다는 된장을 많이 사용합니다. 육지에서는 된장을 가지고 국을 끓이거나 음식의 양념으로 사용하지만, 숙성 기간이 짧은 제주의 된장은 날된장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조리된 음식으로서 대접받곤 합니다.
여름에 즐겨 먹는 냉국 역시 된장을 이용해서 만들지요. 예부터 나물은 물론 삶은 배추, 물외(제주 토종 오이), 미역이나 톳에 된장 양념을 해서 냉수를 부어 냉국으로 즐기곤 했어요. 제주 음식의 특징 중 하나는 국이 많다는 것이에요.
모든 식사에 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 재료는 생선인 경우가 많아요. 저희 할머니 시절만 해도 대부분의 제주 남자들이 고기잡이배를 타고 멀리 떠나 집에는 여성들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죠. 때문에 들일 역시 여성의 몫이었어요. 여성들은 들일도 하고 집안일도 해야 했기에 생선을 빠르게 조리하기 위해 국으로 끓여 먹곤 했습니다.
다행히 생선이 싱싱했기 때문에 그 맛도 좋았고요. 지금도 갈칫국이나 멜국 등은 별다른 양념 없이 생선과 채소를 넣은 뒤 소금이나 된장으로 간을 하고 다진 마늘과 고추를 썰어 넣어 끓여 먹습니다. 싱싱한 생선의 담백한 감칠맛과 향신채의 칼칼한 맛이 어우러져 관광객들 역시 좋아하는 메뉴지요.
20여 년간 제주에서 셰프로 일하면서 제주의 맛만 고집하지 않고 제주의 전통 맛을 기반으로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제주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주 전통 레시피를 현대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저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제주 특산품을 이용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는 중입니다. 대표적인 메뉴로 금귤백김치를 꼽을 수 있어요.
제주 특산품 중 하나인 금귤을 갈아 백김치의 소로 만들었는데, 향긋하면서도 담백한 맛에 외국인들도 무척 좋아하더군요. 앞으로 금귤백김치와 같이 제주 특산품을 이용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한국인의 입맛은 물론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싶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평화롭고 여유롭게 제주 미식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5월 31일까지 진행되는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의 ‘하노루에 봄이 찾아오면’ 프로모션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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