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 특파원

일본 도쿄 도시마구(豊島区) 스가모(巢鴨) 거리는 '노인들의 하라주쿠(原宿·도쿄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통한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도쿄의 패션 1번지 하라주쿠만큼 노인들이 많이 몰린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지난 4일 이 거리를 찾은 나카무라 사라사(여·80)씨는 바퀴가 달린 보행 보조 기구 없이는 거동하기 힘든데도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쇼핑하는 2시간 내내 한 번도 도로에서 턱을 만나지 않았다. 나카무라씨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에 큼지막하게 빨간색 글자로 표시된 가격표가 붙은 가방 하나를 산 뒤 도로 양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10분쯤 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카무라씨는 "이 거리는 도로 턱과 작은 글씨, 영어 이 세 가지가 없다"며 "다 내 기준에 맞는다"고 했다.

노인용 옷과 건강식품 등을 파는 상점 200여 개가 800m가량 늘어선 스가모 거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노인 거리'이다.

이 거리는 1891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사찰 '고간지(高岩寺)'에 참배하려는 노인들이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사찰 마당에 있는 향불 연기를 아픈 부위에 쐬면 통증이 사라진다는 소문에 노인들이 많이 찾았다. 최근에는 절보다 노인들을 배려한 시설과 쇼핑 환경 덕분에 노인들의 '쇼핑 천국'이 됐다. 매년 900만명 정도 이 거리를 찾는다고 한다.

4일 도쿄 도시마구(豊島区) 스가모(巢鴨) 거리를 찾은 노인들이 걷고 있다. 이 거리는 차도와 인도 사이에 턱이 없어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스가모 거리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도 넘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폭 4m의 차도(車道) 좌우로 보도블록이 깔린 폭 1.5m 인도(人道)가 있지만 그 사이에는 턱이 없다. 바닥에 그려진 흰색 선이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 보조 기구를 밀고 다니는 노인들이 길을 건널 때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도시마구청은 지난 2014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도로 턱 없애기' 공사를 벌였다. 도시마구청 관계자는 "인도보다 낮은 차도에 아스팔트를 더 깔아 높이를 맞췄다"며 "공사를 마치지 못한 곳에는 초록색 고무판을 깔아 경사를 완화한 뒤 '지면이 고르지 못함(段差あり)'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웠다"고 했다. 가로수·가로등과 맨홀 주변 바닥 등에는 눈에 잘 띄는 두께 10㎝ 초록색 테이프를 둘러놓았다.

이 거리에서는 '작은 글씨'와 '영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 상인들이 상품 이름과 가격표, 광고판의 글자 크기를 2배 정도 키운 것이다.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다보 마사코(여·66)씨는 "손님 80~90%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가게 안으로 굳이 들어오지 않아도 상품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상품 배열도 노인 맞춤형으로 한다"고 했다. 상인 중 상당수도 노인들이다. 다보씨는 "나도 노인이라 손님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고, 서로 편하게 얘기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스가모 거리 상점들은 시력이 낮은 노인 고객들을 위해 가격표를 일반 상점들보다 1.5~2배 크게 써붙인다.

노인들을 배려한 이런 쇼핑 환경은 스가모상인연합회와 도시마구청이 함께 노력해 만들었다. 상인들은 "도로와 상점 앞에 의자를 놓을 수 있게 해달라" "일정 시간 차량 통행을 막아달라"는 등의 민원을 제기했고, 구청은 이를 받아들여 도로 개조 공사를 했다. 스가모 거리 곳곳에 노인들이 쉴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됐고, 평일 3시간과 공휴일 6시간은 보행자 전용 거리로 변신한다.

스가모 거리로 통하는 관문인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스가모역도 노인들을 위한 환경 개선에 동참했다. 노인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이동 속도를 분당 30m에서 20m로 조정했다. 역 내부에 비치된 노선 안내도와 역 주변 지도도 다른 역보다 1.5배 정도 크다. 이만형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난 1994년 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한 일본은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놓을 때 노인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구조나 디자인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