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때문이다. 술에 붙는 세금인 주류세(酒類稅) 때문에 미국에서 2~5달러(약 2200~5500원)에 파는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IPA)이 한반도에선 1만원을 호가하게 되는 거다.

#세금이 얼마나 되기에
주류세는 맥주 기준 72%다. 게다가 수입 맥주엔 기본적으로 관세가 매겨진다. 관세 묻은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붙으니, 외국보다 훌쩍 비싸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주세액의 30%가 교육세(敎育稅)로 따라붙는다. 자동차나 골프장 등 나라에서 사치품 혹은 유흥 관련 상품으로 규정한 품목에는 대개 교육세를 매기는데, 술도 적용 대상이다. 교육세는 대개 주세액의 10%지만, 맥주처럼 주세율이 70%를 넘기면 30%로 확 불어난다. 이 주세액과 교육세를 더한 액수를 기준으로 세금이 하나 더 부과된다. 부가가치세 10%다.

즉, 맥주 500㎖ 원가가 100원이라 하면 세금이 72원(주세)+21.6원(교육세)+19.36원(부가가치세)=총 112.96원 붙는 셈이다.

그나마 이것도 많이 내려간 거다. 1997년까지 맥주 주세는 150%였다. 20세기 끝자락에 이르도록 한반도엔 맥주는 부자들이 먹는 고급 술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던 탓이다. 과거 군대 내에서 암암리에 구전(口傳)돼 불리던 일명 '김일병송'에서도 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군인 사이에서 전해지는 '김일병송'의 일부.

참고로 미국 맥주에 붙는 세금은 2015년 기준 100ℓ당 15.3달러(약 1만7100원)다. 500㎖ 한 잔에 85~86원 정도인 셈이다.

#답답하면 직접 만들던지
그러면 술집에서 직접 IPA를 담가 팔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유통마진도 줄이고 관세도 털어버리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세금 때문이다. 주류세는 상품 가격에 비례해 세금이 매겨지는 종가세(從價稅)다. 즉, 원가가 높아지면 세금도 따라 뛸 수밖에 없다.

그런데 IPA엔 원가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원료인 '홉'(Hop)이 대량으로 들어간다. 한 주류기업 관계자는 "IPA는 애초에 유래가 19세기 영국에서 인도로 술을 보낼 때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도록 방부 목적으로 홉을 잔뜩 넣은 술인 만큼 홉이 보통 맥주보다 4배 이상 들어간다"며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 중 가장 비싼 게 홉이니, IPA가 다른 맥주보다 원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고 주류세도 따라 뛰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맥주 전문 교육기관인 브루웍스 아카데미 관계자는 "그나마 홉을 대량구매하면 값이 좀 내려가는데 소규모 양조에서는 그마저도 어려우니 IPA 가격이 더욱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의 주류세 자체가 소규모 양조에 불리하게 돼 있다. 현행 주세법상 모든 맥주는 1ℓ를 생산하든 100ℓ를 생산하든 세율이 같다. 이 때문에 '규모의 경제'로 생산비를 줄인 업체일수록 원가가 떨어지며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개별 술집에서 소량 생산하는 게 되려 세금 부담이 큰 것이다.

실제로 홍종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2015년 9월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맥주기업 규모별 면허수 현황'을 보면, 하우스 맥주 업체는 2005년 112곳에서 2014년 49곳으로 10년간 반 넘게 문을 닫았다. 서울은 2010년엔 17개 업체가 907㎘를 생산했지만 2014년엔 11개 업체, 399㎘로 줄었다. 부산도 같은 기간 9개 업체에서 6개 업체, 482㎘에서 270㎘ 생산으로 규모가 축소됐다. 하우스 맥주 업체들이 대기업 자본에 밀려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350㎖ 기준으로 한 대기업 생산 맥주의 세금(주세+교육세+부가세)은 449원, 한 대기업 수입 맥주의 세금(관세 포함)은 334원이었다. 반면 한 하우스 맥주는 세금이 1097원에 달했다. 하우스 맥주가 대기업보다 세금 부담을 2~3배 진 것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있나
생산 규모별로 세금을 달리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선 맥주 100ℓ당 세금이 15.3달러지만, 생산량 7041kℓ 이하에서는 5.96달러(약 6666원)로 3분의 1 가까이 줄어든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부산 하우스 맥주를 몽땅 더해도 한참 못 미칠 수치니 적용엔 무리가 없겠다. 물론 담배의 경우처럼 국민 건강을 위해 높은 세율을 유지한다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사실 높은 주세로 인한 절주 효과도 의심스럽다. 주세 부담 때문에 원가를 줄이려 맥주에 물을 타는 생산 방식이 한국에 보편화됐고, 그 결국 맥주 맛이 밍밍해졌지만 소비가 줄기는커녕 되려 여기에 소주를 부어 먹는 '소맥'이 음주문화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소맥이 IPA를 비롯한 수제 맥주보다 건강에 좋을 것 같진 않다.

게다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높은 주세 때문에 맥주업계가 대량생산을 무기로 한 대기업 판이 돼버렸으니, 정부가 좋아하는 '작은 기업 살리기' 차원에서도 주류세 감면을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높은 주류세를 매겼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 맥주는 부자의 사치품이 아니라 서민의 기호품이 됐으니 그에 걸맞게 대우해 주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한국 맥주를 마시는 슈틸리케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