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에게 여행은 풍경의 내력을 읽고 음미하는 행위다. 낯선 곳에서 느낀 강렬한 오감은 기록으로 되살아난다. 이 감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여행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다.

여행작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맨날 떠날 궁리만 하는 사람이지 뭐’라는 싱거운 답변만 돌아온다. 여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한정 짓기에는 취미로 활동하는 여행 블로거도 있어 애매하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여행과 관련한 글과 사진으로 창작활동을 하거나 수익을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겠다. 보통 여행 책을 한 권 이상 내면 ‘작가’로 인식한다. 여행 잡지에 기고하거나 언론사에 소속돼 여행 분야의 글을 쓰는 이들도 포함된다.

여행작가들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에세이스트, 정보작가, 전문 기자다. 에세이스트가 철학적 사유에서 여행을 다룬다면, 정보작가와 전문 기자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사실적 판단으로 여행지를 소개한다. 정보작가는 여행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나열하는 반면, 기자는 테마를 가지고 편집된 정보를 전달한다. 또 하나의 분류로 여행사진가가 있다. 글보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소개한다.

작가가 되면 여행 관련 책을 출간하거나 잡지 기고, 여행 사진전, 블로그 운영 등의 형태로 활동할 수 있다. 책이나 잡지 기고를 할 때는 소속된 매체나 관광청, 항공사, 여행사 등을 통해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여행 블로거는 자비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면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 관련 협회에서 진행하는 여행작가 양성 과정이 도움이 된다. 동국대 평생교육원이나 한겨레 문화센터, 한국여행작가협회 등에서 분기별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교육 기간은 10주에서 15주 과정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각 분야 작가들의 생생한 체험담과 관련 전문 지식, 정보를 제공한다. 비용은 30만원에서 50만원 선이다. 현직 여행작가가 직접 개설한 강의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가가 되면 에세이집이나 가이드북을 쓰거나 여행 분야 잡지, 신문, 기업의 사외보에 기고하며 입지를 다져나갈 수 있다. 국내의 여행 관련 매체로는 《에이비로드》, 《뚜르드몽드》, 《트래비》, 《세계여행신문》, 《여행정보신문》 등이 있다.

대부분의 여행작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여행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가지고 이쪽 일을 시작한다면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반인의 눈에는 파리 에펠탑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여행가가 보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여행지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발품을 팔고 밤새 사전 조사를 한 노고가 깔려 있다. 매일이 시간과의 싸움이고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항상 긴장해야 한다.

노력은 물론, 인내심과 끈기는 필수다. 정기적인 수입을 확보하기 힘든 점도 작가의 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경력이 쌓이고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중무장한다면 여행작가로 반은 성공한 셈이다.

우지경 여행작가는 “자신만의 테마를 갖춘 여행작가가 되라”고 충고한다. 관광에도 트렌드가 있다. 어디로 떠났느냐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즐겼느냐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여행지와 경험을 세상에 소개하는 것도 여행작가의 매력이다.

우지경 여행작가

우지경 작가는 지금까지 직업을 세 번 바꿨다. 네이미스트로 3년, 기업과 브랜드의 홍보직원으로 6년을 지냈다. 서른 초반 ‘한 번뿐인 인생, 새롭게 도전하자’는 패기로 직장을 관두고 전업작가가 되었다. 올해 한국 나이로 마흔. 그는 이제 세계가 직장이고 여행이 업인 여행작가로 자신만의 인생 지도를 그리고 있다.

느긋하게 즐기는 느린 여행의 매력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국문학과에 지원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다.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 숙명여대 독문과다. 대학 캠퍼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부산에서 상경했는데 여대는 로맨스도 없고 지루하기만 했다. 남녀공학 대학에 가고 싶어 재수를 결심하니 부모님이 배낭여행을 권했다. 스무 살, 인생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에 나섰다. 당시 유행했던 게 외국인과 섞여 여행하며 영어도 배울 수 있는 ‘Contiki 국제조인트배낭여행’이다.

25일 동안의 유럽 여행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빡빡한 일정에 맞춰 시내를 돌고 박물관을 관람하는 ‘한국식 여행’ 대신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즐겼다. 심지어 어떤 날은 날씨가 좋다며 하루 일정을 피크닉으로 잡았다. 외국 친구들과 피크닉 가방에 바게트, 과일, 음료수 등을 들고 나가 시간을 보냈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라벤더가 만발한 들판에서 즐긴 그날의 여유가 여행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놨다.

두 번째 여행은 뜻밖의 장소에서 시작됐다.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현지 연수 기회가 닿아 그 이듬해 독일로 떠났다. 현지 가정집에서 하숙하며 스위스와 터키에서 유학 온 친구를 사귀었는데, 첫 주말 그들과 쾰른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쾰른 하면 고딕양식의 크고 웅장한 대성당이 유명하다. 많은 이들이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가서 구경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달랐다. 스위스에서 온 베로니카가 “성당이 너무 예쁘지 않니? 우리 성당이 잘 보이는 강변에 앉아서 커피 마시자”라고 제안했다. 그는 “휴가차 온 여행”이라며 “라인 강이 흐르는 곳에서 성당을 바라볼 수 있고, 자기를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제야 성당이 제대로 보였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내부를 보고 싶은 사람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취향대로 즐겼다. 여러 유명 여행지를 점 찍듯 다녀오는 게 아니라 하나를 봐도 느긋하게 즐기는 여행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해외에 사는 친척 집을 방문할 때마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돌아다녔다. 사촌들과 자동차를 타고 가는 로드 트립(장거리 자동차 여행)도 해보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장운(?)’도 따라주는 편이어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겁 없던 시절의 여행 경험은 지금의 밑거름이 됐다.

‘꿈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우지경 작가는 4월 여행지로 스페인을 추천했다. 오렌지 나무에 핀 꽃 향기가 봄의 정점을 찍는다.

여행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기업 홍보실에서 일할 때였다. 아침마다 신문 스크랩을 하며 여행 지면을 흥미롭게 있게 살펴보았다. 당시 업무는 회사 홍보를 위한 보도 자료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여행작가 양성 강좌에 등록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회사 일로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수강생들끼리 책을 쓰자고 할 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고사했다. 2년 후 어느 날 서점에 가보니 강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쓴 책이 실제로 나와 있었다. ‘꿈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절감했다. 동국대 평생교육원의 여행작가 양성 과정에 등록했다. 서른 살 초반. 직장을 관두고 전업 여행작가가 됐다.

전업으로 뛴다고 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15명의 동기와 국내 여행 책자를 펴낸 것을 계기로 저가항공 기내지나 신문에 기고를 시작했다. 일은 종종 들어왔지만 고정적이지 않았다. 7~8개월이 지나서도 전업 작가라고 하기엔 일의 양이 너무 적었다.

여행작가로 1년 안에 성과를 내면 이 길을 가고, 아니면 직장으로 돌아갈 마음이었다. 그 즈음 《타이완 홀리데이》라는 해외 가이드북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혼자 힘으론 부족해 여행작가 수업을 함께 받았던 동기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퇴사 11개월 만에 여행 가이드북 계약이 성사됐다.

책은 인세가 전부다. 여행경비 지원과 관련해 출판사의 도움은 전혀 없다. 홍보 업무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관광청의 협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만 가이드북이 많지 않아 협조 받기가 쉬웠다. 책 제작을 위해 대만에 여러 번 갔는데 그중 한 달치 항공과 숙박비를 지원 받았다. 작가에게 비용 절감은 굉장히 중요하다.

책을 쓰면서 ‘직접 먹어본 것, 해본 것 아니면 절대 쓰지 말자’라는 원칙을 세웠다. 홍보지처럼 뻔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처음이라 열정이 폭발할 때였다. 마사지 숍까지 찾아가 서비스를 체험했다. 직접 검증을 하면서 독자에게 어떤 디테일을 알려줄까 고민했다.

대만 가이드북은 처음에 3쇄를 찍고 지난해 5월 개정판을 내며 총 5쇄를 찍었다. 대박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다. 책을 내면 출판사로부터 인세의 10%를 받는다. 이제까지 낸 가이드북은 공저라서 반반, 5%를 받았다. 대만을 시작으로 괌, 홍콩,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가이드북을 썼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가 이제야 안정을 찾은 것 같다. 책보다는 잡지나 신문에 기고하면서 모은 돈이 크다. 기고를 많이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자기만의 특화된 콘텐츠를 확보하라

포트와인의 산지 포르투갈. 우지경 작가는 지금까지 15개 국가를 다녀왔다. 도시로 따지면 많아서 셀 수가 없다고 한다.

여행작가는 자기만의 특화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 분야에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여행 전문 기자가 좋은 예다. ‘우지경의 쉘 위 드링크’라는 칼럼을 신문에 1년 동안 연재했다. 차나 커피, 맥주 등 여행하며 마신 술과 음료에 대한 글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한 잔의 술과 함께 음미할 때 여운이 오래간다 믿었다. 그런 내용을 칼럼에 담았다. 달달한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포트와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현지인의 초대를 받아 식사와 함께 포트와인을 맛볼 기회가 생겼다.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포트와인은 너희에게 어떤 의미야?”

그들이 답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주방에는 항상 세 가지가 있어. 빵과 소금에 절인 대구인 바칼랴우, 그리고 포트와인. 빵과 바칼랴우가 가족을 위한 거라면 포트와인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거지.” 그 말을 듣고 귀한 손님이 된 기분으로 마지막 한 모금까지 달게 마셨다.

이처럼 나만 아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글에 담고 싶다. 이를 위해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맥주 학교나 막걸리 학교를 다니며 시음하고 양조도 직접 해봤다. 맛에 대해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들을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맥주 학교를 다니고서 첫 출장이 체코 맥주 투어였다. 행운도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다. 이후로 여행지를 다닐 때마다 양조장은 꼭 들른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료 조사는 필수이자 생명이다.

한 번뿐인 인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여행작가가 갖춰야 할 덕목과 능력은 무엇일까. 글쓰기 실력과 사진 촬영 능력은 기본이고 기획력과 취재력, 끈기가 필요하다. 비슷한 사진과 글은 작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노력과 훈련으로 감각을 길러야 한다. 기획력이 요구되는 이유는 똑같은 도시라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작성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부터 유명해지는 사람은 없다. 프리랜서로 전향했다가 일이 들어오지 않아 생계 문제로 작가의 길을 접는 이들이 많다. 여행작가를 시작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10만원짜리 원고가 들어와도 100만원짜리 원고를 써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야 다른 의뢰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단지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면 이 직업은 적합하지 않아요.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여행작가는 도전할 만한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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