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중인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주(州) 칸셰이쿤 마을에서 4일(현지 시각) 시리아 정부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전투기의 화학무기 미사일 공격으로 어린이 30여 명 등 주민 100여 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다쳤다고 아랍계 방송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2013년 시리아 중부 마을 구타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사린 가스 살포로 280여 명이 사망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최악의 화학무기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일 오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실태 파악에 착수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전투기들은 이날 오전 7~8시 네 차례에 걸쳐 칸셰이쿤 마을 주거지를 공습했다. 목격자들은 "미사일이 떨어진 곳에서 뿌연 가스가 퍼져 나왔다"며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은 호흡 곤란을 호소하면서 쓰려졌다"고 했다. 14세 소녀 마리암 아부 칼릴은 "비행기가 폭탄을 떨어뜨렸고 잠시 뒤 노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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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셰이쿤병원의 의료진과 세계보건기구는 "증상을 볼 때 독성이 강한 염소 가스나 사린 가스 같은 신경작용제로 추정된다"고 했다. 현지 촬영 영상을 보면 부상자들은 의사가 눈동자에 불빛을 비춰도 반응을 거의 하지 않고 온몸을 심하게 떨거나 뒤틀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심하게 기침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신경계 마비 물질인 사린 가스는 독성이 청산 가스보다 500배 정도 높다. 흡입이나 피부 접촉을 통해 몸에 흡수되면 수분 내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와 여성이 많았다. 이른 아침에 살포돼 남성들이 일터로 나가고 집에 남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희생된 것이다. 구호 단체 '하얀 헬멧'의 한 구조 대원은 트위터에 "기저귀를 찬 아기까지 여럿 희생됐다"며 "녹슨 트럭 뒤칸에 흐릿한 눈빛으로 죽어간 어린아이들 시신을 싣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독가스로부터 지켜주려고 머리에 쓴 히잡(이슬람식 스카프)을 벗어 자기 아기의 코와 입을 막아주다가 그 상태로 아기와 함께 숨을 거뒀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현지에서는 시리아 정부군 소행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 전역에 소식통을 두고 있는 비영리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이날 공격한 전투기 겉에는 시리아 국기 등 소속을 확인할 만한 그림이나 글씨가 보이진 않았지만 시리아 정부군 전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칸셰이쿤 마을이 반정부 성향 주민이 밀집해 있는 반군 지역인 데다 반군은 전투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규탄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며,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여성과 어린이 등 무고한 사람에 대한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이런 악랄한 화학무기 공격은 전임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한 결과"라고 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시리아가 화학무기 공격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참사에 러시아와 이란도 큰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아사드 정권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이런 끔찍한 만행을 다시는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틸러슨 국무장관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아사드 정권을 살려둘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태도를 바꾼 듯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시리아 정부는 성명을 내고 "칸셰이쿤 마을 공습은 정부군 전투기가 아니며, 화학무기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