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 2일 인천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8세 여자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17) 양이 2011년부터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아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날 내내 '조현병'이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범행 과정의 주도면밀함과 살해 이후 치밀한 증거인멸이 드러나자 김양의 잔인한 범행이 조현병 때문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한 김양이 어떻게 혼자서 20kg에 달하는 시신을 들고 5m 수직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경찰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 화면 분석과 김양의 진술 등을 통해 공범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 연수경찰서는 피해자가 범행을 시인했고 피해자와 피의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현장검증을 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달 31일에는 김양이 중학교 1학년 때 그림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되기도 했다. 그 당시는 김양이 조현병을 앓은지 약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김경호 인천 연수경찰서 형사과장(사건 담당)
▲김문갑 한국미술심리치료협회 이사장(미술치료학 박사)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 전공)
▲홍나래 한림대학교성심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 전공)
―조현병 환자가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가능한가.
이윤호 교수 조현병이 하루 24시간 365일 증세가 나타나는 병은 아니다. 간헐적으로 나타난다면 충분히 계획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 계획된 살인 또는 조현병 증세로 인한 살인,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둬야 한다.
홍나래 교수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정신이 와해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망상이나 환청 등의 증상이 주된 환자는 계획적 살인이 가능하다.
―17살 여자아이가 20kg 시신을 들고 5m 수직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 가능한가. 혹 조현병 증상 중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증상이 있나.
김경호 형사과장 그 일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을 확인 중이다.
홍나래 교수 김양을 직접 진료한 것은 아니어서 조현병이라는 확진은 불가능하다. 판단 이전에 정확한 정신감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양이 조현병 환자라 해도 본인이 원래 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센 힘을 발휘하진 못한다.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장검증을 생략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경호 형사과장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현장검증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피의자 진술과정에서 살인 방법 등 범행에 대한 시연을 진행하고 동영상 촬영도 했다. 둘째 피의자 주거지가 범행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청소년 강력범죄의 경우 신상을 공개할 수 없다. 당시 피의자 주거지에서 현장검증을 하게 되면 신상이 공개될 우려가 있었다. 피의자 처벌을 약하게 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생략하는 일은 없다.
―2011년부터 조현병 치료를 받아왔다면 10세때 병이 나타난 것인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조현병에 걸리는 게 가능한가.
홍나래 교수 김양의 경우 이른 나이에 발병했다. 조현병은 일반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나타난다. 중·고등학생 때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겉도는 등 정신병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행동을 한다. 그러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망상이나 환청 등이 나타나는 것이 흔한 경과다. 김양처럼 어린 나이에 발병한 것은 유전적 요인일 확률이 높고, 어릴 때 나타날수록 경과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조현병은 뇌 속의 도파민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병인데 어릴 때 발병하는 아이들은 이 손상이 보다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김양이 그 이전에 우울증을 앓다가 조현병으로 악화됐다는데, 우울증에서 조현병으로 악화될 수도 있나.
홍나래 교수 김양에게 나타났던 증상은 우울증이 아닌 조현병 전구(前驅·선행) 증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현병은 망상이나 환청 등 본격적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우울하고 머리나 배 등 신체 여기저기가 아픈 증상을 겪게 된다. 망상, 환청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충분한 기간이 경과했을 때 조현병으로 진단하는데, 일반적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기 전 환자들은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기간을 수개월 정도 겪는다.
―전구 증상을 겪을 때 조현병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막는 방법은 없나.
홍나래 교수 막을 수 있다. 전구 증상이 나타날때 치료를 시작하면 조현병으로 발전하지 않거나 발전해도 증상이 심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은 전구 증상에서 약물을 사용하기도 하고,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조기정신증치료를 하기도 한다. 전구기에 있는 사람들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다.
―김양은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꿈인줄 알았다고 하는데 조현병 증상에 해당하는 것인가.
홍나래 교수 조현병 증상이 심해지면 꿈인지 생시인지 혼돈스러운 경우가 생긴다. 잠결에 어떤 행동을 하고 난 뒤 자고 일어났을 때 '내가 그런 행동을 했나, 꿈을 꾼건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 때와 비슷한 증상이라도 보면 된다. 김양이 7년 전부터 조현병 치료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김양이 약을 빠지지 않고 먹었는지, 병원 진료를 끊임없이 받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조현병은 병원 치료를 한 두번만 빠져도 재발 확률이 2배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감기약도 한 번도 안 빠지고 먹는 게 쉽지 않다. 조현병은 주변에서도 꼼꼼하게 신경써야 한다.
이윤호 교수 조현병을 떠나서 자수한 확신범이 아닌 이상 범행을 부인하는 것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10대 소녀가 더 어린 아이를 유괴해 장기를 꺼내 분리하고 시체를 절단할 정도로 훼손하는 건 어떤 심리인가.
이윤호 교수 범행의 잔인한 정도로 봤을 때 사전에 살인 의사가 있었고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의식은 약한 반면 범행동기는 굉장히 강하다. 이런 범죄자들은 조현병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반사회적인격장애 등이 결합된 합병증처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럼 사이코패스로 볼 수도 있나.
홍나래 교수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사이코패스와 조현병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다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조현병은 내가 살기 위해 살인을 한다. 조현병 환자 중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피해망상이 있는 경우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일 것 같다'는 망상과 '저 사람이 널 죽일 것이다' 등의 환청으로 인해 자기 보호 차원에서 최상의 대응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때 '묻지마 범죄'가 된다. 조현병 환자의 범행 확률이 일반적 범죄율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지만, 묻지마 범죄에서는 유난히 높게 나타나는 이유다.
(지난해 경찰청이 발간한 '한국의 이상범죄 유형 및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와 분노조절 범죄 등 2006~2015년까지 발생한 이상 범죄 46건 중 정신질환 범죄는 18건(39.1%)으로 조사됐다. 이중 조현증 증상자는 13건(72.2%)으로 나타났다.)
―언론 보도나 SNS상에 나오는 김양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나가는 학생을 갑자기 펜으로 찌르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동물 해부 영상을 보기도 하고, 고양이를 해부했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증언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학창시절 김양의 상태는 어떤 것으로 보이나.
이윤호 교수 대부분 잔인한 범죄자들에게선 어린 시절 동물 학대를 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조현병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계획된 범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쇄살인범 같은 잔인한 범죄자 속성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이코패스나 조현병 환자가 아니더라도 어린 나이에 충분히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다만 범행 동기가 각기 다르다.
홍나래 교수 학창시절 행동으로 봤을 때 조현병일 확률이 높아보인다. 환자 입장에선 피해망상과 환청으로 인해 자기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공격적 행동을 하게 되고 증상이 심해지면 묻지마 범죄까지 이어질 수 있다.
김문갑 이사장 김양이 중학교 때 그린 그림도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양은 자신만의 공상영역이 있으며, 현실 접촉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래관계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부족할 수 있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자기만의 공상 영역에 근거해 환경에 반응하기 때문에 가정생활, 또래관계, 학교생활에서 적응이 매우 힘들 수 있다.
김문갑 이사장 이 세 개의 그림들처럼 선에 음영을 넣은 경우는 또래관계에서 불안감, 민감성을 나타낼 수 있다. 심한 경우 불안감, 내적 갈등, 우울감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림의 획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여러 번 방향을 변경한 경우는 일관성 없는 불안정감, 정서적인 동요, 불안감이 나타날 수 있다.
김문갑 이사장 이 두 그림처럼 획을 곡선으로 그린 것은 의존성, 불안감, 불확실성, 우울감, 사회적불안적 경향, 우유부단함, 꾸물거림의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김문갑 이사장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필압(선)은 현재 상당한 긴장감, 불안감을 느끼고 있거나, 성격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만나면 쉽게 불안해하거나 위축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또 성격이 단호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야심, 포부 수준이 높거나, 편집증적 경향이 나타날 수 있고, 공격성과 충동성을 보일 수 있다. 또 격자무늬 창문을 강조해서 그린 점을 주목해서 살펴야 한다. 타인에게 관심 받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망설이고 주저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사회관계를 가로 막는 장애물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라는 게 정신감정 등을 통해 밝혀진다면 얼마나 감형 받게 되나.
이창현 교수 형법 10조 심신미약이 적용된다. '기억이 안난다'고 해서 의학적으로 심신상실로 감정한다해도 법률적으론 심신미약을 적용한다. 상대를 죽인다는 의식도 없이 죽일 수는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만취상태에서 기억을 잃고 범행을 저질러도 심신상실이 아닌 심신미약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
―17세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자이고, 조현병까지 있어 큰 처벌을 피하지 않겠냐는 여론이 있다.
이창현 교수 일반적인 살인사건은 징역 10~12년형 정도가 나오지만 조현병으로 감형된 것을 감안했을 때 징역 5~7년형에 치료감호가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 행위로 입증될 경우 30~50% 정도 감형된다. 하지만 미성년자라고 해서 잔인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를 감형해주진 않는다. 이태원 살인사건 범인 패티슨도 당시 미성년자였지만 20년형을 받았다. 또 살해된 아이에 대한 동정론이 강화되면 8~10년형까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현병이 있는 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모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가능한가.
이창현 교수 부모가 형사책임을 질 순 없다. 다만 민법 755조 감독자의 책임, 753조 미성년자의 행위책임에 따라 부모는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르면 성년이면서 정신이상 증세가 없는 가해자가 경제적으로 보상할 여력이 없을 경우, 4000~9100만원 범위 내에서 국가가 대신 보상해주는 유족구조금이 있다. 이 기준에 맞춰 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건 현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주변 초중고교 학생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조현병은 많은 수가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조현병 진료환자는 2015년 기준 10만명이 넘는다. 조현병은 인구의 약 1% 가량이 앓고 있고, 국내 환자는 약 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떠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해결 방법은 없나.
이창현 교수 조현병 환자인 자녀를 부모가 감당할 여력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무작정 집안에 가둬둘 수도 없는 일이다. 국가에서 책임지고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적절한 격리·보호 조치를 하는 일을 복지 차원에서 해야 한다.
홍나래 교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고위험군 조현병 환자들을 강제 입원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현병 증상이 심해질수록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 '내가 공격 당하고 있다'고 인지하기 때문이다. 병으로 인지하지 못하니 본인 스스로 병원에 가지 않아 강제 입원을 시켜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이러한 범죄가 증가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라는 것을 공개할 땐 심사숙고 해야 한다. 경찰이 발표한 뒤 언론이 보도하고 나면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뉴스 전파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조현병 환자들이 모두 예비 범죄자로 치부될 확률이 매우 높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현병 환자들을 무서워했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이 자신의 병이 알려질까 두려워 병원 치료 받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런 일을 예방하려면 조현병 환자들이 치료를 더 쉽게 받을 수 있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