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하늘에 대한 분노가 중국인들을 향하고 있다. 최근 중국인들이 SNS에 자주 올린다는 'bluesky', 'clearair', '北京蓝(베이징의 파란 하늘)' 따위의 해시태그 때문이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죄다 한국으로 보내버리고 본인들은 맑은 하늘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엔 '얄미운 베이징 사람들'의 SNS 사진과 함께 짧은 글 하나가 정설처럼 떠돈다.
―베이징 하늘이 맑은 이유
최근 베이징에 있던 공장을 산둥반도로 옮김. 한국에 직빵으로 미세먼지 보내는중
현재 30% 정도 완료, 2020년까지 100% 이전 목표
한국 : 별도의 국가적 협상 없다면 현재 미세먼지X3(3배)
이런 글에는 "중국이 '2016 베이징 공기정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베이징의 공장들을 한국과 가까운 산둥성(山东省·Shandong)으로 옮겼기 때문에 2016년 한국의 미세먼지 수치가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라며 "갈수록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지니 여유만 있다면 탈(脫)조선해 이민을 가라"는 설명까지 붙는다.
#중국은 정말 산둥성으로 공장을 옮겼나?
베이징과 산둥성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무역 관계자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산둥으로 공장을 옮긴다는 건 루머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했다. 산둥성 청도에서 일하는 한 정부 관계자는 "특별히 공해 관련 업종이 이전해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 "이곳도 환경 관련 규제들을 강화하는 추세라 공해 업체가 들어오려고 하면 절대 반기지 않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쪽으로 미세먼지를 내보내기 위해 이쪽으로 공장을 이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지나친 해석"이라며 "중국 정부의 '징진지 정책'*이 잘못 알려져 '베이징에 있던 공해 업종(화학 등)들이 쫓겨나면 어디로 가겠느냐, 그 근처 산둥으로 가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산둥도 인구가 1억이라 밀도가 높은 지역인데 여기로 공장을 옮긴다고요? 여기서 베이징까지 차로 7시간 거리거든요. 베이징 날씨가 안 좋으면 그 다음날은 여기 날씨가 안 좋아요. 공해 업종을 이곳으로 옮기면 여기도 함께 안좋아질텐데, 인구 많은 쪽으로 옮겨서 이곳 사람들 불만을 만든다?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이야기인 거 같습니다."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텐진·허베이성의 약자) 정책: 성(省)급 도시인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등 3개 지역을 전략적이고 종합적으로 개발하여 중국 북방의 성장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것. 환경 보호를 위해 도심 인근 공장들을 외곽이나 인근의 다른 성으로 이전하는 작업도 포함)
베이징에서 일하는 한 정부기관 무역 관계자도 "주변 한국인들 사이에서 '베이징 공장을 산둥성으로 옮긴다더라'는 이야기가 돌고는 있지만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확인된 바도 없다"며 "기업들이 굳이 산둥성으로 갈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일자리 문제에 굉장히 민감해요. 잘못하면 시위로 연결될 수도 있고요… 공기가 나쁜 것은 알지만 공장을 옮기면 일자리도 그만큼 줄어들고 주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또 원래 청도, 연태 쪽에 한국 기업, 공장들이 많이 갔어요. 임가공, 단순 노동 때문이었죠. 근데 이제는 인건비가 많이 올라서 쉽지 않아요. 특히 청도, 위해 쪽은 임가공보다는 관광도시로 발전시키려 하거든요. 바닷가도 있고 아직까지는 북경보다 훨씬 공기도 좋아서요. 정부에서 어떤 가이드라인을 주는지는 몰라도 선택은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해 스스로 할 문제 아닐까요? 사실 산둥성으로 공장을 옮겨 한국에 영향을 준다면, 중국에서 그걸 공식적으로 발표할 리도 없기는 하지요."
실제로 실시간 대기 오염 정보 지도 '월드 에어 퀄리티 인덱스(World Air Quality Index)'를 보면 산둥성쪽이 중국의 대표적 공장지대인 베이징이나 상하이 지대에 비해 특별히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볼 수 없다. 이 지도에 따르면 3일 오전 11시 기준 베이징 지역에는 '건강·안전에 위험한(Hazardous) 정도의 미세먼지 수치'를 뜻하는 자주색 표시가 여러 곳 보인다. 상하이 지역도 지도를 구분하기 힘들만큼 빽빽하게 '건강에 나쁜(Unhealth)' 정도의 미세먼지 수치가 표시돼 있다. 반면 산둥성쪽은 면적 당 미세먼지 표시가 훨씬 적다.
#우리나라 미세먼지는 모두 중국에서 온다?
'징진지 정책'에 따라 베이징에 있던 공장을 외부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 2015년 한국무역협회는 '중국 내 공장이전 동향과 기업의 유의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베이징시는 '공기청정행동계획'에 오는 2017년까지 오염원을 배출하는 기업 300여개를 선정하여 타지로 이전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이전기업 수는 이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장이 이전되는 지역은 산둥성이 아닌 허베이성이다. 허베이성은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정도에 해당하는, 수도 북경을 둘러싸고 있는 성이다. 베이징 지역에서는 '석유화학, 화공, 철강, 경공업, 의약' 등 182개 업종을 '수도로서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 업종'으로 선정해 퇴출하고, 허베이성은 196개 개발구(공단)를 재조정해 베이징시의 퇴출기업을 적극적으로 입주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베이징에서 허베이성으로의 공장 이전이 미세먼지를 외부(한국)로 밀어내기 위한 조치일까? 답은 '아니오'다. 중국 베이징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952㎞, 허베이성부터 서울까지의 거리는 1000㎞ 정도로 오히려 더 멀어졌다. 중국 내에서 가장 공기오염이 심한 도시라는 허베이성 싱타이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1103㎞다.
또 지난해 중국 환경보호부가 발표한 '2015년도 전국 초미세먼지 성(省)간 이동경로 분석'에 따르면 수도 베이징의 대기오염 상당부분이 허베이성에서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 초미세먼지의 66%는 자체발생이었지만 18%는 허베이성에서 유입됐고, 톈진의 미세먼지도 56%는 자체발생, 20%가 허베이성에서 유입됐다. 허베이성의 미세먼지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중국 자국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일년 내내 부는 편서풍, 겨울철 북서풍, 여름철 남서풍이 일 년 내내 중국산 먼지를 한국으로 끌어들인다. 환경부 대기질통합예보센터에 따르면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지난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미세먼지(PM10)의 47%~80%, 초미세먼지(PM2.5)의 52%~86% '국외'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중국을 비롯해 몽골, 북한, 일본 등의 영향을 포함한 수치로 정확히 어느 지방의 미세먼지가 어디로, 얼마나 불어오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미세먼지는 모두 중국 때문'이라거나 '허베이성, 베이징에서 오는 먼지'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이유다.
#베이징 하늘은 파란가?
중국어로 '미세먼지'를 뜻하는 '雾霾'을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약 6600여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반면 '베이징의 파란 하늘'을 뜻하는 '北京蓝'을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약 350여개, '맑은 하늘'을 뜻하는 '晴朗天空'나 '晴朗的天空'을 검색하면 각각 110개, 120개 정도다.
베이징의 한 무역 관계자에게 "베이징 하늘이 정말 미세먼지 없이 맑고 푸른지" 물었다. 결론은, '푸른 날도 있었지만 잠깐일 뿐'이다.
"오늘은 좀 날씨가 좋지만 어제는 미세먼지가 심했어요. 베이징 날씨가 좋다고 하지만 양회* 기간동안 잠깐 맑아진 거고요… 이 미세먼지가 한 두달 만에 좋아질 만한 건 아니거든요. 자동차도 많고, 공장 이전이 하루아침에 되는 문제는 아니고요. 또 중국에는 아직까지 겨울에 석탄을 떼는 도시가 있어서 겨울 날씨가 더 안 좋기도 해요."
(*양회 : 중국에서 매년 3월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
중국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015년 전승절 열병식 등 국가 주요 행사를 앞두고 교통 통제와 공장 가동 중단 등 강력한 '청천(靑天·clean air drive) 캠페인'을 벌여왔다. 올해 3월에도 연례 행사인 양회(兩會)를 앞두고 전면적인 스모그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북경은 이미 차량 주5일제를 하고 있어요. 번호판에 따라서 일주일에 한 번은 운전을 못 하는 거죠. 지난 2015년 전승절 행사 할 때는 홀짝제까지 했고요. 양회 때는 일주일 북경 인근 하북성까지 일주일 이상 공장 문을 닫게 했어요. 하지만 이런 건 특수한 상황이에요. 경제가 돌아가야 하니까, 공기가 나빠지는 줄은 알지만 아예 공장을 중단시킬 수는 없죠"
'중국 베이징의 공장이 산둥성으로 이전하면서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심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로 미세먼지를 보내고 자기네들은 파란 하늘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인접한 국가인만큼 큰 영향을 받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환경부측은 올해 말까지 '한·중·일 동북아 지역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조사사업(LTP Project)'의 일환으로, 중국을 다섯개 세부 권역으로 나눠 권역 규모의 미세먼지 영향을 평가한 종합평가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한반도에 얼마만큼 미세먼지를 보내는지 정확한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줄 요약>
―중국이 산둥성으로 공장을 옮겼다? "거짓"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는 다 중국에서 온다? "거짓"
―베이징 하늘은 파랗다? "참과 거짓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