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에서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결코 망상에 젖어 그런 게 아니다. 나라가 이 꼴인데 탄식만 하고 있을 수도 그냥 버려두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김종인(77)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일 출마 선언을 한다"고 말했다. 설(說)로 떠돌던 대선 출마가 그의 입으로 확인된 셈이다.

작년 여름 그를 만난 뒤 인터뷰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내기를 한다면 이 노인이 내년 대선에 나오는 쪽에 걸겠다. 확률은 낮지만 배당은 높을 것이다.' 점쟁이도 아닌데 어쩌다가 내 예측이 맞았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저 노인네 간이 붓고 노욕 부린다 하겠지만, 내 판단은 흐리지 않다”고 말했다.

―욕심 많고 노회한 정객(政客)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나?

"저 노인네가 간덩이 붓고 노욕을 부린다고 하겠지.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나도 듣고 있다. 하지만 내 판단은 흐리지 않아. 국내외 정세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이렇게 나오지 않아."

―능력이 뛰어나다고 선택받는 게 아니다. 본인에 대한 인지도 조사는 해봤나?

"이번 선거는 당(黨) 대 당 선거라기보다,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나라의 방향을 제시해낼 수 있는 사람을 국민이 원한다고 본다."

―무소속인데, 탈당한 최명길 의원 외에는 함께할 국회의원들이 있나?

"잘 알다시피 용기 있는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 내 뜻에는 동조했지만, 가령 개헌 찬성에 민주당 의원 89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세론이고 차기에 집권할 것으로 보이니까 슬금슬금 다 그쪽으로 가버렸다."

―선거는 현실이다. 출마가 해프닝처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처신을 하지 않을 거다. 인생의 마지막을 해프닝으로 끝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맹꽁이 같은 짓을 안 할 거니까. 지금은 어떤 정당의 누가 당선돼도 여소야대 정국인데 정상적으로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 선거 전에 '공동 목표(개헌)를 가진 통합정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본인이 대통령 되겠다는 게 아니라, 대선 주자들이 통합정부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하기 위해 출마하는 건가?

"진행하는 과정을 봐야지. 내가 꼭 무얼 해야겠다고 맹목적 욕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걸 할 수 있게 압박하는 소명도 갖고 있다. 개헌 등 본질적인 변화가 없으면 나라 앞날에 희망이 없다. 역대 대통령들의 운명을 보면 별로 성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 후보들은 개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논의 상대가 정의화·정운찬·홍석현 등 '표(票)가 거의 없는 인사'들이거나, 김무성·박지원 등 후보 당사자도 아니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하고 이렇게 왔다. 통합정부가 구성이 안 되고 나라를 끌고 갈 수 있겠나. 다들 국가를 위해 정치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해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거다. 안 받아주면 공멸(共滅)할 수밖에 없다."

―함께 논의하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은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강제적 적폐청산 반대' 같은 발언으로는 반문(反文)연대에 선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정치판에 뛰어든 것인가?

"홍 회장에게 확실하게 확인했는데, 그는 정치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상황에서 통합정부를 출범시키지 않고는 정상적으로 갈 수 없다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거다."

―각 당에서 확정된 후보들은 이념·가치·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들이 김 전 대표가 주재하는 협상 테이블에 앉겠나?

"안철수 빼고는 거의 만나봤다. 이들은 왜 대통령에 출마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출마는 자유이겠지만, 나라의 전반적 상황과 현재 여건을 고려하면 스스로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데 말이다."

―현실적으로 반문연대의 성공 여부는 안철수에게 달렸다. 안철수와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은데 대화가 되겠나?

"원한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 서로 당을 달리하고 선거 때 경쟁 관계여서 다소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것이지."

―작년에는 안철수에 대해 "나는 그쪽에서 오라고 해도 안 갈 사람이다. 정당은 아무나 몇 사람 모여 되는 게 아니다. 의원 생활 2년밖에 안 된 안철수가 경륜이 있나"라고 말했는데?

"물론 감정이 상했을 수 있겠지. 사실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할 때 내게 의논해오기도 했다. 물론 나는 '탈당하지 말라'고 했지. 그 뒤 내가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국민의당과 통합을 제의했을때 반대한 이가 안철수였다. 그래서 비난한 거지. 설령 감정이 있더라도 문제를 풀려면 극복해야지."

―안철수의 지지율이 올라가는데 이런 연대 협상에 응하겠나?

"독자 노선으로 가겠다면 지지율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 본인이 잘 알 거라고 본다."

―하지만 연대 협상을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늦었다.

"시간이 짧아 더 빨리 결정할 수 있다. 내가 무모하고 합리성이 없다고 보지 말라. 지지율 한 자릿수에 있는 후보들이 자기가 당선된다고 보지는 않을 거다. 결국 해결될 것으로 본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의 당선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보고 있나?

"지금까지 지지율로 당선될 걸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 본선 경쟁력은 안희정이 더 높게 나왔다. 그런데도 '내가 대세'라며 선거가 끝난 양 생각하면 안 된다. 선거는 열흘 남겨두고도 바뀐다."

―왜 그렇게 문재인에 반대하나?

"대통령이 되려면 현실 상황 인식이 정확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그렇다 치고. 가령 내가 '사드 배치 결정은 절대 변경 불가능하니까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반발한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 당론'을 정하겠다고 했다. 그게 안 되니까 '전략적 모호성'으로 갔다. 이제는 '집권하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한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그런 애매모호함을 취하면 통치자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남아 안희정 충남지사를 돕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었나?

"민주당 경선 체제에서는 누가 맞붙어도 문재인에게 안 된다. 안희정은 당을 나올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샌더스가 나왔으면 트럼프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힐러리가 당을 장악하고 있어 경선 통과가 안 되는 것이다."

―문재인과의 관계가 왜 이렇게까지 갔나. 작년 초 문재인이 김 전 대표를 영입했지 않나?

"영입이란 말은 맞지 않다. 그쪽에서 사정을 한 것이지."

―그쪽에서는 '정치적으로 놀고 있는 사람(김종인)'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 웃기는 사람들이지. 알다시피 안철수가 탈당하고 당이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문재인이 몇 번 찾아와 당을 구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 자리에서 '비례대표 2번을 하라'고 했지만 그게 무슨 매력이 있었겠나. 내가 수락한 것은 한국 야당의 장래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야당도 중요하다. 야당 체질을 개선해 수권 정당을 갖출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총선에서 승리하고 나니까, 그전에 문제가 됐던 패권주의 모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비례대표 2번 셀프 공천'으로 공격을 많이 받았는데, 그게 당초 문재인의 제안이었나?

"그래서 그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거다. 내가 대표직을 사퇴했을 때 문재인이 집으로 찾아와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라는 식으로 변명했다. 정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표직에 복귀한 것은 선거를 뛰는 당 후보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은 어떨지 몰라도 문재인의 인품은 훌륭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인데?

"나도 처음에는 선량하고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정성을 믿고 맡겠다'고 했으니까. 그 뒤 자기 스스로 변하는 건지 주변의 영향으로 변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느끼는 것과 똑같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된 뒤로 내게 전화 한 번 없었다. 문재인도 총선이 끝나자 똑같았다."

―김 전 대표는 고집이 세고 자기 기준에서 남을 보니까 인간관계의 불화가 생기는 게 아닌가?

"내 이익을 위해 고집 부린 게 뭐가 있는가. 사람을 모함하려니까 '트러블 메이커'라는 등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다. 사정할 때는 언제고. 문재인씨가 어느 공식 자리에서 '김 전 대표는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독선적 당 운영을 했다'고 비판했다. 비상 상황에서 당을 원칙적으로 운영한 것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거다. 급한 상황이 끝나니까 다시 자기들 욕심으로 돌아간 거지."

―지금 와서 뒤늦게 탈당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

"내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당 최고위원들 선출 과정은 친문 패권 세력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나와 개헌 찬성 의원들은 '문자 폭탄'을 받았다. '관 짜놓고 죽을 날 받아두라'는 내용도 있었고. 정기 국회에서는 총선 때 약속한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지 지켜봤다. 내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제출한 상법개정안도 유야무야됐다. 나는 보수와 진보 정당 양쪽에 다 있어 봤지만 전혀 차이를 못 느꼈다."

―김 전 대표가 결국 친문 패권 세력을 부활시킨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있다.

"주위에서 '당신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이런 의도를 갖고 한 게 아니라, 패권 세력의 수법에 당했고 탄핵 정국 등으로 이렇게 흘러간 거다."

―이제는 보수 정당이 지리멸렬하고 거의 죽게 됐다.

"자유한국당은 근본적으로 나라를 어떻게 고쳐야 하느냐에 대해 생각이 없다. 기득권 이익만 지켜서는 생존할 수가 없다. 보수는 시대감각을 갖고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바른정당은 합리적 보수를 내세우는데 말로만 그렇지, 의회 활동이나 실제 행위를 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본인의 출마 슬로건이 '대한민국 비상대책위원장'이라고?

"비상 상황에서 우리나라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고 다른 사람들이 붙인 거다.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에서 길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국민 판단에 맡겨볼 것이다."

―새 시대를 이끌 지도자로 77세의 나이는 어떤가?

“젊은 사람들이 만날 똑같은 짓만 하니까,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거지.”